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발레 ‘그날, 서대문형무소 8번방의 메아리’ [공연리뷰]

인터넷에서 정의한 춤을 요약해 본다. ‘춤은 음악이나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 활동을 넘어,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또한 시대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보편적인 예술이며, 감정·사상·이야기를 신체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공동의 춤을 통해 인간은 연대감과 소속감을 강화시키고 문화, 의식, 사회적 결속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1919년, ‘그날’ 대한의 하늘에는 독립의 피맺힌 함성이 메아리쳤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을 외쳤다. 외침이 커질수록 일제의 탄압은 더 악독해 졌다. 수많은 사람이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러져 피를 흘렸다. 또 주검이 된 백성이 부지기수였다. 어린 학생도 있었다. 상인, 선생, 청년, 종교인도 있었다. 거기엔 수원기생 김향화와 동료들도 있었다. 손수 태극기를 만들고 ‘그날’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을 외쳤다.
‘그날’, 대한독립을 외치며 행진하고 절규했던 행위는 ‘춤(performance)’이었다. ‘춤’을 통해 대한 백성이 연대했고 ‘춤’과 함께 사회적 결속을 단결시켜 투사가 되었다. ‘춤’을 통해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렸다. ‘춤’으로 우리 민족은 죽음으로 저항한다는 강인함을 일제에 경고했다. 김향화는 구속되어 서대문형무소 8번 방에 수감된다. ‘그날’ 향화는 5살이 어린 유관순 등 감방 동료들과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그들은 감옥에서도 만세를 외치고 저항했다. 노래를 부르며 독립을 염원했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지난 8월 30일 수원의 하늘에는 ‘그날’의 춤과 노래가 울려 퍼졌다. 수원시티발레단이 김향화를 주제로 <그날, 서대문형무소 8번방의 메아리> 창작발레가 초연되었다. 공연은 시작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잔인하게 고문을 당하는 비명소리에 관객은 머리칼이 서고 소름이 돋혔다. 이어 조선의 관기다운 예인들의 흥겨운 향연이 펼쳐졌다. 한복의 치마 선과 무용수의 춤사위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흥겨움도 잠시 일본군의 접대 강요와 폭행, 그리고 동료 기생이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으며 반전한다. 급기야 동료가 숨겼던 태극기가 일본군에 발각되어 탄압은 더해진다. 반전에 반전이 무용수들의 몸으로 표현되고 동작을 연출된다. 관객들은 ‘그날’의 현장으로 빠져들었다. 무용수들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몸짓은 일본군에 의해 짓밟혔다. 짓밟히면 짓밟힐수록 더 빨리 일어났고 더 큰소리로 외쳤다. ‘그날’의 춤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피의 투쟁이었다. 칼과 총 앞에 몸을 던져야 했다.
공연을 보기 전 관객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발레 무용수들의 가녀린 몸이 ‘그날’의 피맺힌 절규를 표현할 수 있을까? 무용수들의 부드러운 몸짓이 ‘그날’의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결기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무용수들의 춤사위로 ‘그날’ 일본군의 잔인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기우였다. 향화와 백성들이 외치던 독립의 절규는 가슴으로 전해졌다. 쇠창살로 갇힌 좁은 감방 안에서 맺었던 독립의 맹세는 몸으로 느껴졌다. 손톱이 뽑히고 내장이 터지는 ‘그날’ 일제의 고문과 폭압은 눈앞에 펼쳐졌다.

음악은 무용수의 몸에 실려 관객을 전율케 했다. 조명과 영상은 휘감기는 옷자락에 감겨 관객을 숨 막히게 했다. 당겼다 밀었다 조였다 풀었다. 관객들은 연출 감독의 의도에 빨려 들어갔다. 무용수들의 춤사위에 젖어 들었다. 그들은 고문에 찢어진 몸으로 차가운 쇠창살에 갇혔어도 힘주어 노래했다.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느님께 기도할 때 대한이 살았다~” 독립투사들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만세를 불렀다. ‘그날’ 함께 만세를 부르지 못했던 관객 모두는 가슴속에 있던 응어리를 눈물로 토했다. ‘그날’의 피맺힌 절규는 오늘 춤으로 토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춤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그날’ 그곳에 함께 있게 했다.
민간예술단체에서 창작예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땀을 쏟고 열정을 쌓아 만든 작품일 것이다. 독립투사를 주제로 한 발레작품은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이 있고 ‘그날,~’이 두 번째 작품으로 알고 있다. 수원의 독립투사를 지역의 예술단체에서 발레작품으로 시민들에게 선을 보인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창작이라는 도전 정신이 앞으로 더 성숙한 작품으로 지속발전시켜 우리의 가슴에 ‘그날’의 독립정신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임면수, 김세환, 이선경, 전현석...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기록은 빛을 잃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있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했다. 앞으로 독립투사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기억하는 각 분야의 예술작품들이 더 많이 창작되기를 기대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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