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강제입원 없어져야”…‘李 대선 공약’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논란
일부 전문가, 강제입원 요건 완화 제언…“골든타임 지켜야”
(시사저널=이강산 기자)

"정부는 지금까지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살면 안 되는 존재로 봐온 거 같아요."
최고 기온 30도의 무더위가 다시 찾아온 15일 오후 2시,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보건·경제고위급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중구 신라호텔 앞 거리에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이하 한장연)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정부에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시행을 요구하고자 더위 속에서도 전날부터 1박2일 노숙 집회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이번 회의는 21개 회원국 경제 장·차관급 인사와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사무처(WHO WPRO) 관계자 등 480여명이 모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직면한 보건·분야 도전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노력과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한장연이 해당 회의 장소 앞에서 집회를 진행한 이유는 해당 회의를 주재한 정은경 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복지부 관계자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다. 신석철 한장연 상임대표는 "오늘 이 신라호텔에서 복지부가 주최하는 국제보건의료 실무자 회의가 있다고 한다. 내일 오전 9시부터 정 장관이 신라호텔에서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는데, 정 장관이 우리를 만나 줄 때까지 절대 철수하지 않고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외쳤다.
이들이 요구하는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는 국가가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재활, 사회복귀 등 전 과정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제도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폐지가 그 핵심 중 하나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대선 후보였던 지난 4월 "발달·정신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만 아니라 20대 대선 당시에도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에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신 상임대표는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가 공약으로 나오며 많은 논의가 오갔다"며 "희망을 품고 투쟁을 벌이며 도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결국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 본인이나 타인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명백하지 않더라도, 의학적 판단에 따라 치료가 시급한 경우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입원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상임대표는 "강제 입원을 폐지하고 입원은 국공립 병원이, 기타 통원 치료는 민간 병원이 담당하게 해야 한다"며 "민간 병원의 경우 수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입원 횟수나 일수를 늘리는 데 골몰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이화영 순천향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책임제와 정신장애, 공공 정신의료 필요성 토론회' 당시 강제 입원 요건을 오히려 강화할 것을 제언했다.
이 교수는 토론회에서 "(정신장애인 강제 입원 관련) 현행법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엄격한 기준"이라며 "현행법이 '자·타해 위험'과 '치료 필요성'을 모두 충족해야 비자의(非自意) 입원이 가능하도록 해 제때의 치료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치료가 중단된 환자에 대한 '의무 진찰 제도' 도입과 함께 '자·타해 위험'과 '치료 필요성' 두 요건 중 하나만 충족돼도 입원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신병원 입원 경험이 있는 박원경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정신장애인들이 강제입원에 따른 불필요한 격리와 강박이 없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박 활동가는 "저는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서 격리되고 강박된 경험이 있다"며 "격리‧강박에 의지하지 않아도 지역사회에서 충분히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다. 정부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제도를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장연 측은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시행을 위한 복지부 실무자와의 면담이 이뤄질 때까지 집회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신 상임대표는 "내달 말쯤 경주에서 APEC 회의가 열린다고 들었다"며 "그때까지 면담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경주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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