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사법 개혁과 ‘권력의 서열’

권혁범 기자 2025. 9. 1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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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마친 후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헌법을 찾아봤습니다.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66조 4항>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101조 1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이 세 개 조항이 이른바 ‘삼권분립’의 근거입니다. 국회·정부·법원이 입법·행정·사법으로 권력을 나눠 가지고, 서로 독립하면서 견제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삼권이 분립한다’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룬다’ 등 선명한 조항은 헌법에 없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 삼권 중 사법권이 논란입니다. 거대 여당이 ‘개혁 대상’으로 삼고, 당 대표가 “폭풍처럼 몰아쳐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고 공언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갈등이 커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눌 때 ‘좌파 vs 우파’ 외에 ‘민주화 세력 vs 산업화 세력’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민주화 세력으로 분류되는 현 여당은 검찰과 법원에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역대 정부에서도 검찰·사법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 개혁은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더 빠르고 세게’ 강행하려 합니다.

정부·여당의 ‘개혁 의지’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지난 5월 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부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합니다. 민주당은 즉각 “사법 쿠데타” “부당한 선거 개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죠. 대선 한 달 앞, 정국은 요동쳤습니다.

여진은 아직 이어집니다. 급기야 여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퇴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지난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조 대법원장을 겨냥해 “사법 독립을 위해서 자신이 먼저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합니다. 판사 출신인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검찰 독재 시대에는 침묵하다가 가장 민주적인 정권 아래에서 무슨 염치로 사법부 독립을 주장하느냐”며 “세계사적으로 부끄러운 검찰 쿠데타 체제에서 사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느냐”고도 따졌습니다.

이보다 하루 앞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페이스북에 “사법 개혁은 사법부가 시동 걸고 자초한 게 아닌가”라며 “대선 때 대선 후보도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이 재판 독립인가”라고 썼습니다.

15일엔 대통령실에서도 관련 언급이 나왔습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날 추 의원의 글에 관해 “특별한 입장은 없다”면서도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점에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강 대변인은 “국회가 어떤 숙고와 논의를 통해 헌법 정신과 국민 뜻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국민의 ‘선출 권력’”이라고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요. ‘선출된 권력’인 국회에서 이런 요구가 나왔다면, ‘임명된 권력’인 사법부는 그 이유를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됩니다.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15일 국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여당의 사퇴 요구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력 서열’ 논쟁까지 더해지면서 일은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이날 강 대변인의 발언에도 ‘권력 서열’ 논리가 깔렸습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사법부 독립이란 것이 사법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국민의 주권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모든 것은 국민에게 달렸다. 대한민국에는 권력 서열이 분명히 있고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사법이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것인데 어느 날 전도돼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며 “결정적 형태가 정치 검찰이다. 나라가 망할 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어지러운 형국입니다. 그런데 이 혼란을 예견한 법관이 있습니다. 다만, 소수 의견으로 묻혔을 뿐. 사태의 결정적 원인이 된 지난 5월 1일 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때, 심리에 참여한 12명의 대법관 중 2명이 ‘이건 아니다’는 취지로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판결문에 이런 문장을 남깁니다.

‘선례의 방향에 역행하는 해석 방식이 검사의 기소편의주의와 결합하면 민주주의 정치와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해소돼야 할 정치 집단 사이의 상호 공방을 법정으로 가져와 법원 심판대에 올려놓음으로써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불러온다’. ‘선거의 공정성을 내세워 수사기관과 법원이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통로를 여는 것은 선거의 자유와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은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소수 의견을 낸 2명의 대법관은 이를 경계했습니다. ‘사법의 정치화, 선거의 자유와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여러 부작용’을 우려한 겁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시, 헌법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권력의 서열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입법권은 국회, 행정권은 정부, 사법권은 법원의 영역입니다.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서로 견제하는 기능도 헌법에 적혔습니다. 헌법은 견제는 하되, 제 것이 아닌 권력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법은 정치화했습니다. 정치라고 떳떳할까요. 정치 역시 사법화했습니다. 법원에 “이리 판결하라, 저리 판결하라” 간섭하고 윽박지르는 일이 허다합니다. 양쪽 다 그러지 말았어야 합니다.

헌법 <제40조> <제66조 4항> <제101조 1항>. 국민이 빌려준 권력을 나눠 가진 국회·정부·법원이 이 세 개 조항만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초등학생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인데, ‘어른들 세상’에선 왜 이리 어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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