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교회 급습’ 발언은 해프닝? 안심하기엔 이르다

8월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의 ‘아주 잔인한 교회 급습(수색)(very vicious raids on churches)’을 지적한 일은 이제 마무리된 소동처럼 비친다. 미국 대통령의 말 몇 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국내 개신교 극우 세력을 일각에서는 놀림감으로 삼았다. 정말 끝일까. 트럼프와 미국 개신교 세력의 관계를 살피면 찜찜함이 남는다.
교회 발언 사건을 설명하는 주된 해석은 크게 둘이다. 첫째, 트럼프는 트집을 잡았다. 무역협상에서 한국의 저자세를 유도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둘째, (본인 말처럼) 트럼프는 “오해”를 했다. 종교 자유의 위축을 우려했으나 한국 설명을 듣고 의혹은 풀렸다. 전자든 후자든 이 문제를 한국 내 개신교 인사가 추동한 일회성 사건, 찻잔 속 태풍으로 본다. 우리 정부에서 사실관계를 전달하면 더 이상 파장은 없다.
초점을 ‘누가 미국에 왜곡된 정보를 전했나’에 맞출 수도 있다. 특검이 압수수색한 통일교,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점이 있다. ‘트럼프는 왜 이 정보를 수용했나’이다. 트럼프는 상상 이상으로 미국 보수 교계와 끈끈한 관계다. 그가 드러내온 종교관은 한국 내 개신교 극우와 가깝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와 개신교 신앙은 어울리지 않는 쌍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종교처럼 개신교에서도 도덕은 절대적 가치다. 트럼프가 도덕적이라고 믿는 이는 지지층에서도 소수다. 성 추문과 인종차별 논란, 부패 혐의가 끊임없이 따른다. 집단 비하를 일삼으며 사회적 약자에게도 가혹한 말을 내뱉는다. 더 직접적 걸림돌은 신앙심이다. 목사 출신 작가 스티븐 맨스필드는 책 〈도널드 트럼프라는 선택〉(2017)에 이렇게 썼다. “적어도 50대까지 트럼프는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내보인 바 없다. 사실 그의 종교는 권력, 복수, 자기 자신뿐이었다.”
도리어 신심을 증명하려다 헛발질을 한 적도 있다. 2016년 한 방송에서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묻자 트럼프는 “매우 많다. 어떤 사람은 ‘눈에는 눈’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돈을 뜯어내는 사람에게 대항하기 위해 확고하고 강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성경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개신교 핵심 교리를 곡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구약의 ‘눈에는 눈’ 구절을 두고 말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그런데 경건함이나 초탈함, 신심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보수 개신교인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세 차례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 그룹이 이들이었다. 6월26일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6년과 2024년 조사에서 개신교인 유권자 56%, 62%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상대 후보와 17%포인트, 26%포인트 차이다. 대중적으로 ‘보수적 개신교인’과 동의어로 통하는(신학적 분류는 더 복잡하다)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인’으로 범위를 좁히면 격차는 더 극적으로 벌어진다. 2016년과 2024년,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인은 각각 77%, 81%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패배한 2020년 대선에서도 이 그룹의 트럼프 지지는 83%에 달했다.
신실하지 않은 후보에게 몰표 준 까닭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은 어째서 ‘신실하지 못한 후보’에게 투표하게 됐을까. 으레 ‘전광훈 부류’를 떠올릴 만하다. ‘보수’를 자칭하지만 본래 신학적 원칙보다는 정치적 이득을 우선하는 이들이라 후보 인격과 무관하게 공화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내막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은 어떤 시점에 생각을 바꾸었다. 한때 그들은 인격이야말로 공직 수행의 필수조건이라고 여겼다. 2011년 설문조사에서 미국 공공종교연구소는 ‘사생활에서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정치인은 공직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백인 복음주의자 30%만 ‘그렇다’고 했다. 모든 조사 대상 그룹 중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하지만 불과 5년 뒤인 2016년, 대선 한 달 전 수행한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에서는 무려 72%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모든 그룹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보수 개신교인들의 생각을 바꿨거나, 보수 개신교인들의 생각이 바뀌었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간택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1세기 들어 미국 개신교회가 처한 상황은 대체로 한국과 비슷하다. 신자 수에서나 이념적으로나 ‘주류’였던 때가 저물고 사회적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었다. 낙태·동성애 등 이슈를 두고 교계가 벌인 ‘문화전쟁’으로 교회를 외면하는 이들이 늘었다. 종교 지도자들의 비리와 추문 역시 한몫했다. 〈디 애틀랜틱〉 기자인 팀 앨버타는 지난해 펴낸 책 〈나라, 권력, 영광〉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포가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생각을 바꿔놓고 있었다”라고 썼다. 결정적 기점이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재임이었다. 교회는 종교 신념이 위태롭고, 포위됐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절박한 시기에는 절박한 조치가 필요했다.” 그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 도널드 트럼프였다.
