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가 죽었다 지원금이 족쇄 되어

어른 주먹만 한 홍로 사과가 출하를 앞둔 8월25일, 경북 청송에서 만난 농부 이종상씨(42) 밭에도 전국에서 유명한 ‘청송 사과’가 익어가고 있었다. 경남 창원에서 중소기업 사원으로 일하던 이씨는 2017년 부모님이 사는 청송으로 옮겨 농사를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땅 2000평을 물려받았으니 빈손으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1년간 농사를 배우고 2018년에는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해는 정부가 청년 농업인을 대상으로 영농정착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청년들의 농업·농촌 유입을 장려하던 때였다.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된 이들은 ‘3년 거치(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기간) 7년 상환’인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후계농 육성자금)’ 또는 ‘5년 거치 10년 상환’인 ‘귀농 창업자금’ 중 하나로 저금리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씨가 두 자금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자 지원제도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는 “융자 지원인 건 똑같으니 어떤 자금을 사용해도 무관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과수는 농지·농기계·저장시설을 마련하고 묘목을 구입하는 데 초기 자본이 적지 않게 드는 품목이다. 게다가 세 식구 생활비가 나오려면 사과밭 5000평은 가꿔야 한다고들 했다. 이씨는 거치기간과 상환기간이 각각 5년과 10년으로 좀 더 긴 귀농 창업자금 2억원을 빌려 가족과 새출발을 준비했다. “2018년에는 귀농·귀촌 분위기가 뜨거웠어요. 청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들 정장 입고 와서 벌벌 떨며 면접을 봤거든요. 저도 그때는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정부가 지원도 많이 해준다 하고, 다들 뭘 해도 할 수 있겠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던 시기 같아요.”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종상씨가 귀농 창업자금을 대출받을 때만 해도 생각하지 못한 악재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재배 방식의 변화로 묘목 수요가 오르며 과거 7000원에서 1만원 사이였던 묘목 값은 한 그루당 1만5000원에서 2만5000원으로 올랐다. 기후위기로 인한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쳐야 하는 횟수가 늘었다. 농약을 비롯한 농자재 가격이 올라 매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밭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 외지에서 인력을 불러야 했다. 일당 3만원 하던 인건비가 8만원까지 올랐다. 쿠팡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사과를 팔아보려 하니 1년에 광고비가 수천만 원이 들었다. 물건을 팔아도 돈이 제때 들어오지 않았다. “앞에선 벌어도 뒤로는 밑지는 장사”였다.
그리고 점점, 사과가 열리지 않았다. 이종상씨는 2017년부터 매일매일 귀농 일지를 써왔지만 5년 전부터는 그마저 소용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날씨를 종잡을 수 없었다. 어린 묘목에서 크고 굵은 사과가 맺히는 법이라 좋은 나무를 새로 구입해 심으며 투자하고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농부의 땀이 무색하게 어린 나무들은 이유 없이 죽기도 했다. 심은 지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나무는 농작물 재해보험 대상이 되지 않아 보상도 받지 못했다. 가끔은 사방이 지옥 같았다.
개인의 실패 아닌 제도의 실패
첫해 농사를 짓고 이종상씨에게 쥐어진 돈은 2000만원. 이후 귀농 창업자금 2억원에 대한 이자를 꼬박꼬박 갚는 기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융자를 받은 지 5년이 지난 2023년, 원금 상환이 시작됐다. 한 해에 갚아야 할 돈이 1년 순수입인 2000만원에 이르렀다. 소득이 투자비용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그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수억 원짜리 정책자금을 ‘겁 없이’ 빌리려는 후배들을 말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빌려주는 수억 원으로 크게 농사지으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후배 귀농인들을 무조건 말립니다. 농민 혼자 무작위적인 재해를 감당하면서 수익을 예상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큰 빚까지 지면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됩니다. 투입 비용을 줄이고 자기만의 안정적인 정착법을 찾는 게 먼저예요.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런 위험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농업 현장에선 기반을 잡기까지 10년은 걸린다고 하는데, 정부는 청년농에게 1년에 수억 원씩 번다는 ‘대박’ 농업인만 알려줘요. 5억원을 빌리면 한 해에 5000만원씩 빚을 갚아야 하는데 농촌에서 누가 그런 돈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꿈을 이뤄줄 것 같던 지원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족쇄가 됐다고, 바짝 마른 사과나무 앞에서 이종상씨가 말했다.

