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못 잡는 특화거리 반짝하다 잊혀져

조재영 기자 2025. 9. 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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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상상길’ 조성에 20억 원 쏟아 붇고도 효과는 미미, 대표적 실패 사례
자연스레 조성된 김해 동상동 외국인거리 이국적 명소로 주말 사람 몰려 ‘대조’

[기획] 특화거리, 어디로 가야 하나
1. 경남 특화거리 현주소는
2. 한국 속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
3. 짬뽕 먹으러 군산 가자, 짬뽕거리
4. 대구 김광석길과 오토바이거리
5. 안산에서 하는 세계여행, 다문화 특구
6. 도시재생 전문가가 본 특화거리 해법

인구는 줄어들고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지역은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소멸'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지역사회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해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특화거리 조성·도시 재생 사업입니다. 그러나 이들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인색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인천 차이나타운, 군산 짬뽕거리, 대구 김광석 길, 안산 다문화특구 등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특화거리 사례를 통해 경남의 특화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5일 현재 정부 공공데이터포털에는 경남 도내 특화거리 13개가 등록되어 있다.

창원시 상상길·마산아구찜거리, 진주시 남가람문화거리·볼래로문화거리·가로수길, 김해시 내외동 무로거리·주촌 축산물도매시장·진영패션아울렛거리·인제대 오래뜰거리, 함양군 건강100세음식지구·지리산마천흑돼지 음식특화거리, 합천군 삼가면 도지재생특화거리, 남해군 미조항음식특구 등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상상길 특화거리. 대리석 보도블럭에 외국인 2만 3000명 이름을 새겨 넣는 등 사업비 20억 원을 투입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조재영 기자

이들 가운데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조성한 '상상길'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상상길은 2015년 한국관광공사 공모사업으로 조성됐다. 예산 20억 원을 들여 길이 155m 도로에 외국인들의 이름을 새긴 대리석을 깔았다. 대리석에 새긴 외국인 이름은 2만 3000명이었다. 이들 2만 3000명은 전자우편으로 신청을 받았다. 한국 도로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외국인이 이곳을 상상하며 찾아오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른바 '상상길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길이 완공된 후 이곳을 찾아온 외국인은 거의 없다. 설사 외국인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다 해도 자신의 이름을 새긴 대리석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쉽지 않다. 지금은 글자마저 희미해졌고,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이름 새긴 대리석을 보고자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도내 다른 특화거리도 상상길 만큼 실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화거리'로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지자체가 '특화거리'라는 이름을 붙여 지원·홍보한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도 짚불처럼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졌다.

진주시는 기존 특화거리 말고도 2021년 논개시장 인근에 '누들로드'라는 면 특화거리를 조성했다. 진주 중앙상권 활성화 사업 중 하나였다. 2020년부터 장대동 진주고용센터 뒤편을 복고풍 거리로 만들고자 노후 벽면, 어지러운 천막, 석면지붕, 지저분한 보도 등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또 면 요리 경진대회를 열어 8개 면 요리 음식점 창업·입주를 지원해 누들로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4년 여만인 9월 현재 면 요리 음식점은 2개만 남았다.
김해시 동상시장 인근 외국인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색적인 간판들이 눈길을 끈다. /조재영 기자

이들 외에도 특화거리와 성격이 유사한 '청년몰'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대표적인 곳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시장 내 지하 빈 점포를 활용한 '청춘바보몰'이다. 2016년 4월 10여 개 점포가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지만 1년도 안 돼 대부분 점포가 문을 닫고 떠났다. 미로처럼 찾아서 들어가야 하는 위치인데다 여름에는 제대로 냉방이 되지 않는 등 악조건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지역 기업, 단체 등이 이곳을 살리고자 회식을 하고, 홍보를 지원하는 등 많은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도시재생 전문가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는 이들 사업이 애초 기획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전국적으로 다 그랬다. 벽화 그리고 골목길 조성해놓으면 사람들이 올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위치와 놀거리·볼거리 등 콘텐츠가 중요한데 정부와 지자체 주도 사업은 미리 장소를 정해놓고, 거기다 무슨 센터 같은 시설 짓는데 예산 많이 들여서 하는 하드웨어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 청년몰 사업이 실패한 원인도 짚었다.

강 대표는 "전국 수십 개 청년몰이 거의 다 실패했던 이유는 매력적이지 않은 공간, 그냥 비어서 방치된 공간에다 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은 청년들을 집어넣어 버렸기 때문이다"라며 "청년들 입장에서는 당장 공간을 공짜처럼 쓰니까 좋을 수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부러 찾아왔는데 맛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즐길 거리도 없고, 실망만 안고 돌아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된다"고 말했다.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거리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서 먹음직스런 전통빵을 내놓고 팔고 있다. /조재영 기자

이처럼 도내 등록·비등록 특화거리가 대체로 실패했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사례가 많지만 새롭게 주목을 받는 곳도 있다.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거리는 특화거리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김해를 찾는 관광객이 가볼 만 곳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상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2010년 전후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이주민들이 이곳에 상점을 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문화거리가 형성됐다. 정부나 지자체가 억지로 특정 업종이나 구역을 지정한 것이 아니다.

초기에는 주로 베트남 음식점이 많았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동남아 쪽 이주민이 많았다. 현재는 상점도, 유동 인구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 이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평일에는 한산하지만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외국인 이주민들이 이곳에 몰린다. 김해는 물론이고 울산에서도 주말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이곳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고, 모국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자로 장식된 간판, 길거리에 진열된 먹음직스런 빵, 화덕 등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

이곳은 주변 상권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 왔다가 인근에 있는 동상시장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주로 식자재를 구매해간다. 그래서 동상시장 안에는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주로 먹는 음식재료를 갖춰놓고 판매하는 가게가 여러 개다.

동상시장번영회 관계자는 "외국인 거리 음식점이 우리 시장에서 음식재료를 구매해가기도 하고, 음식점에 식사하러 온 외국인과 관광객들이 우리 시장에 들러 장을 봐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들이 큰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곳에서 팔리는 농산물 음식재료의 90% 정도는 지역 농가에서 공급된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거리와 인접한 곳에 있는 동상시장. 외국인거리 손님이 이곳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조재영 기자

이곳은 수로왕릉·대성동 고분과도 멀지 않고, 시내 가운데 있는데다 인근에 동상시장공영주차장이 들어서고 나서는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외국인거리 내 한국인 상점 주인은 "예전에는 좁은 길에 불법주차로 통행이 엉망이었는데 단속 CCTV가 설치되고, 공영주차장이 들어선 뒤에는 환경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조재영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