"나 게을러서, 연금 백만장자 됐다"…대박 난 비결은 '이것'

뉴욕·워싱턴DC=송정현 기자,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5. 9. 1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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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부자 국가서 배운다](종합-下)
[편집자주]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재추진되고 있다. 전문가가 굴리는 기금으로 운용 성과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반발이 엇갈린다. 퇴직연금 역사가 깊고 다양한 제도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들을 직접 찾아 국내 퇴직연금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주린이어도 괜찮아…알아서 선택해주는 美 401k 퇴직연금
401(k) 수익률 높인 마법...적격디폴트상품(QDIA)

"미국도 연금보호법(Pension Protection Act)과 적격디폴트상품(QDIA) 제도가 도입되기 전엔 현금 투자가 안전하다고 여겼죠. 지금은 장기적으로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가지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걸 확인했습니다."(케빈 머피 프랭클린 템플턴 수석 부사장 겸 '프랭클린 전략·기술 혁신 연구소(FIRST)' 임직원 재무솔루션 부문 대표)

미국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 계좌인 401(k) 자산의 70%는 주식에 투자하고있다. 가입자의 70%가 TDF(타겟데이트펀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401(k)는 총자산이 약 9조달러(1경24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연금시스템이다. TDF 등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 비중이 높은 덕에 401k 운용수익률은 지난 20년(2001~2020년)간 연평균 8.6%에 달했다.

TDF는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대표적인 은퇴 준비형 펀드다. 가입자는 은퇴 목표 연도만 선택하면 초기에는 주식을 많이 담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 자산 비중을 늘리도록 설계돼 있다. 쉽게 말해 20대 투자자는 주식 비중을 90%로 두고, 은퇴가 가까운 60대는 주식 비중을 절반(평균 44%)으로 줄인다. 투자 지식이 없어도 자동으로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 비중이 조절되는 구조다.

2006년 연금보호법과 QDIA 도입 이후 TDF가 대표적인 퇴직연금 투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QDIA에는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은 아예 없다. 고용주가 디폴트옵션 상품을 결정하는데 TDF나 자산배분형 펀드를 선택한다. 미국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약 85%가 기본 옵션으로 TDF를 채택했다.

반면 한국의 확정기여형(DC형) 디폴트옵션에는 TDF뿐 아니라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도 대거 포함돼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가입 초기부터 스스로 여러 투자 상품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존재하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미국 금융투자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 격차는 개인의 투자 실력이나 지식 차이가 아니라 투자 결정 주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제프리 산젠바허(Geoffrey Sanzenbacher) 보스턴칼리지 퇴직연구센터 연구원 겸 경제학 실무교수는 "아무런 투자 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 선택지가 많을수록 대체로 가장 보수적인 결정을 내린다"며 "여기에 한국은 선택지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포함돼 있어 가입자 대부분이 해당 상품을 고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명두(크레이그 리) AON 자산관리 시니어 컨설턴트는 "미국 근로자는 선택 부담이 없고 자금은 자연스럽게 주식 등 위험 자산으로 흘러간다"며 "디폴트옵션 제도 자체가 투자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고용주들이 TDF를 기본 옵션으로 적극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연금보호법의 면책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디폴트옵션이 설정된 상품에서 운용 손실이 발생해도 기업이 투자자의 지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미국 401(k) 계좌의 연금 자산에서 TDF와 주식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특히 20대 가입자의 90% 이상은 주식 비중을 8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동훈 앰플리파이ETFs 아시아시장 총괄 상무는 "국내에는 미국처럼 면책 조항이 없어 기업이 책임을 피하려 선택권을 근로자에게 떠넘길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내에서도 고용주가 TDF를 기본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미국과 유사한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뉴욕 맨헤튼 센트럴 파크에서 독서하는 미국 백인 남성/사진=송정현 기자
"첫 단추만 잘 끼우면…방치와 게으름이 만든 연금 백만장자"
제프리 산젠바허 보스턴칼리지 퇴직연구센터 연구원·경제학 교수 인터뷰


"첫 단추가 노후 자산의 성패를 가릅니다. 미국 퇴직연금 제도의 성공 비결은 바로 그 첫 단추를 실적배당형 상품인 'TDF(타겟데이트펀드)'로 설정한 데 있습니다. 인간의 '게으름'을 활용한 이 단순한 설계가 연금 백만장자의 길로 이끄는 셈이죠."