2018년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됐던 청년 농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원금 상환이 시작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겐 생명을 끊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7월15일, 전북 김제에서 인삼과 밀·콩 농사를 짓던 황연우씨(가명·30)가 자신이 경작하던 밭 인근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2016년 청년 후계농으로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고 이듬해인 2018년에는 청년 창업농으로도 선정됐다. 2016년 당시 3년 거치 7년 상환 조건으로 후계농 육성자금 2억여 원을 대출받은 황씨는 거치기간 3년이 지나고 빚을 갚아나가던 2021년, 논 일부를 매각해서 대출금을 전액 상환했다. 인삼은 재배에 5년 이상 걸리는 장기작물인 데다 작황 부진으로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없었다.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야 하는 부담이 시작되자 빚을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우선 빚을 갚은 것으로 알려진다. 같은 해인 2021년 황씨는 다시 후계농 육성자금 1억원을 2% 금리로 대출받았다. 이 당시는 후계농 육성자금의 상환 조건이 완화돼 5년 거치 10년 상환이라는 조건으로 대출이 가능했다. 새 대출에서 2026년부터 시작될 원금 상환을 감당하기 위해 “우직하고 고지식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려 했던” 그가 선택한 것은 단기수익 작물 콩이었다.
황씨는 농지 8만 평을 임차해 콩을 심었다. 그중에는 벼 외 다른 대체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의무인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빌린 땅 1만 평(8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경희 전 김제농민회 회장은 황씨가 콩 농사를 지으며 다시금 좌절을 겪게 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땅이 컸기 때문에 잘만 하면 수익이 남는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날씨가 도와주질 않았다. 초기에 비가 많이 와서 발아가 안 됐다. 결국 갈아엎고 재파종을 했다. 두 번 파종을 했으니 종자 값이며 인건비, 비료 같은 자재비가 만만찮게 나갔을 거다. 게다가 다시 심은 콩도 날이 너무 더워서 발아가 안 됐다. 가진 것들을 다 쏟아서 재기의 발판을 삼아보려 했는데 오히려 적자만 남긴 상황이 됐으니 울고 싶고, 앞이 안 보이고··· 그런 마음 아니었겠나.”
황씨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처했던 현실을 ‘개인의 실패’라고만 치부하기 어려워 보인다. 황씨는 한국농수산대학교 출신으로 농업 관련 지식과 기술을 익힌 청년이었다. 부모님이 김제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던 후계농이기도 하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청소년·청년 농업인 단체인 4H에서 활동하며 농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지역 활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 그마저도, 몇 년째 이어진 농사 실패로 인한 자금 압박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가지고 있던 마지막 생활비로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를 체불 없이 지불하고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이웃 농민들의 전언이다.
