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협치'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는 이유

양훈도 논설위원 2025. 9. 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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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훈도 논설위원

뉴스에서 '협치'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왠지 속는 기분이다. 협치의 치는 정치인가, 통치인가?

통치라면 협치는 '협력 통치'의 준말? 통치는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누가 누구를 다스린다는 건가. 게다가 협력해서 다스린다고? 설마 그런 의미일 리가. 협치의 치를 정치라고 풀면 협치는 협력하는 정치의 준말이겠다. 더 좁게는 '여야 협력'일 터.

그런데 민주주의 다당제의 근본 취지는, 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진 정당들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협력이 필요한 사안도 없지 않겠으나, 중요한 의제들은 반드시 견해가 갈리고 해법이 차이 나야 정상이다. 정당 선택은 소비재 선택과는 달리, 가치와 정책의 선택이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는 민주주의의 원리 아닌가? 그런데 새삼 협력하는 정치, 협조하는 정치라니?

정치 양극화로 정쟁이 극심하니, 대화와 협상으로 풀자는 염원을 담아 '협치'를 말하는 것임은 이해한다.

하지만 협치라는 개념이 등장한 배경은 지금 한국에서 쓰이는 맥락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UN은 협치를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정책 결정 구조"라 하고, 세계은행은 "국가의 경제·사회적 자원을 관리하는 정치적 권력의 행사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현대사회는 기존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정치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로 변화했으니, 선출된 권력 외에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정책 결정과 정치권력 행사에 참여시켜 함께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협치(governance)'다. 여야 협력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정치 주체 간의 협력이 핵심일진대, 이를 여야 협력, 여야 협조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시민을 기만하는 어법 아닌가? 그건 권력 엘리트 간의 야합을 포장해주는 것이다.

정치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현실을 구성하는 장치다. 협치라는 단어가 개념을 왜곡한 채 반복되면, 우리는 협치가 무엇인지조차 잊게 된다. 시민의 참여 없이도 협치가 가능하다고 믿게 되고, 권력의 타협만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건 언어의 마법이 아니라 언어의 마비다.

이런 지적이 진작부터 되풀이돼왔다는 걸 안다. 그러나 오늘도 정치인들은, 기자들은, 칼럼니스트들은 여야협조라는 의미로 '협치'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입에 올릴 것이다. 그래도 소심·소박한 이런 글이 어느 귀퉁이에는 꼭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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