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한미 관세·투자 합의에 매달릴 필요 없다
‘악마와 벌이는 싸움’
균형을 이끌어야 한다
일본 아닌 EU 방식으로
전문직 쿼터도 요구하고
강요하면 판을 깨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8월 25일 정상회담으로 한미 관계의 첫 고비를 무사히 넘긴 듯싶더니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심상치 않다. 7월 말 발표한 양국 관세·투자에 관한 구두 합의에서 미국이 상호 관세와 자동차 품목별 관세를 25%에서 15%로 조정하는 조건으로 한국은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합의 내용을 문서화하는 협상이 교착 상태다. 국가 간 합의는 어떤 형식으로든 문서화하기 전에는 합의로 간주할 수 없고, 심지어 비공식 양해 사항조차도 문서화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서화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와 벌이는 싸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협상 방식에 대해 “거칠고, 과격하고, 과하고,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이라는 직설적 표현을 쓴 데서 정부의 좌절감이 드러난다. 대통령실은 12일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연한 입장을 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비합리적이고 약탈적 조건을 강요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양국 간 이익의 균형을 확보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현재 협상 타결을 가로막고 있는 핵심 쟁점은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주체, 투자 펀드의 설립과 운영 방식, 이익금 배분 원칙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향후 협상에서 정부가 유념해야 할 사항을 지적하려 한다.
첫째, 투자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 재원 조달 주체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반드시 한국 기업이 재원 조달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일본과 EU가 각각 미국과 합의한 문안의 본질적 차이가 바로 투자 주체에 있다. 9월 4일 발표한 미·일 양해각서(MOU)에는 5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재원을 조달할 주체가 ‘Japan’으로 되어 있고, 투자 펀드 운용과 투자 사업 선정 권한은 미국이 갖는 구조다. 원금을 회수할 때까지는 이익을 50대50으로 배분하고, 원금 회수 이후에는 이익의 90%를 미국이 갖는다. 투자에서 이익이 나면 일본이 일부라도 챙길 수 있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전적으로 일본 정부가 감수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7월 27일 발표한 미·EU 기본 합의 제6항에는 투자 주체가 EU나 회원국 정부가 아닌 ‘유럽 기업(European companies)’으로 명시되어 있다. 투자에 관한 문구도 ‘유럽 기업이 2028년까지 6000억달러를 전략 산업에 투자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실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EU가 책임질 일이 없다.
미국은 분명 일본 모델을 한국에도 강요하겠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EU 모델을 관철해야 한다. 정부는 보유 외환의 80%가 넘는 투자금 3500억달러를 조달할 재정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헌법 제60조에 따라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기도 쉽지 않다. 투자 위험은 모두 한국이 부담하고 이익이 날 경우에는 일부만 배당받는 펀드 운용 방식도 우리로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둘째,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미국 내 한국 투자 기업에서 근무할 한국 인력을 위해 전문직 비자 쿼터를 신설하는 것을 합의 이행 조건으로 관철해야 한다. 미국 의회가 입법으로 취업 비자 쿼터를 신설할 때까지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해결하도록 합의서에 명문화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적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들이 당한 봉변으로 분명히 확인됐다.
끝으로, 미국이 이러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거나 양국 간 이익 균형을 파괴할 협상을 강요하면 그 판을 깨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일본과 EU보다 관세를 10%나 더 물어야 한다면 한국 자동차와 부품의 미국 수출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미국 수출 경쟁력을 지원하는 데 국민의 혈세가 3500억달러나 들어가야 한다면, 그 돈으로 한국 경제를 살릴 더 효과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카드가 없는 것도 아니다. 협상이 결렬되면 미국도 조선 산업 재건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 동맹국 간에도 핵심 국익이 대립하는 사안은 정상 간에 얼굴을 붉히지 않고 타결한 사례가 거의 없다.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정부의 대미 외교 성과를 두고 국내에서 공방을 벌일 것이 아니라 초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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