제프리 산젠바허(Geoffrey Sanzenbacher) 보스턴칼리지 퇴직연구센터 연구원 겸 경제학 실무교수는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미국은 근로자가 401k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에서 TDF에 자동으로 투자된다. 즉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TDF가 선택·운용되는 구조다.

TDF는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주식과 채권 비중을 자동 조정하는 대표적인 은퇴 준비형 펀드다. 가입자는 은퇴 목표 연도만 선택하면 초기에는 주식 등 위험 자산을 크게 가져가고 은퇴 시점이 다가올 수록 채권 등 안전자산의 비중을 늘리도록 설계돼 있다.

산젠바허 교수는 "일반 투자자들은 디폴트로 설정된 TDF를 원치 않으면 직접 '옵트아웃(해지)'해야 하지만 대부분 게으름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첫 설정값을 그대로 유지한다"라며 "이러한 구조가 미국 퇴직연금의 높은 주식 투자 비중으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이른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넛지(nudge) 전략'(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환경·설계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TDF의 효과는 사회초년생에게 특히 크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20대 가입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주식 비중을 8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TDF는 20대 투자자의 경우 주식 비중을 90%,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10% 안팎으로 설계하기 때문이다.

산젠바허 교수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지만 TDF 상품 덕분에 가입자들이 의도치 않게 훨씬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스턴칼리지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50~78세 DC형 퇴직연금 가입자 1000명이 희망하는 주식 투자 비중은 평균 37%에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퇴직연금 계좌를 분석한 결과 자산의 48% 이상이 주식에 투자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젠바허 교수는 "이는 은퇴 시점이 다가와도 주식 비중을 절반 수준(평균 44%)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된 TDF 영향이다. 결과적으로 TDF가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자금을 굴리지만 이러한 괴리율은 수익률에 오히려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서는 주식 비중을 크게 가져가는 것뿐 아니라 이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ICI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3분기 팬데믹 기간 변동성 장세가 이어졌을 때도 DC형 퇴직연금 가입자 중 자산 배분(주식·채권 비중)을 바꾼 사람은 7.4%에 그쳤다. 대부분 가입자가 주식 비중을 꾸준히 유지한 것이다.

산젠바허 교수는 이에 대해 "투자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주식 시장이 폭락하더라도 직접 계좌를 열어 주식 비중을 줄이는 건 큰 부담이자 번거로운 일이다. 대부분 TDF로 자금이 굴러가게 둔다"라며 "이러한 게으름과 방치가 오히려 수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오리건주의 절충안…첫 1000달러 적립 후에는 TDF로 전환

산젠바허 교수는 오리건주가 오토 IRA(개인퇴직연금계좌)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할 당시에도 IRA 내 디폴트옵션은 안전자산이 아닌 TDF로 설정하라고 조언했다.

오토 IRA는 고용주가 퇴직연금을 제공하지 않아도 근로자의 급여 일정 비율이 자동으로 IRA(개인퇴직연금계좌) 에 적립되도록 한 제도다. 401k 등 DC형 퇴직연금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노후 준비를 돕기 위해 마련한 장치다. 미국에서는 오리건·캘리포니아·일리노이 등 일부 주가 운영하고 있으며 오리건주가 2017년 처음 도입했다.

오리건주는 산젠바허 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절충안을 택했다. 가입 초기 첫 1000달러(우리 돈 약 137만원)는 비교적 안정적인 자산인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해 원금을 보호하고 이후 납입금은 자동으로 TDF로 전환되도록 했다.

