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도박인생 고해성사… 前, 중독자입니다 [도박 중독 넘어, ‘회복’으로·(上)]
‘회복자’가 전한 치유 과정
자신의 의지로 탈출 꿈꿨던 김씨
‘인천치유센터’ 방문해 문제 직면
질병처럼 평생 관리·통제해 ‘극복’
“거짓말·회피… 혼자 고민 말길 ”

“언제든 내 의지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올해로 도박을 그만둔 지 10년이 된 김지웅(가명·53)씨는 19년간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도 늘 이런 마음이었다고 한다. ‘도박중독 추방의 날’(9월17일)을 앞두고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의 1호 상담자인 김씨를 만났다. 그는 “가족의 삶까지 무너지는 것을 겪고 나서 홀로 도박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상담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며 오랜 도박 중독에서 회복한 과정을 되돌아 봤다.
■ 가족 삶까지 무너져… 도박 중독의 늪
유년 시절부터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다는 김씨는 친구들과 내기를 즐겨했고, 성인이 된 이후부턴 포커나 카지노 등 도박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취업 후에도 번 돈을 도박에 탕진하기 일쑤였다. 그는 잃은 돈은 다시 도박으로 메꾸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돈이 부족해지면 대부업체, 지인, 친척, 직장 동료 등에게 손을 벌렸다. 그 빚이 10억원이 넘어설 정도였다.
김씨는 직장을 그만둔 사실을 숨기고 월급을 아내에게 가져다주려고 해외 카지노에 가서 도박을 하기도 했다. 그가 돈을 빌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지인들에게 다 퍼진 상태였다. 휴대전화에 있는 수백 개의 연락처 중 더는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도박을 하다 큰돈을 잃었을 때에는 죽음까지도 생각했다”며 “절망 속에서 아내에게 숨겨왔던 도박 중독과 빚 등의 문제를 뒤늦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 벼랑 끝에서 찾은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김씨는 아내의 설득으로 지난 2015년 8월 막 문을 연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이하 센터)를 찾아갔다. 그는 ‘살 수만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상담 프로그램에 임했다.
김씨는 “회사나 집에 도박 빚에 대해 알리겠다는 채무자의 압박을 받으면 두려움에 돈을 빌려서, 또는 도박을 해서라도 갚으려고 했었다”며 “상담과 회복자 모임을 나가면서 도박 문제를 회피하지 않아도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 나갔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가족 등 주변에서 빚을 갚아주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채무 문제가 커지면 부모님의 도움으로 해결해온 그였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낮아진 신용이 회복되었기에 다시 돈을 빌려 도박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회복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김씨는 “회복 과정 중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면 충동적으로 도박 생각이 났다”며 “아내의 도움을 받아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어려움을 이겨내고 중독재활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는 현재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도박의 위험성 등을 알리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요즘은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언제든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어떤 것이 도박인지, 어떻게 중독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리는 교육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 “도박 중독은 끊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
“당뇨나 고혈압처럼 도박 중독도 평생 치유·관리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 올해로 15년차 ‘도박 중독 회복자’인 박민수(가명·57)씨는 센터 소속 직원이다. 그는 ‘회복자 인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자격증 등을 갖춰 정직원으로 채용된 사례다.
그는 ‘언제라도 중독이 재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집, 은행 적금, 카드 등 모든 명의를 가족의 이름으로 유지하고 있다.
박씨도 회복 과정에 도박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버텼다고 한다. “단절됐던 가족관계가 회복되고, 더 이상 빚 독촉 전화로 불면을 겪지 않아도 돼 만족스럽다”는 그는 “도박 중독은 완치가 없는, 개인 의지로 끊을 수 없는 질병이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발이 흔히 일어날 정도로 중독 회복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상담이나 자조 모임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중독을 치유하고 관리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김정열 인천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다른 중독과 달리 도박 중독의 주요 증상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가족들에게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채무자에게 거짓말을 하며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복의 시작은 도박문제에 대해 정직해지는 것”이라며 “도박 중독 문제로 홀로 고민하고 있는 당사자나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센터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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