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시간이 머문 도시, 튀니스...부유도 빈곤도 아닌 그 사이에서
튀니지 고고학의 유산...바르도 국립박물관
곳곳에 남은 고대 로마 카르타고의 흔적
튀니지 부자들이 사는 ‘예술마을’ 시디 부 사이드
튀니지는 북아프리카의 광활한 면적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섬에 불과한 나라다. 하지만 여행의 요소는 차고 넘친다. 일단 풍부한 역사가 있고, 바다와 사막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자연경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를 보기 위해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여행계획을 세웠다. 북부의 중심도시인 수도 튀니스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부터, 특히 ‘나홀로 여행자’로서 경험이 쌓이고 난 뒤부터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신의 존재에 대해 퍼뜩 믿음이 갈 때가 종종 있다. ‘튀니지’라는 생소한 나라의 여행이 선사하는 혼란스러움, 즉 설렘과 불안에 동시에 사로잡힌 채(솔직히 설렘보다 불안이 훨씬 더 컸다) 튀니스 행 비행기에 올라타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자 또 한번 신의 존재가 명확히 눈앞에 나타났다.
비행기 탑승 전 게이트 대기실 한편에서 의자에 걸려 넘어진 한 외국인 여성을 일으켜준 것이 안면을 튼 계기였다. 그리곤 기내에서 옆 좌석 승객으로 다시 만나, 자연스러운 통성명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아(Lilia).

이륙 후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피곤함도 잠도 달아나버렸다. 1979년 첫째 아이를 임신한 채 한국을 여행했다는 릴리아의 이야기, 당시 여행하며 만났던 모든 한국인이 보여준 친절함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3시간 남짓한 비행시간 동안 우리는 국적과 나이를 잊은 채 편안한 친구처럼 서로의 인생과 여행담을 나눴다.

진보적이지만 현대적이지는 않은 튀니스
릴리아의 딸이 거주하는 동네인 라 마르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외곽 신도시쯤 되겠다. 바다와 해변을 끼고 있어 부유한 동네로 인식되는 곳이다. 이제 막 단장한 것 같은 깔끔한 주택가와 점차 멀어질수록 신도시와 정반대되는 풍경이 택시 차창을 수놓는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나 없어 보이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얼마 안 가 새벽녘에 지나쳤던 공항도로에 접어들었고, 어둠 속에 인지하지 못했던 드넓은 호수가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전혀 감흥을 끌어내진 못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짧디 짧은 하비브 부르기바 스트리트를 벗어나면 도시의 ‘모던’이라고 할 만한 요소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심의 전체 분위기는 99% ‘올드’에 가깝다. ‘진보적 이슬람 국가’라는 말이 빠르게 잊힐 만큼. 때문에 빅토리 광장 서쪽에 자리한 구시가지라고 명명된 올드타운은 그야말로 ‘올드’의 의미를 단박에 무너뜨린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았던 빈곤이나 기아 등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이미지, 튀니스는 그것과는 양상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 성장과 발전 없이 오히려 후퇴되어 살아가는 일상은 빈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구시가지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곳, 신께 기도하며 자신의 죄를 씻어낼 수 있는 곳, 마음의 안식처이자 요새와 같은 곳…

요상한 택시를 타고 국립박물관으로
튀니스의 대중교통은 낡아빠진 트램과 버스가 전부다. 정시운행이 잘 이뤄지지 않는 데다 배차 간격 또한 길어 편리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관광명소가 도심에 몰려 있기 때문에 걸어서 충분히 이동이 가능하며, 도심을 벗어난 지역을 방문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한데 이 도시의 택시 요금체계는 참으로 요상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곧이곧대로 정직하게 장사하는 택시운전사는 이 도시에 단 한 명도 없는 듯하다. 앱을 통해 불공정한 왕복요금도 내보고, 미터기를 조작해 두 배가 넘는 요금을 제시한 사기꾼 택시기사도 만나보고 난 뒤 깨달은 것은, 그냥 전부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거다. 눈앞에서 사기를 당하는 기분 나쁜 경험보다 말도 안 되는 계산법이긴 해도 앱을 이용하는 편이 그나마 깔끔하다고 느꼈을 정도다.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바로도 지역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은 18세기에 지어진 오스만제국에 의해 요새화되고 확장된 궁전 단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집트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박물관이다. 튀니지 고고학적 문화유산의 보고라 알려진 이곳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튀니지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20세기 초 튀니지 전역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진행된 발굴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방대한 로마 모자이크 컬렉션이 이곳 바르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모자이크 컬렉션은 로마시대 아프리카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전 세계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 청동 조각과 대리석 조각, 가구 등의 헬레니즘 그리스 미술의 걸작 또한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한때 지중해 서부를 지배한 고대도시, 카르타고(Carthage). 카르타고의 역사가 곧 튀니스의 역사다. 튀니스에서 가장 호화로운 교외 지역 중 한 곳의 고급 주택가들 사이에는 반쯤 발굴된 채 남아 있는 몰락한 카르타고의 흔적이 자리한다. 고대 레바논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에서 활동했던 민족집단인 페니키아는 기원전 814년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를 건설했다. 이 해양도시가 지금의 튀니스다.
북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한 카르타고는 교통이 편리하여 당시 고대 지중해의 가장 중요한 무역 중심지 중 하나였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손꼽혔으며, 고대 카르타고 문명의 중심지이자 이후 로마 카르타고 문명의 수도로 명성을 떨쳤다. 카르타고의 이름은 ‘새로운 도시’를 뜻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제 무역 제국을 실현하고자 한 페니키아의 야망은 결국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이름 그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를 이룩해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고고학 공원에는 안토니우스 목욕장과 로마 극장이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 꼽힌다. 145년에서 162년 사이에 도시를 휩쓴 큰 화재 이후 바닷가에 지어진 대형 로마식 온천 단지는 4세기 지진 이후 복원되어 현재 건물 일부가 이곳에 남아 있다.

카르타고에 이어 또 하나의 호화로운 교외 지역으로 일컫는 곳이 바로 시디 부 사이드(Sidi-Bou-Said)다. 이곳은 카르타고 도시철도 역에서 북쪽으로 불과 3~4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카르타고 고고학 공원을 둘러본 뒤 도시철도를 타고 시디 부 사이드로 이동했다. 이곳은 마을 전체가 관광 명소다.
해안 절벽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그리스의 여느 섬을 연상시키는 듯 건물마다 파란색과 흰색이 칠해져 있어 청량한 기분을 안긴다.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진, 동화 속 세상과 같은 풍경인데, 그도 그럴 게 마을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저택은 ‘별장’의 개념에 더 가깝다.

다만, 더럽고 무질서한 튀니스 도심의 풍경과 비교하면 시디 부 사이드는 돈과 권력으로 점철된 ‘그들이 사는 세상’을 한없이 보여준다. 그로 인해 느껴야 했던 씁쓸하고 불편함 또한 여행의 일부로 남았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95호(25.09.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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