산젠바허 교수는 "MMF와 같은 안전 자산을 디폴트옵션으로 오래 설정해두면 투자자들이 그 상태를 고수해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며 "일정 금액이 적립된 뒤에는 자연스럽게 주식 비중이 높은 TDF가 디폴트옵션이 될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금 백만장자 친구들 수두룩"…50대에도 주식 비중 높이는 미국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상징적인 동상인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 주식시장의 강세와 경제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송정현 기자
"주변에 연금 백만장자 친구들을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식 비중을 조금 더 높여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빨리 은퇴하려고 합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워싱턴 스미스(52)는 기자에게 "현재 월급의 20% 이상을 매달 401(k)(미국의 확정기여형 기업연금) 계좌에 넣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저도 예전에 중도 인출만 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퇴직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5060 세대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증시 활황으로 쌓인 학습 효과가 세대 전반의 투자 성향을 바꿔놓은 것이다. 더 많은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 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이른바 '연금 백만장자'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형성될 것으로 연금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사진=송정현 기자


◇노후 막바지 준비…주식 비중·적립금 높이는 50대

글로벌 연금 전문 운용사 티로프라이스(T. Rowe Price)에 따르면 401(k) 계좌 가입자를 조사한 결과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50세 이상 투자자 50%가 계좌 내 주식 비중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20~34세 투자자 가운데 주식 비중을 늘린 비율 34%보다도 높다.

한동훈 앰플리파이 ETFs 자산운용사 아시아시장 총괄 상무는 "그동안 주식 활황에 대한 학습효과로 이제 50대라고 해서 주식 투자에 보수적으로만 임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주식시장 활황으로 최근 미국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더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짤 것을 권하고 있다. 케빈 머피 프랭클린 템플턴 수석 부사장 겸 '프랭클린 전략·기술 혁신 연구소(FIRST)' 임직원 재무솔루션 부문 대표는 "20대부터 꾸준히 TDF로 퇴직연금을 운용해온 사람이라면 50대에 주식 비중을 50% 미만으로낮추는 것이 적절하지만 중도 인출을 했거나 경력 공백이 길었던 경우에는 50대라도 주식 비중을 더 공격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개인 맞춤형(personalized)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역시 5060대 투자자가 주식 투자로 노후 자산을 더 빠르게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부터 401(k) 계좌의 비과세 불입 한도는 2만3000달러에서 2만3500달러(약 3170만원)로 상향됐다. 여기에 50세 이상 근로자는 '추가 불입(catch-up)'을 통해 7500달러를 더 넣을 수 있어 최대 3만1000달러(약 432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욜로만 하는 MZ? "NO!"…401k 가입률·적립금 모두 '쑥'


미국 자산운용사협회(ICI)는 최근 연구에서 Z세대의 노후 준비 전망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밝다고 했다. 젊은 세대가 노후 대비를 중시하면서 퇴직연금 가입률과 적립금 규모가 함께 늘고 있기 때문이다.

ICI에 따르면 2022년 기준 Z세대 가구의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가입률은 24%로, 1989년 당시 같은 나이의 X세대(7%)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적립금 차이도 뚜렷하다. DC 계좌를 보유한 Z세대 가구의 중위 자산은 2만6000달러(약 3613만원)로, X세대(1만1528달러)의 2.5배를 넘는다.

한동훈 상무는 "미국 청년 세대도 높은 집값과 임금만으로는 자산을 쌓기 어렵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401(k) 계좌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며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며 "미국 증시가 고점이라는 인식이 나오지만 매달 401(k) 자금이 주식 시장에 꾸준히 유입돼 연금 백만장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퇴직연금 백만장자들의 비밀, 경쟁이 낳은 혁신의 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월 집권 2기를 시작한 뒤 서명한 200여건의 행정명령 가운데 뉴욕 월가의 자산운용업계가 유독 주목한 문서가 하나 있다. 퇴직연금 투자자의 대체자산 투자 접근 확대에 관한 지난 8월7일자 행정명령 14330호다.