황씨의 죽음을 전해 들은 청년 농민들은 그가 2026년 원금 상환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느꼈을 심리적 압박감에 공감했다. 1·2기 청년 창업농(2018·2019년)들은 앞서 보았듯 10년(3년 거치 7년 상환)에 걸쳐 대출금을 갚는 후계농 육성자금과 15년(5년 거치 10년 상환)에 걸쳐 대출금을 갚는 귀농 창업자금을 선택할 수 있었다. 3년 거치 7년 상환이라는 상환 조건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후계농 육성자금의 경우 농자재 가격 급등, 금리인상 등에 따라 농가 부담이 심화되자 서서히 대출 조건이 완화되었다. 2020~2022년에는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조건이 개선됐다가(이 시기에 황씨가 대출을 받았다), 2023년부터는 최대 25년(5년 거치 20년 상환)에 걸쳐 대출금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와 무관하게 귀농 창업자금은 5년 거치 10년 상환이라는 조건이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문제는 2018년에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돼 정책자금을 대출받은 이들의 원금 상환이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1년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나 역시 황씨와 같은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황씨와 동일한 시기에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된 박찬문씨(44)는 아버지와 함께 쌀농사를 짓고 직접 가공해 쌀가루를 판매한다. 박씨는 2016년부터 수원에서 OEM(위탁생산) 방식으로 쌀가루 제품을 만들어 시장성을 확인하는 등 2차 가공과 유통 경험을 미리 쌓으며 귀농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18년, 청년 창업농에 선정됐다. 귀농 창업자금을 선택한 데에는 담당 공무원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부모님이 전남 나주에서 계속 살고 계셨기 때문에 귀농 담당 업무를 하는 공무원을 잘 알았거든요. 얘기를 나눠보면 ‘후계농 육성자금이나 귀농 창업자금이나 둘 다 같은 건데 (제가) 사업은 처음 하니까 상환기간이 긴 귀농 창업자금을 선택하라’ 하더라고요. 어차피 농사짓고 사는 데 큰 차이 없다면서요.”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시행착오가 초보 농업인의 발목을 잡았다. 땅을 찾고, 공장 설립 허가를 받고, 유기가공식품 인증을 받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본격적으로 제품을 제대로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은 2022년. 이제 사업을 제대로 시작해보려 하자 곧 대출 6년 차가 되어 원금을 상환해야 했다. 결국 박씨가 선택한 것은 일반대출을 받아 1차 상환액 3450만원을 갚는 길이었다. “귀농 창업자금은 정책금리가 2%인데 일반대출 금리는 6.8%더라고요. 원금 상환일이 오는데 도저히 돈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이 선택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에 진 빚을 갚으려고 더 가혹한 조건으로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한 번은 갚아도 두 번째는 파산이다”
박찬문씨는 자신 같은 초창기 청년 창업농들에게도 5년 거치 20년 상환으로 개선된 융자 조건을 적용받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계농 육성자금과 귀농 창업자금 모두 자본이나 경험이 부족하지만 농업에 뜻을 둔 이들이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주는 지원책인데도 어느 시기에, 어떤 자금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청년 창업농의 삶이 좌우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라는 것이다.
박씨는 두 정책자금의 구체적인 차이가 청년 농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새로운 지원제도가 도입되던 당시의 행정적 혼란이 정책 대상자들에게 전가됐다는 취지다.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융자 상환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종이 한 장에 포부를 적는 것으로 끝났다. 상환 계획이 현실적인지, 투자 리스크는 없는지 등에 대한 조언도 없었다. 귀농자금을 받기 위해 농업 교육시간을 이수해야 했는데 이 역시 체계적이지 않았다. 어떤 수업에서는 인터넷 사이트 아이디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실효성 없는 교육이 이뤄지기도 했다.” 박씨는 사업 도입 초반, 제도가 충분히 정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생긴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또다시 김제 청년농 사망과 같은 비극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박씨와 같은 1·2기 청년 창업농(2018·2019년)들은 귀농창업자금 상환 피해대책위원회(이하 청창농 대책위)를 꾸리고 차별 없는 대출 상환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입장은 다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귀농 창업자금은 65세 이하 귀농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청년농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에서 상환기간을 25년까지 연장해주면 고령의 대상자들은 70대, 80대가 될 때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 그것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융자 지원은 이차보전 사업인 만큼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차보전 사업이란 특정 사업 대상자에게 저금리로 정책대출을 해주되, 시중금리와 정책금리 사이의 차이만큼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을 말한다. 농식품부 청년농육성정책팀 관계자는 “정책이 바뀐다고 해서 이전 수혜자에게 제도를 소급 적용해주는 것은 행정상 원칙이 아니다. 