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이단, 그리고 정치 [뉴스룸에서]

전정윤 기자 2025. 9. 1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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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 8홀에서 열린 ‘빌드업코리아 2025’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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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윤 | 뉴콘텐츠부국장

한겨레가 연재 중인 ‘한·미 극우연대 해부’ 기획은 크리스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새삼 충격이었다. 이달 초 열린 보수 기독교 행사 ‘빌드업코리아 2025’에 기독교계 대안학교와 교회에서 단체로 참석한 중고등학생이 많았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이 행사는 복음주의 개신교에 기반한 미국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극우 논리를 한국 개신교계 청소년·청년에게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빛과 소금으로 키워 내야 할 아이들을, 교회의 이름으로 ‘부정선거 음모론’과 ‘이민자 혐오’ 선동에 동원하고 있었다. “교회 다닌다고 하면 친구들이 이상한 애로 본다”는 요즘 아이들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교회에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건, 교회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극히 성경적인 사실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장 31~32절) 다만 성경은 병들고 죄 많던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능력으로 거듭난다고 가르치는데,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그릇된 정치 선동으로 세상을 깊숙이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슬펐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교인이 둘 이상 모이면 따라붙는 ‘금기’ 세가지가 있다. 금전 거래나 물건 판매(사기 예방), 교회 밖 성경 공부나 신앙 상담(이단 예방), 그리고 정치 관련 언급(갈등 예방)이다. 세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기면 소모임 리더나 담당 목회자를 통해 바로 권면이 들어오고, 12·3 내란사태 이후엔 세번째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신앙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할까 우려해서다. 또 교회에서 교인은 서로 ‘한 몸, 한 지체’로 여겨진다. 정치 이슈는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교인들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하나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일개 교인에게도 이런 금기가 작동하는데, 하물며 교회 지도자에게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목회자가 교인을 정치에 동원하는 것은 정상 교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목회자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과 결탁하면, 교인의 신앙과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 나아가 교회가 사회 통합이 아닌 분열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목회자가 특정 정치 세력과 이해관계에 휘둘리면, 교회의 도덕적 권위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욱이 현실법에서도 종교 단체와 종교인을 통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담임목사가 대통령 선거와 부산교육감 재선거를 앞두고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가 공직선거법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이 모든 우려를 입증하는 본보기다. 그럼에도 손 목사가 속한 고신교단은 “교회에 대한 정치 탄압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신을 사랑하는 성도들의 모임’이 “예배와 기도회 때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은 강단을 더럽히고 복음을 훼손한 일”이라며 교단을 반박하는 신문 광고를 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뿐 아니라 교인에게도 권위를 상실했다는 명백한 위기 징후다.

최근 장애를 형벌로 여기는 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사는 “장애인들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고생길을 자처했고, 이 나라의 ‘국립 종교 학교’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현지 장애인과 가족들은 난생처음 듣는 존재론적 환대와 섬기는 수고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무뚝뚝했던 교장은 “우리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며 기독교 예배까지 허락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성경대로 사는 이런 목회자들의 하나님, 세상 시끄럽게 정치 선동을 일삼는 빌드업코리아와 손현보·전광훈·전한길의 하나님이 정말 ‘같은 하나님’인지 섣불리 재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교회라는 말에는 극우·혐오보다 사랑·섬김이 어울린다는 것, 말씀을 빙자해 정치와 모금에 혈안인 일부 목회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사기·이단·정치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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