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죽음을 막기 위한 전 세계 언론의 ‘블랙아웃’

8월25일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전 세계 언론사에 메일을 보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언론인 살해를 중단하고 취재진 접근을 요구하는 공동 행동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이었다. 그 방식은 다음과 같다. 9월1일 하루 동안 각자의 매체를 통해 ‘블랙아웃된’ 검은색 이미지를 송출·발행해달라는 것. 불이 꺼지듯 모든 보도가 중단된다는 뜻을 담았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의 언론인 표적 공격이 계속된다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시사IN〉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참여 의사를 전했다.
외신의 접근이 제한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은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유일한 목격자’였다. 반복되는 공습과 피난, 식량 부족 사태를 겪었고 동료와 가족의 죽음을 마주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RSF는 가자지구 언론인들을 지원해온 국제 언론단체다. 현지 언론인들에게 생필품과 통신 장비 등을 보내는 한편, 이들이 국경 바깥으로 대피할 수 있게 도왔다.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여론전도 여러 번 펼쳤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RSF 티보 브뤼탱 사무총장은 9월2일 〈시사IN〉과 화상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 같은 단체들의 호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전 세계 언론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8월10일 아나스 알샤리프 기자(29)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알자지라〉 소속으로 가자지구 상황을 날마다 생중계해온 기자다. 지난해엔 로이터 사진팀의 일원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많은 외신이 그의 보도를 인용하고 있었기에 국제사회의 충격이 컸다. 이날 함께 있던 동료 기자 5명도 숨졌다. 알샤리프 기자가 생전에 남긴 유서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스라엘이 저를 살해하고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왜곡이나 위조 없이 전하는 데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여러분에게 팔레스타인을 맡긴다. 가자를 잊지 말아달라.”

불과 2주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었다. 8월25일 가자지구 남부 나세르 병원 4층이 폭격당하며 언론인 5명을 포함해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자지구 아동의 영양실조 상황을 보도해오던 AP 통신 마리암 다가 기자(33)도 그중 한 명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전쟁 한가운데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민간인들의 고통을 전달했다. 전쟁 중 단 하루도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는 그는 열세 살 아들에게 유언장을 미리 써두었다. “네가 자라 결혼하고 딸을 낳게 되면, 내 이름을 따라 그녀를 ‘마리암’이라고 지어주렴. 너는 나의 사랑이고, 나의 심장이며, 나의 버팀목이고, 나의 영혼이자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8월26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살해된 팔레스타인 기자가 247명에 달한다. 언론인 사망 수로만 보면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언론인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 브라운 대학의 왓슨 국제공공정책연구소가 올해 4월 발표한 내용으로, 이 보고서의 제목은 ‘뉴스의 묘지’다.
이스라엘 군은 해당 언론인들의 죽음에 대해 “기자로 가장한 테러리스트를 공격한 것이며 언론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브뤼탱 RSF 사무총장은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측이 제시한 증거를 검토했지만 터무니없었다. 하마스 군사 퍼레이드를 기록하던 사람의 사진이라든가, 하마스 등록번호라며 엑셀 시트에서 찍어온 사진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게다가 공습을 받은 병원은 언론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었다. 사실상 팔레스타인 기자들을 표적으로 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 국제사회가 함께 모여 기자들을 모욕하고 표적 삼는 범죄적 행위에 대해 ‘안 된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범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
‘가자지구 언론 자유를 위한 세계 최초 언론 연대.’ 8월28일 구글 독스로 공유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어떤 언론이 얼마나 참여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과거에도 RSF가 언론 자유가 침해된 사안에 대해 전 세계 언론들의 참여를 촉구한 적이 있었지만 응답이 많지 않았다고 브뤼탱 사무총장은 전했다. 해외 이슈에 대해 개별 언론사가 목소리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서다. 이번에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9월9일 제80차 유엔 총회를 앞두고 국제사회 여론을 만드는 게 RSF의 목표였다. 긴장과 불안이 감도는 사이 그렇게 9월1일 0시가 찾아왔다.
시간대가 가장 빠른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지나 미국 대륙까지 70여 개 국가 270여 개 언론사에서 스크린, 지면, 홈페이지, SNS 계정 등을 통해 ‘검은 화면’을 잇따라 띄웠다.
지면으로 참여한 언론사 가운데 영국 〈인디펜던트〉는 1면 백지 발행을 했고 네덜란드 〈NRC〉, 독일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워〉, 레바논 〈로리앙 르주르〉, 프랑스 〈뤼마니테〉 등도 1면을 온통 흑백으로 채웠다. 독일 신문 〈타츠〉는 가자지구에서 활동 중인 스무 살 말락 기자의 이야기를 실었다.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죽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위해 더 많이 나서줄까요?” 스페인 공영방송 RTVE는 추모의 의미를 담아 1분간 방송을 중단했다.
