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1인당 75평 사무실 줘야’…1조4천억 대법원 신축안의 ‘노림수’

김남일 기자 2025. 9. 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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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싸라기 서울 서초동 땅값 1조원 책정
법원행정처 이전 등 플랜B 검토도 안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연합뉴스

법원행정처가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증원하는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안에 대해 대뜸 1조4695억원짜리 ‘청구서’를 내놓았다. 땅값이 가장 비싼 서울 서초구에 대법원 건물을 통째로 새로 짓는 비용이다. 그러면서 대법관 1명에게 평균 247.5㎡(74.9평)에 달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관 집무실 축소, 법원행정처 이전 등 기존 대법원 청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천문학적 비용부터 내밀어 대법관 증원 논의 자체를 좌초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인 전용기 의원은 15일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대법관 증원 시 대법원 청사 신축 필요성 및 소요 비용’ 자료를 공개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증원=대법원 청사 신축’ 단일안을 제시하며 대지 면적 4만9586㎡, 연면적 11만6456㎡로 청사를 신축해야 한다고 했다. 세부적으로 △대법관 30명 집무실 등 7425㎡ △재판연구관·일반직 등 824명 사무실 등 10만9031㎡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정부청사관리규정 및 법원청사설계지침 기준면적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집무실 면적, 고등법원장 132㎡, 판사 36㎡,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계산법에 따르면 대법원 신축 청사에는 대법관 1명에 평균 247.5㎡의 공간이 배정된다. 대법원은 기존 청사에서 대법관에게 배정된 1인당 면적을 공개한 적이 없다.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서열과 위계가 철저한 법원 조직 문화는 집무실 면적 등에서도 이를 관철한다. 현재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신축을 추진하는 서울법원 제2청사 설계지침 기준면적을 보면, 고등법원장에는 △집무실 132㎡ △접견실 33㎡ △부속실 40㎡가 제공된다. 집무실과 연결된 행사실 40㎡까지 더하면 총 245㎡(74.1평)가 된다.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신축 청사에 필요하다고 제시한 대법관 1인당 평균 면적(247.5㎡)이 어떤 계산법에 기초했는지 알 수 있는 셈이다. 서울법원 제2청사 설계지침에 따르면 일반 판사실 면적은 1인당 36㎡다. 부속실(36㎡)은 판사 2명이 함께 쓴다. 재판연구원한테는 2인1실(36㎡), 3인1실(49.5㎡)이 배정된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은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한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신축 청사 부지를 땅값이 가장 비싼 서울 서초동을 기준으로 잡아 공사비를 계산했다. △부지 매입비 1조819억여원(서울 서초구청 부지 기준) △공사·감리비 등 3738억여원 △설계비 137억원 등 1조4695억여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설계·공사 기간은 8년이며 추가로 1∼2년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는 1995년 준공했다. 지하 2층, 지상 16층으로 대지면적 5만7692㎡에 건축면적 9764㎡, 연면적은 6만6493㎡이다. 대법관 14명(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포함),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직원 등이 함께 쓴다. 대법원장은 청사 11층, 대법관 12명은 7∼10층, 법원행정처장은 5층을 쓴다. 대법관 12명이 1개 층을 3명씩 나눠쓰는 구조다. 대법관마다 집무실, 비서실, 전속재판연구관실 등이 딸려 있다. 집무실에는 대법관 4명이 소부 심리를 하는 테이블 등이 있다. 고위 법조인 출신 인사는 15일 “기관장을 겸한 일선 법원장의 경우 접견 기능도 필요해서 공간이 넓을 수 있는데, 오로지 재판만 하는 대법관에게는 과도한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관마다 샤워실과 침실도 있다. 기존 집무실을 축소해 공간을 나눠쓰는 등 기존 청사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전에 1조원이 넘는 청사 신축안부터 던지고 보는 것은 대법관 증원 논의 자체를 봉쇄하려는 뜻”이라고 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 대법관 18명으로 설계…법원행정처 명동 이전 계획도

서초동 대법원 청사는 처음부터 대법관 증원을 염두에 두고 대법관 방 18개 구조로 설계·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직이 확대됐다고 하더라도 최소 대법관 4명 증원(대법관 18명)에는 큰 무리가 없는 셈이다. 기존 대법관 집무실 공간을 재판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축소하면 추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사법시험 폐지 이후 활용도가 떨어진 경기 일산 사법연수원 건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 대법원 청사 내 조직을 옮기는 방안도 검토가 가능하다. 앞서 대법원에 있던 법원도서관은 사법연수원으로 이전한 바 있다. 특히 대법원 청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법원행정처 조직을 이전하고 공간 재배치를 하면 대법관 증원을 위한 집무 공간 확보와 동시에 사법개혁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전례가 있다. 대법원은 양승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사법개혁 요구가 빗발치던 2018년, ‘사법농단’ 진원지로 비판받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원사무처를 새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법행정 기능과 조직을 대법원장과 떼어놓기 위해 법원사무처를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포스트타워 건물로 옮기는 계획을 세웠다. 대법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소유한 건물에 입주하면 보증금이 면제되고 임차료가 세입으로 귀속되는 등 예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대법원이 계산한 임차·이전 비용은 79억6100만원이었다.

사법행정 인적·물적 분리를 내세운 대법원 자체 사법개혁안은 법원 내부 반발과 ‘명동’이라는 장소가 논란이 되며 흐지부지됐다. 법원행정처 폐지·이전을 5개월 내 마치겠다며 건물 임차 등을 통해 ‘기간 단축·예산 최소화’를 검토했던 대법원이, 7년 뒤인 2025년에는 정반대로 ‘기간 최소 8년·예산 최소 1조4천억원’ 계산법으로 사법개혁 논의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셈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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