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조리서 ‘수운잡방’·여성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 유네스코 도전
안동, 세계유산·기록유산 이어 생활문화까지 등재 도전…지역 자부심 고조

한국 최초의 조리서로 꼽히는 '수운잡방'과 여성의 손으로 쓰인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이 나란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아·태기록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한국국학진흥원과 안동시는 최근 두 고서가 국내 후보로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최종 등재 여부는 내년 6월 열리는 '유네스코 아·태지역 기록유산 총회(MOWCAP)'에서 가려진다.
'수운잡방'은 16세기 양반가 남성 탁청정 김유(1491∼1555)와 그의 손자 계암 김령(1577∼1641)이 집필한 한문 조리서다. 122개 조리법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술 제조법으로, 2021년 보물 제2134호로 지정되며 학술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반면 '음식디미방'은 김령과 인척 관계를 맺은 장계향(1598∼1680)이 저술한 순한글 조리서다. 총 146개 조리법을 수록했으며, 술 제조뿐 아니라 면병류·어육류·식초 제조 등까지 포괄한다. 연구자들은 "양반가 남성의 한문 기록과 여성의 한글 기록이 짝을 이루며 전승된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평가한다.
두 조리서는 저자, 문자, 성별이 다르지만 일부 동일한 조리법을 공유한다. 특히 '밀 기반 증류주' 제조법은 두 권 모두 일치하는데, 이는 단순한 생활지식이 아닌 '가문 간 혼인과 교류를 통한 계보적 전승'을 보여주는 단서로 꼽힌다.
실제로 김령의 사촌 조카가 장계향의 남편 집안과 혼인하면서, 두 가문은 긴밀히 연결됐다. 이를 통해 '수운잡방'의 조리법이 '음식디미방'으로 흡수·발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몽골 제국을 통해 유입된 증류 기술을 한국적 환경에 맞게 기록·재창조해 130여 년간 이어온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희귀하다"고 말한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은 남성과 여성, 양반가와 지역공동체가 협업해 생활기술을 문헌화한 기록물"이라며 "이번 등재가 지역 기반 민간기록유산의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안동시 권기창 시장은 "안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산서원, 하회마을에 이어 기록유산까지 세계적 반열에 오를 잠재력을 지닌 도시"라며 "이번 도전은 안동이 가진 정신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두 고서의 등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과제를 지적한다. 한 문화유산 연구자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단순히 오래된 기록물 여부가 아니라 '지속적 활용과 보존 시스템'을 어떻게 갖췄는지가 핵심"이라며 "지역사회와 학계의 공동 관리·활용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동의보감' 등 국가 차원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은 지역민의 생활문화가 뿌리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안동은 이미 세계유산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세계기록유산 유교책판 등으로 유네스코에 세 차례 이름을 올린 도시다. 만약 이번 도전이 성공한다면, 안동은 '세계유산 도시'라는 위상을 한층 강화하게 된다.
지역 시민 김모(58·안동 예안면) 씨는 "선조들의 손맛과 생활 지혜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후손들이 이를 잘 보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은 단순한 조리서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 한문과 한글, 가문과 지역이 교차하며 '지식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사회문화적 기록물이다. 이번 등재 도전은 세계무대에서 '생활 속 지식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