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광화문서 사라진 ‘해태’… 거적 쓴채 日총독부에 끌려가 있더라[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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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9월 15일 동아일보에 사진 하나가 눈에 띈다.
"경복궁이 생기던 4년 뒤에 산뜻한 화강석에 이름 높은 조각사의 정세(精細)한 솜씨에 힘입어 위엄이 늠름하고 맹렬은 하면서도 공손이 넘치는 조화 있는 용자(勇姿)로서 궁문을 버티고 지키던 그가 봄바람 가을비의 500년 옛 자리를 떠난 때는 3년 전인 1922년 9월 초이튿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아일보에도 한 많은 그의 떠나던 광경을 소개하였거니와 그 뒤로 그의 모양은 사지를 동이고 허리를 묶인 채로 경복궁 넓은 울 안에 이리 끌리고 저리 밀려 그 천대 받는 모양이란 참으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침통한 가슴으로 허둥지둥 찾아간 기자는 마침내 새로 지은 총독부 서편 앞 궁장(宮墻·궁전을 둘러싼 성벽) 밑에서 무슨 하늘도 못 볼 큰 죄나 지은 것처럼 거적자리를 둘러쓰고 고개를 돌이켜 우는 듯, 악쓰는 듯, 반기는 듯, 원망하는 듯한 '해태'를 발견하고 가슴이 뜨끔뜨끔하였습니다. 옛 주인 경복궁이 뒤로 밀려 나가고 낯선 사람들이 지어 놓은 총독부 새 집 앞에서 모든 학대, 갖은 구박을 다 받는 해태의 신상을 염려하는 조선 사람이 많은 것을 해태가 안다 하면, 피나는 설움이라도 참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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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9월 15일 동아일보에 사진 하나가 눈에 띈다.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앞을 떡 버티고 있었던 ‘해태’의 사진이다. 태조 대왕이 등극한 후 4년째 되던 해에 광화문에 처음 만들어 세운 후 500년 동안 경복궁을 지키던 해태는 1922년 조선총독부를 새로 짓는 일본인들이 그곳에 있으면 걸리적거린다고 치웠다고 한다. 이후 3년 동안이나 소식이 묘연했던 해태의 최근 신세를 궁금해하던 독자의 요청에 의해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들여다보자.
“경복궁이 생기던 4년 뒤에 산뜻한 화강석에 이름 높은 조각사의 정세(精細)한 솜씨에 힘입어 위엄이 늠름하고 맹렬은 하면서도 공손이 넘치는 조화 있는 용자(勇姿)로서 궁문을 버티고 지키던 그가 봄바람 가을비의 500년 옛 자리를 떠난 때는 3년 전인 1922년 9월 초이튿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아일보에도 한 많은 그의 떠나던 광경을 소개하였거니와 그 뒤로 그의 모양은 사지를 동이고 허리를 묶인 채로 경복궁 넓은 울 안에 이리 끌리고 저리 밀려 그 천대 받는 모양이란 참으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침통한 가슴으로 허둥지둥 찾아간 기자는 마침내 새로 지은 총독부 서편 앞 궁장(宮墻·궁전을 둘러싼 성벽) 밑에서 무슨 하늘도 못 볼 큰 죄나 지은 것처럼 거적자리를 둘러쓰고 고개를 돌이켜 우는 듯, 악쓰는 듯, 반기는 듯, 원망하는 듯한 ‘해태’를 발견하고 가슴이 뜨끔뜨끔하였습니다. 옛 주인 경복궁이 뒤로 밀려 나가고 낯선 사람들이 지어 놓은 총독부 새 집 앞에서 모든 학대, 갖은 구박을 다 받는 해태의 신상을 염려하는 조선 사람이 많은 것을 해태가 안다 하면, 피나는 설움이라도 참을 듯합니다.”
기자는 그렇게 내버려진 해태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고많은 동물 중에 하필 해태 한 쌍으로써 궁문을 지키게 하였느냐고요? 해태라는 동물은 사람의 시비곡직(是非曲直·옳고 그름 또는 잘함과 잘못함)을 잘 판단하는 영물인 까닭에 이것을 궁문 앞에 세워두어 출입하는 만조백관(滿朝百官·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으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하며 경계하도록 한 뜻이라고도 합니다. 또 과천 관악산이 화산(火山)인 까닭에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 불이 났다 하여 바다에 사는 해태로써 그 산을 노려보게 하면 경복궁에 불이 일어날 염려가 없다 하여 그를 세운 것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선악을 잘 안다는 해태! 주인을 위하여 불을 지키는 그 귀한 해태! 그렇게 중한 해태는 필경 사지를 묶여 남의 집 앞에 거적때기를 둘러쓰고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마는, 앞으로는 경복궁 안에 공원을 만들면 그곳에 가져다 가두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어떤 곳에라도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가져다 두리라 합니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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