이 행정명령으로 퇴직연금 계좌의 가상자산·사모펀드 투자가 허용되자 골드만삭스와 티로우프라이스가 곧바로 전략적 제휴를 맺고 대체자산을 포함한 새로운 투자상품을 출시하기로 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자마자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 재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모건스탠리 뉴욕 본사에서 근무하는 이병선 퇴직연금 담당 이사는 "이런 현상이 미국 퇴직연금 시장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자산운용 무대로 만든 '경쟁이 낳은 혁신'"이라고 말했다.

은퇴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수십만명의 연금 백만장자가 나오는 비결로 전문가들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TDF(타깃데이트펀드·은퇴시기를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 투자하는 펀드)와 함께 운용사간 치열한 경쟁 체제를 꼽는다. 세계 최고의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 운용사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경쟁이 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대형 엔진이라는 얘기다.

경쟁을 촉발시킨 주역은 단연 뱅가드다. 뱅가드는 수십 년 전부터 인덱스 펀드를 기반으로 한 저비용 운용 전략을 고수하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수수료 절감'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투자자들을 사로잡았다.

뱅가드의 저비용 공세에 맞서 피델리티는 '액티브 운용'과 '기술 혁신'으로 반격에 나섰다. 피델리티는 숙련된 펀드 매니저가 시장 평균 이상의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운용 펀드를 TDF에 포함시켜 단순히 시장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와는 다른 차별점을 부각시켰다. 또 고객 맞춤형 투자자문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고 온라인 플랫폼과 모바일 앱을 구축해 가입자들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ETF(상장지수펀드)를 활용한 전략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ETF'는 특정 지수를 추종하면서도 낮은 비용으로 다양한 자산군에 손쉽게 분산투자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블랙록은 자사의 TDF 상품에 이 ETF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비용 효율성과 함께 투자 포트폴리오의 유연성을 높였다.

오랜 기간 축적된 리서치 역량을 바탕으로 '액티브 운용'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온 티로프라이스는 '일관된 액티브 운용'으로 승부했다. 이들은 TDF를 포함한 다양한 펀드에서 벤치마크 대비 초과 수익을 꾸준히 달성하면서 특히 시장 상승기에 더 높은 수익률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티로프라이스가 블랙록을 제치고 퇴직연금시장에서만큼은 피델리티, 뱅가드와 함께 3대 운용사를 꿰찬 이유다.

전문가들은 미국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체제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뱅가드의 저비용 전략은 시장 전체의 수수료 인하로 이어졌고 피델리티의 기술 혁신은 가입자들의 투자 편의성을 높였다. 경쟁을 통한 시장 혁신이 결과적으로 더 저렴하고 효율적이며 투명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블랙록, 피델리티, 뱅가드 등이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성장한 데도 퇴직연금이라는 거대한 은퇴시장의 힘이 컸다는 얘기가 나온다. 1981년 미국에서 퇴직연금이 시작됐을 때 1조달러였던 운용자산이 지난해 44조달러(6경672조원)로 늘었다. 뱅가드의 지난해 말 총 운용자산 10조4000억달러에서 퇴직연금 운용자산은 8조달러가 넘는다. 피델리티, 티로프라이스도 전체 운용자산에서 퇴직연금 운용자산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운용사 간의 경쟁은 이제 단순한 수익률 숫자 싸움을 넘어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2015년 퇴직연금 운용사들의 투자 모니터링 의무 위반 여부를 다룬 일련의 법적 분쟁 이후 미국 노동부가 퇴직연금 관련 수수료와 비용을 모두 명확히 공개하도록 의무화하자 운용사들은 수익률과 변동성, 위험대비 성과 등 객관적인 지표들을 상세하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투명성은 결국 운용사들이 투자 신뢰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됐다.

이병선 이사는 "미국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특별히 투자를 잘 알고 잘 해서 연금을 크게 불리는 게 아니다"라며 "경쟁을 붙이고 투명하게 관리하면 진짜 '수익률 승부'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선 모건스탠리 퇴직연금 담당 이사가 미국 뉴욕 맨해튼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뉴욕·워싱턴DC=송정현 기자 junghyun792@mt.co.kr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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