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천 월미도 원주민들, 온몸에 진흙 바르고 귀향 대책 촉구
팻말엔 ‘전쟁 기념 말고 귀향 대책을’
당시 미군 폭격 피해 갯벌로 도망쳐
한인덕 위원장 “지원안 마련을” 요구

"맨발로 뻘(갯벌)을 달리며 도망쳤던 그날 이후 우리는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75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이 열린 15일 오후 인천 중구 내항 8부두 상상플랫폼 주차장 입구.
갯벌 진흙을 온몸에 바른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회원 15명이 '대규모 전쟁 기념 말고 귀향 대책 마련하라'는 팻말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이들이 진흙을 바른 이유는 인천상륙작전 닷새 전인 1950년 9월10일 새벽 월미도에서 일어난 미군 전투기들의 무차별 폭격 속에서 원주민들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갯벌을 달려 도망쳤던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차태수(80)씨는 "그날 원주민들은 총이 보이면 뻘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다시 나와 달렸다"며 "친할머니도 그렇게 겨우 도망쳤고 그 뒤로 우리 가족은 고향 집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전세를 뒤집은 '기적의 작전'으로 평가받았지만 이면에는 작전 수행 과정에서 폭격으로 희생된 월미도 주민들의 비극이 공존한다. 당시 폭격과 기총소사로 희생된 주민은 1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정지은(80)씨는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기억을 전하며 정부와 인천시에 귀향 대책을 촉구했다. 아버지 정용구씨는 진실화해위가 공식 확인한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정씨는 "당시 피난을 갔던 인천 송도에서 월미도가 불바다가 되는 모습을 봤다. 어머니가 시신을 찾으러 갔는데 마을 등 일대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돼 있었다고 했다"며 "치아로 아버지를 겨우 식별해 가옥 밑에 묻었지만 이후 미군이 들어와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천시가 전승 기념행사에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원주민 희생은 외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정부와 시는 고령의 원주민들이 갯벌 진흙을 퍼와 몸에 바르는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귀향 대책은 더는 미루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인덕(80) 귀향대책위원장은 "75년째 귀향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유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귀향과 진상 규명, 지원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사진 정슬기 기자 za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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