그런데 추가 지원을 왜 더 해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들은 여러 정책자금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유독 귀농 창업자금과 후계농 육성자금만 문제 삼는지도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2018년 청년 농업인 육성 대책이 나온 이유는 당시 40대 미만 농가 경영주가 전체 농가 수의 1%에 불과할 만큼 줄어들어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후계농 육성자금 한도를 늘리고, 경영 실습교육과 농지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통해 청년 창업농 유치에 나섰지만 2024년 기준, 40대 미만 농가 경영주는 여전히 0.5%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청년농 규모를 늘리고자 융자 중심 지원제도만 확대할 경우 실효성에 비해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2024년에는 제도 도입 후 최초로 청년농 영농 정착지원 선발 인원이 미달되는 일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7년까지 청년농 3만명을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 청년농 사업 규모를 대폭 늘렸지만, 신청 자격을 충족하지 못한 청년농들이 심사에서 탈락하며 선발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 대상자의 소득·재산 기준을 완화해가며 신청자를 추가 모집했다. 과거 기준보다 소득과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도 대출을 받기 쉽도록 했다. 이것은 좋은 정책일까? 정책대출이 무거운 족쇄가 된 1·2기 청년 창업농의 현실은 비록 선한 의도를 가지고 도입한 제도라 해도, 그것이 어떤 위험을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거액의 정책자금을 대출받은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이 그러한 선택에 이르게 된 과정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농촌의 현실에 대해 편향된 정보, 천편일률적 성공법만 알려준 것이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정부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한 사람의 삶이 걸린 일임에도 청년 농업인에 대한 지원제도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농촌에 진입할 때 필요한 관심·탐색·준비 단계의 정책은 미비하고 농업인을 사업가로 만드는 시설·설비 투자 지원제도만 늘리며 ‘3만명 청년농 육성’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느린 농촌의 시간’ 고려해야
강마야 연구위원은 ‘(지역·농촌)살이’를 지원하는 전인적인 제도를 설계해 ‘견학’하는 농업이 아닌 ‘경험’하는 농업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험하는 농업을 통해서 농업이 나에게 정말로 맞는지, 이런 시설 투자로 내가 업을 삼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고 선택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당장 손익이 나지 않는 느린 농촌의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30년간 배 농사를 지은 농민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분에게 ‘배 농사 베테랑이시겠네요’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황당해하더라. 10년은 수해로, 10년은 폭염으로 농사다운 농사를 못 지었고 내 손으로 제대로 배를 키운 건 딱 10년 된다고. 그런데 무슨 베테랑이냐고 하는 거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이런 복잡하고 지난한 농촌의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농사 경험이 거의 없는 청년 창업농들에게 쉽게 거액을 빌려주는 현실을 우려했다.
“2018년 청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원사업 대상자가 큰 규모로 늘었다. 이들이 가진 담보는 큰돈으로 큰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계획서 한 장이다. 정부는 유리온실과 스마트팜을 내세운 자본집약적 농사를 하겠다는 청년농을 키우고 싶어 하고, 청년들은 정부의 과장광고를 믿고 거액의 빚을 짊어진 채 농업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의 현실은 제도 설계에 반영되지 않고, 사각지대가 생겼다. 누군가 보기엔 그저 섬세하지 않은 빈틈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치명적인 일이 되고 있다.” 실제 이 빈틈 사이로 이미 한 청년 농부가 미끄러졌다.
청년 농업인의 죽음에 대해 전북 고창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는 최미화 청창농 대책위원장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하는 증언이자 증명”이라고 말했다. 올해 8월28일, 첫 원금 상환 시기가 찾아온 최미화씨는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어서 보험을 해지하고,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그래도 부족한 대출금을 충당하기 위해 6%대 금리로 일반대출을 받았다. 상환금을 갚고 나니 통장에 남은 돈이 2만원이었다. 최씨는 “김제 농부도 마지막에 생활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들었다”라며 그가 느꼈을 어려움에 공감했다. “다들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 첫해는 어떻게든 가진 것을 모아서 막는다 해도, 두 번째 상환부터는 파산이라고 말한다. 농촌을 떠날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났다. 끝까지 해보겠다고 버틴 게 우리들이다. 새로운 청년 농업인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촌에서 버텨내고 있는 청년농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청송·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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