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에 호텔까지…‘새 먹거리’ 시니어 레지던스 꼽은 이유는?
서울시, 2040년까지 1만 가구 공급…법·제도적 미비는 여전히 과제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심권 시니어 레지던스(실버타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소비 여력을 갖춘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도심 인프라를 누리면서도 요양시설 수준의 돌봄 혜택을 원하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시니어 레지던스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서울 광진구의 '더클래식500'은 보증금이 10억원, 월 생활비가 500만원에 달함에도 입소 대기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신사업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건설사와 호텔 업계가 시장 선점을 위해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포스코이앤씨·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시니어 레지던스 산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롯데건설은 오는 10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시니어 레지던스 'VL르웨스트' 입주를 시작한다. 보증금은 6억~18억원, 월 임대료는 115만~354만원으로 고가임에도 분양 물량이 완판됐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현재 분양 물량 100%가 계약을 완료한 상태"라며 "역세권 입지, 이대서울병원과의 인접성, 롯데호텔과 맞먹는 호텔급 시설을 누릴 수 있어 수요가 몰렸다"고 말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조민호 무신사 대표가 개인사업을 통해 추진하는 초고가 시니어 레지던스 '소요한남' 의 시공사로 선정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들어설 소요한남은 보증금이 약 50억원, 월 관리비(생활비) 600만원 이상으로 초고자산가를 겨냥한 레지던스다. 한남더힐, 나인원한남과 나란히 들어서는 이곳은 용산구의 고급 주거 벨트를 형성할 전망이다. 이외에도 현대건설이 서울 은평구에 있는 '은평 시니어 레지던스' 시공을 맡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운대역세권에 조성 중인 '서울원 아이파크' 내 시니어 레지던스를 짓고 있다.
호텔업계도 운영 전문성을 앞세워 시니어 레지던스 위탁 운영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GS그룹 계열사인 파르나스호텔은 지난달 정관에 '노인 주거·복지시설 위탁운영 사업'을 추가하고, 시니어 레지던스를 운영하는 전담 조직을 설립했다. 2028년 하반기 개관 예정인 소요한남 레지던스 운영사로도 참여해 시니어 사업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신라호텔 역시 지난 3월 정관 '노인 주거·여가복지 설치 및 운영사업'을 추가하며 본격적으로 시니어 사업에 진출할 의향을 밝혔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 건물을 활용한 사업이 제한적인 만큼 신규 수익원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라며 "식음료(F&B), 컨시어지 등 호텔 운영 노하우를 활용하는 데 최적화된 사업"이라고 전했다.
초고령 사회 한국, 시니어 레지던스 보급률은 2%대
업계가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높은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삼일PwC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 레지던스 보급률은 전체 고령 인구 대비 2.7%에 불과하다. 자산이 많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 은퇴기에 접어든 만큼 도심 생활권에서 의료·편의시설 등을 누릴 수 있는 레지던스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시니어 주택 공급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기피 시설로 불리는 노인 돌봄 시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공공에 집중된 노인 주택 보급을 민간까지도 확대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초고령 사회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오는 2040년까지 시니어 주택 1만여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입주자가 직접 레지던스를 소유하는 분양형 시니어 레지던스(노인복지주택)의 법적 보호 장치가 미비한 점은 과제로 꼽힌다. 분양형 레지던스는 분양받은 사람이 일반 주택처럼 소유권을 갖지만, 운영 권한은 모두 운영사에 있다. 이 때문에 운영사가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하면 시설이 돌연 폐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분양형 시니어 레지던스 제도를 폐지했지만, 2015년 이전 인허가를 받은 시설은 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008년 준공된 경기도 용인시의 시니어 레지던스 '명지엘펜하임'은 시행사인 명지학원이 파산하면서 시설·서비스 운영이 중단된 채 수년 째 방치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 주도로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이 추진됐으나 시설 폐쇄 등에 대한 법적 안전망은 여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반 주택처럼 무분별한 분양을 시도한 후, 초기 자금을 회수하면 나 몰라라 사업을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며 "시장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고령자 대상 사업이 변질되지 않도록 법·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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