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민주주의관 오작동… ‘권력서열’론은 ‘폭정의 시대’ 예고편[허민의 정치카페]

허민 전임기자 2025. 9. 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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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의 정치카페 - 권력서열론과 삼권분립
몽테스키외 “권력이 하나로 집중되면 모든 게 끝장”… 삼권분립, 민주주의 국제규범으로
李의 ‘대통령·의회>법원’ 인식은 삼권 장악 신호탄… ‘내란 특판’ 맞물려 헌정질서 흔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면서, 국민주권-직접 선출권력(대통령과 입법부)-간접 선출권력(사법부) 순이라고 밝혔다. 입법부가 시스템을 설계하면 사법부는 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발 ‘권력서열’론은 그의 민주주의관이 오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는 집권여당의 내란 특별(전담)재판부 추진과 맞물리며 헌정 질서의 뿌리를 흔드는 서사가 되고 있다.

◇법의 정신

근대 민주주의의 헌법체계와 권력이론의 토대가 된 ‘삼권분립’론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처음 제시됐다. 몽테스키외는 18세기 영국의 헌정체제를 통해 국왕(집행권)·의회(입법권)·법원(사법권) 등 삼권의 분리와 함께 상호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삼권이 서로 독립하면서도 협력하는 체제를 분석하면서 권력분립 체계를 구조화했다. 아래 두 구절은 몽테스키외의 권력이론의 백미다.

(1) 삼권 중 두 권력이 하나로 집중될 때:“입법권과 집행권이 동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기관에 결합될(united) 때,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같은 군주나 같은 의회가 폭정적인 법을 만들고 그것을 폭정적 방식으로 집행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법권이 입법권이나 집행권과 분리되지(separated) 않아도 자유는 없다. 사법권이 입법권과 연결되면(joined) 국민의 생명과 자유가 자의적 지배에 노출될 것이다. 사법권이 집행권과 연결되면 재판관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법의 정신’ 11권 6장)

(2) 삼권 모두 한 손에 집중될 때:“같은 사람, 귀족이든 민중이든 동일 집단이 법을 제정하는 권력(입법), 공공의 결정을 집행하는 권력(행정), 범죄나 분쟁을 심판하는 권력(사법) 등 삼권을 동시에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끝장나고 말 것이다.”(ibid)

몽테스키외가 삼권분립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과 로드맵까지 그리지는 않았지만 ‘권력은 권력으로 막아야 한다’는 원리만큼은 충분히 제안했다. 이후 삼권분립론은 권력의 집중을 막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근대국가들의 민주주의 헌법의 핵심 원리로 계승됐다. 무엇보다 ‘연방주의자 논고’ 등에서 밝힌 대로 세계 최초의 삼권분립 국가인 미국의 헌법 제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삼권의 서열

입법·행정·사법 간의 ‘체크 앤드 밸런스’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표준이 됐다. 이 대통령의 ‘권력서열’론은 이 국제표준과 충돌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주권의 최종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사법부는 선출권력에 종속된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헌정체제의 기조는, 입법·행정·사법이 동등한 위상에서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야 국민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즉 ‘세 개의 권력 간에 서열이 없다’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다. 행정권력이나 의회권력이 사법권력의 ‘상위’로 설정되면 필연적으로 전제정으로 흐른다는 게 몽테스키외의 통찰이었다. 이는 ‘법의 정신’이 가리키는 자유 보장 원리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외는 세 단어로 권력 앞에 놓인 국민의 운명을 설명했다. united(결합된), joined(연결된), 그리고 separated(분리된). 입법권과 집행권이 ‘united’ 되면 자유는 사라진다고 했고, 사법권이 입법권과 ‘joined’ 되면 국민의 생명과 자유는 자의적 지배에 노출된다고 했다. 오직 세 권력이 ‘separated’ 될 때 자유가 보장된다는 게 그의 논지다. 삼권이 위아래로 줄 세워지는 순간, 분립이 아니라 종속이 되고, 곧 자유의 종말을 맞게 된다는 통찰이다.

이 대통령이 ‘의회 다수의 결정=국민 전체의 뜻’이라는 등식을 전제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다수의 폭정’을 용인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제헌헌법 이후 수백 년간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켜온 세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 오직 헌법만이 권력의 경계를 긋고 역할분담을 지울 수 있다.

◇위험한 특별재판부

이 대통령의 ‘권력서열’론은 여권의 내란 특별재판부 구상과 맞물려 있다. 즉 특별재판부 추진은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는 정치적 프레임의 구체적 제도 실험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헌정의 최고 규범인 삼권분립 원리를 희생해서라도 ‘내란 청산’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위험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시스템의 설계는 입법부 권한이고, 사법부는 그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면서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런 사고는 ①삼권분립에 기초한 헌정 질서의 원리를 오해한 것이거나 ②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이거나 ③정권에 의한 ‘사법부 길들이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내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 어느 것이든 ‘정치의 사법화’를 부르고, 궁극에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해온 ‘사법의 정치화’를 살찌울 것이다.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는,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27조 1항)고 명시한 헌법 조항 위반이다. 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01조 1항)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 등에 나타난 법원의 독립성 위반이다. 나아가 특정 시기에 특정인을 다루는 재판부를 만드는 것은 법원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뒤흔드는 것이다.

대통령은 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한 선례를 언급했다. 하지만 반민특위 특별재판부는 제헌헌법(1948년)에, 3·15부정선거 특별재판소는 4차 개헌(1960년) 헌법에 근거를 뒀다. 헌법에 근거하지 않은 5·16혁명재판소(1961년)가 있었지만, 군사정권 시대의 일이었다.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가 가능하려면 ‘걸레 헌법’을 만드는 개헌을 하든지, 다수의 폭정으로 위헌적 입법을 하든지 둘 중 하나 이외엔 방법이 없다.

◇자유의 등불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발 기상천외한 권력론의 신세계를 경험 중이다. 권력서열론은 선출독재의 신호탄이자 삼권 장악의 예고편이다. 자유의 등불은 권력의 서열 속에서가 아니라, 삼권분립 속에서 타오른다. 삼권분립이 무너지면 무엇보다 자유가 가장 먼저 무너질 것이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견제와 균형’은 입법·행정·사법 등 삼권의 분립과 관련한 원리. 각 권력이 상호 감시·통제·협력함으로써 한 기관에 의한 권력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주요 원리로 함.

‘법의 정신’은 삼권분립이론을 처음 설계한 몽테스키외의 저서. 집필 준비에만 20년 세월을 필요로 했다는 이 책은 세계 최초의 삼권분립 국가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침.

■ 세줄요약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집행(정부)·입법·사법 등 삼권의 분리와 함께 ‘견제와 균형’의 중요성을 설명. 삼권분립은 권력의 집중을 막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민주주의 헌법의 핵심 원리가 됨.

삼권의 서열: 세 개의 권력 간에 서열이 없다는 것은 미국 제헌헌법에 주요하게 반영된 이후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 헌정체제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서열’론은 삼권분립을 채택하는 국제표준과 충돌.

위험한 특별재판부: 대통령발 ‘권력서열’론은 민주주의관의 오작동을 말해줘. 이는 집권여당의 내란 특별(전담)재판부 추진과 맞물리며 헌정 질서의 뿌리를 흔들어. 권력서열론은 선출독재의 신호탄이자 삼권 장악의 예고편.

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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