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안 팔아서 팔리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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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일본 도쿄의 어느 패션 브랜드 매장이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그 브랜드는 도쿄의 대형 편집매장에서 경험을 쌓은 팀장이 독립해서 운영하는 곳인데, 그는 12년간 전 회사에서 일하며 "고객의 마음을 얻는 법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구매 허들을 상당히 높인 셈인데, 지금 이 브랜드의 도쿄 매장 예약은 몇 달이 꽉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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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일본 도쿄의 어느 패션 브랜드 매장이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초대를 받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브랜드는 도쿄의 대형 편집매장에서 경험을 쌓은 팀장이 독립해서 운영하는 곳인데, 그는 12년간 전 회사에서 일하며 "고객의 마음을 얻는 법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그의 운영 방안은 완전 예약제 의류 매장이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미리 예약한 시간에 가야만 실물을 보고 옷을 살 수 있다. '리셀'을 노린 다량 구매도 금지. 구매 허들을 상당히 높인 셈인데, 지금 이 브랜드의 도쿄 매장 예약은 몇 달이 꽉 차 있다. 서울에서의 브랜드 팝업 이벤트 역시 관련인들에게 소소한 화제였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인사만 하러 간 건데 '지금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옷'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한번 만져보기라도 할까' 싶어졌다. 구매 욕구가 생겼는데 물어보니 이미 많이 팔려서 내 사이즈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욕망의 물살에 휩쓸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가까스로 내 사이즈의 옷을 샀다.
홀린 듯 돌아오는 길에 지난여름 쇼핑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7월 26일 카녜이 웨스트 인천 공연. 공연이 시작돼도 '공식 굿즈'인 의류를 판매하는 상점 앞 인파가 여전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면 나도 거기서 공연을 일부 포기하고 옷을 사는 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식 굿즈'는 공연 티켓을 구매한 사람이 그 현장에서만 살 수 있었다. 역시 구매 허들이 높다. 옷을 사느라 공연 관람을 꽤 놓치면서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하고, 소비 욕구란 게 무엇인가 싶기도 했다.
양극화되는 21세기에는 소비 난이도도 양극화된다. 모바일 디바이스로 온갖 물건을 당일 배송받아 살 수 있는 세계 한편에 물건 하나를 사려 온갖 경쟁을 뚫어야 하는 세계가 있다. 안 팔겠다는데도 손님들이 몰리는 꿈같은 비즈니스의 선제조건은 무엇일까. '선망성'이다. 선망성의 조건은 분위기처럼 모호한 요소일 수도 있으나 결국 그 뿌리엔 품질이 있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데, 롤렉스나 에르메스의 기초는 품질이다. 이들의 물건은 타사 제품에 비해 견고하다. 그래서 '빈티지'가 돼도 품질이 여전하다.
말은 쉽고 현실은 어렵다. 손익 분기를 맞춰야 하는데 품질에 고집을 부리다가는 사업이 끝장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구매에 허들을 두거나 품질에 주력하는 건 사업 전략이라기보다는 인생의 태도다. 앞서 언급한 도쿄의 패션 브랜드가 쇼룸제를 고집하는 이유도 단순히 구매를 통제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신들이 성의 있게 만든 물건을 천천히 설명해 고객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팝업스토어 현장에는 대표도 와 있었다. 그에게 성공의 비밀을 물었다. 그는 "좋은 물건과 자신의 감각에 대한 믿음"이라고 답했다. 그에게 사업은 이런 개인 철학의 추구일 것이다. 살면 살수록 먹고사는 일 자체가 각자의 삶의 철학 구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왜 돈을 버는가. 왜 일을 하는가. 무엇을 갖고자 하는가. 안 팔아서 팔리는 물건들이 건네는 인생의 질문이다.
[박찬용 에디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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