온라인 매체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검은색 배너에 쓰인 ‘가자지구 언론인을 보호하라(#ProtectJournalistInGaza)’ ‘기자를 가자지구로(#LetReportersIntoGaza)’ 문구를 일제히 게시했다. 공통의 메시지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이 계속 기자를 살해한다면, 머지않아 당신에게 뉴스를 전할 이가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언론사들이 참여한 건 처음이다.” 브뤼탱 사무총장은 여러 차례 놀라웠다고 전했다. 당초 참여 의사가 확인된 언론사는 150여 개였는데 마지막 하루 사이 숫자가 확 늘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매체의 참여가 돋보이는 가운데 한국 매체도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았다. 〈시사IN〉을 비롯해 〈경향신문〉 〈뉴스민〉 〈뉴스타파〉 〈단비뉴스〉 〈미디어오늘〉 〈참세상〉 〈프레시안〉이 참여했다. 언론업계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참여는 저조했다. 미국에서는 11개 언론사만 이름을 올렸다. 공영방송 NPR과 〈더 인터셉트〉가 있었지만, 누구나 알 만한 다른 ‘메이저 언론사’들은 거의 동참하지 않았다. 영국도 6개 매체에 그쳤다. 명시적인 이유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미국 등 서방 언론이 외쳐온 저널리즘 가치가 이스라엘 문제에서만 굳게 닫힌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금까지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 움직임이 없었던 게 아니다. 지난 6월5일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되었다. 당시 도로시 셰이 주유엔 미국 대사 대행은 “이번 결의안은 휴전에 도달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훼손하고 하마스를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의 언론들이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것이 한계는 아닐까? 브뤼탱 사무총장은 참여하지 않은 언론을 비난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제안한 행동은 언론사 입장에서 핵심적인 편집 방침을 바꾸라는 민감한 요구로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 언론사가 참여했고, 많은 매체가 이번 공동 행동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에 주목해달라.” 전 세계 언론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건’이었기에 참여하지 않은 매체도 결국 관련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가자지구 언론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흠집 내온 이스라엘 측의 ‘프로파간다’를 완전히 저지했다. 전 세계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이 팔레스타인 기자들에게 우려를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언론인 동료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9월1일 이스라엘 외교부는 전 세계 언론이 참여한 공동 행동에 대해 “저널리즘이 아니라 정치”라고 맹비난했다. “언론매체가 동시에 뉴스 보도를 중단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정치 선언문만 내보낸다면 이는 전 세계 언론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편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가자지구 관련 뉴스는 하마스가 퍼뜨리는 거짓 캠페인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X(옛 트위터)에 올린 이 게시물을 바락 샤인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리트윗했다.
뷔르탱 사무총장은 “수많은 언론사들이 만든 움직임을 ‘반이스라엘’이라는 편향적 표현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잘못되었다”라고 반박한다. “그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언론인 동료를 지지하는 마음이라는 점을 그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언론사 가운데 두 곳의 참여가 그에게 유독 뜻깊다. 필리핀 언론 〈래플러〉와 콜롬비아 일간지 〈엘 엑스펙타도르〉다. 〈래플러〉는 두테르테 필리핀 전 대통령의 언론 탄압에 맞서온 매체로, 설립자 마리아 레사는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엘 엑스펙타도르〉는 1980년대 콜롬비아 마약 밀매를 폭로하며 마약 갱단의 표적이 되었다. 이후 편집장 암살, 언론사 폭탄 테러를 당했다. 두 곳 모두 온갖 위협에 굴하지 않고 언론 자유의 상징이 된 매체다. “각 나라에서 벌어진 언론인들의 죽음에 국한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연대할 수 있다는 걸 두 언론이 보여주었다.”
저널리즘이 공격받는 시대 전 세계 언론이 함께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브뤼탱 사무총장은 언론의 위기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짚는다.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정부가 언론에 대한 반감을 이용한다. 언론의 자유보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대중에게 언론은 ‘편향적’이라는 서사를 확산시킨다. 트럼프, 네타냐후 등 강력한 지도자들이 대중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말 우려스럽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그냥 두어선 안 된다. 언론이 일상과 정치에서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위협받는다. 사람들이 ‘사실’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공동 행동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국경없는 기자회’는 9월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지구 언론인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전 세계 언론사가 띄운 ‘검은 화면’ 행렬이 동료 언론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세계 최초’ 국제 언론 연대가 각국 정부를 향해 묻고 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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