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무법자 ‘청소년 픽시 자전거’… 경찰도 비상

한영원 기자 2025. 9. 17. 0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집중 단속
지난 14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양천구 양천공원에서 한 청소년이 각종 브레이크 기술을 연습 중인 모습. / 한영원 기자

“기술 한번 넣자!”

지난 1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양천구 목동 파리공원에 갔더니 자전거를 몰고 나온 초·중학생 무리가 곳곳에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자전거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급제동하면서 미끄러지듯 멈추는 기술인 스키딩(skidding)을 하는 탓에 바퀴가 바닥에 쓸리며 ‘끼이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밤공기를 쐬며 편안하게 걷던 시민들이 눈을 찌푸렸다. 주민 신동식(77)씨는 “학생들이 인도까지 침범해 정신없이 달려 부딪힐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이 탄 자전거는 모두 ‘픽시 자전거’다. 경기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선수용 자전거로 페달을 앞으로 밟으면 앞으로 나가고, 뒤로 밟으면 뒤로 간다. 제동거리가 일반 자전거보다 4~5배 길어 돌발 상황에서 바로 멈추기 어렵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에서 픽시 자전거를 타던 한 중학생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혀 사망했다. 이달 19일엔 대전에서 픽시를 타던 중학생이 택시와 부딪혀 부상을 입었다.

그래픽=정인성

작년 5571건의 자전거 교통사고로 75명이 숨지고 6085명이 다쳤다. 전년도와 비교해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19%, 8.6% 증가했다. 연령별 부상·사망자는 18세 미만이 1461건(26.2%)으로 가장 많았는데, 경찰은 상당수가 픽시 자전거로 인한 사고라고 추정하고 있다.

15일 오후 9시 파리공원에서 2.4km 떨어져 있는 양천공원에선 헬멧을 안 쓴 10대 청소년들이 보행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칼치기’를 했다. 인근 중학생 이모(15)군은 “브레이크를 달면 친구들에게 멋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불법인 걸 알지만 경찰을 보면 그냥 피한다”고 했다. 제자리에서 앞바퀴를 든 채 이동하는 기술을 보인 방모(15)군은 “브레이크를 안 달면 위험하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해서 앞바퀴에만 달았다”며 “앞바퀴만 급제동을 걸면 뒷바퀴가 허공에 뜨게 돼 더 위험한데 어른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10대 픽시족의 폭주(暴走)로 인한 사고가 급증하면서 경찰은 최근 ‘픽시 출몰 전국 지도’를 만든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경찰청은 최근 전국 경찰서로부터 10대 픽시 자전거족들이 몰리는 지역을 2~3곳씩 제출받았다. 전국 교통경찰들이 공원·학원가 주변을 탐방해 요주의 지역을 취합했다. 서울과 경기·남부권만 60곳이 넘는다. 서울에선 약수역, 독립문초등학교, 잠수교, 한강중, 답십리초 주변이 대표 ‘출몰 지역’이다. 경기 남부권에서는 수원 행궁광장, 영통역, 안양 범계로데오거리 등이 포함됐다.

경찰은 개학 시즌을 맞아 17일부터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픽시 자전거 운행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다. 브레이크 장치를 떼고 인도·차도에서 픽시 자전거를 몰다가 적발되면 도로교통법상 안전 의무 위반이 적용된다. 성인은 즉결 심판 대상이 될 수 있고 18세 미만 청소년의 경우 보호자에게 통보한다. 보호자가 브레이크를 빼고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을 방치할 경우 아동복지법상 방임 행위로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어두운 밤 서울 시내 도로에서 곡예 주행을 하는 자전거 폭주족들./인터넷 커뮤니티

픽시 자전거는 저가형이 30만~40만원, 고급형은 100만~20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브레이크 케이블과 부품이 없어 자전거 모양이 깔끔해 1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 보니 ‘신(新)등골 브레이커’라는 말도 나온다. 학부모 김모(47)씨는 “집에 자전거가 있는데 중학생 아들이 ‘픽시’를 사 달라고 해 난감하다”고 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공원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픽시 자전거를 못 타게 하고, 전용 경기장 등 정해진 공간에서만 탈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픽시 자전거

변속기·브레이크 없이 하나의 기어만 사용해 축과 톱니가 고정돼 있는 고정 기어(fixed-gear) 자전거의 줄임말. 페달과 뒷바퀴가 고정되어 있어 급제동이 어렵다. 선수들이 쓰는 경주용 자전거인데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