표가 필요했던 트럼프는 종교 지도자들과 적극적 공조를 꾀했다. ‘눈에는 눈’ 발언처럼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에도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교리와 엇박자를 냈지만, 유명 목사들과 교류를 통해 신앙심을 ‘추인’받았다. 미국 개신교를 연구해온 정치·종교사회학자 정태식 교수(경북대 사회학과)는 이 과정을 ‘신앙 세탁’이라고 불렀다. 2015년 9월 트럼프는 보수적 목사들과 만나 그들에게 안수기도 받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듬해에는 뉴욕에서 거물급 종교 지도자 1000여 명과 비공개 모임을 했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종교인들과 어울리자 트럼프를 인정하는 보수 개신교인들이 늘었다.
의혹투성이 대선후보는 영향력이 필요했던 교계 인사들과 거래를 했다. 두 번째 임기를 맞은 지금도 유효한 협약이다. 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는 ‘종교의 자유’를 강조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정교분리를 어기고, 소수집단을 차별할 수 있는 권리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이민·반무슬림 정책을 내놓고 ‘반기독교·반유대적 편견에 대응하는’ 종교자유위원회를 설치했다. 그 대가로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은 트럼프의 삶을 변호할 논리를 대중에게 내밀었다. “‘의사가 병만 잘 고치면 되지, 도덕적일 필요가 있는가? 미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 트럼프가 나라를 구하고 부강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논리다(정태식 교수).”
이 과정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이가 폴라 화이트 목사다. 국내에는 ‘종교인 출신 트럼프의 측근’ ‘국내 목회자들과 가까운 미국 개신교 유력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다소 부족한 수식어다. 그는 트럼프 정부가 지난 2월 신설한 백악관 신앙실(Faith Office)의 수석 고문이다. TV 스타인 화이트는 수십 년간 트럼프 가족의 영적 조언자 노릇을 했다. 양측 모두 부인하지만, 화이트가 트럼프를 ‘개종’시켰거나 최소한 그의 종교관을 크게 바꾸었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 입문 후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어 보이는 트럼프와 보수 교회를 동맹 관계로 격상시킨 핵심 인사가 바로 그다.
독실한 개신교인 유권자들이 도덕성을 의심받던 대선후보에게 빗장을 푼 데에는 폴라 화이트가 배포한 공통의 신앙관이 주효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화이트도 불륜 스캔들이 있었고 여러 법적·재정적 부정행위로 평판이 땅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된 트럼프처럼 폴라 화이트 역시 그럼에도 추앙받는 위치에 올라섰다. 비결은 그가 설파한 ‘번영의 복음(번영 신학)’이다.
번영 신학의 내용은 단순하다. ‘사람이 더 큰 믿음을 보일수록 하나님은 물질적 편안함을 더 많이 제공하신다.’ 말하자면, 성공한 자가 곧 경건한 자다. 신앙이 세속적 성공으로 증명된다는 주장은 대중이 받아들이기 편하다. 매주 교회에 나가거나 교리를 따르지 않아도 돈을 벌면 ‘축복’은 입증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부유한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는 인격과 신앙심을 애써 변호하지 않아도 이미 신실한 자다. 교인이 트럼프를 죄책감 없이 지지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정치적 이득 위해 ‘종교 박해’ 몰아갈 수도
이 믿음은 트럼프와 미국 개신교 유권자뿐 아니라 미국 개신교와 한국 개신교를 잇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폴라 화이트는 국내 기도회, 개신교 행사에서도 몇 차례 연설했다. 한국 대형 교회에서도 이 정서는 주류다. 유명인들의 간증은 내면의 고찰이나 신심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담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예수를 믿었더니 돈을 많이 벌었다’는 레퍼토리다.
트럼프와 공조하는 개신교 주류의 논리에 따르면, 사회적 영향력을 잃는 것은 당장의 재정적 손실만 뜻하지 않는다. 종교로서 파산선고다. 오랜 시간 보수 목회자들을 취재한 팀 앨버타는, 일견 핵심 전선처럼 보이는 동성애 문제 등 ‘문화전쟁’ 승리마저도 보수 개신교의 궁극적 목적이 아닐 수 있다고 적었다. 최종 목표는 “국가 자체를 지배”하는 것, 신정 국가화다. 국가는 교회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국가에 개입하는 것이 옳다. “많은 우파 목사들은 교회가 법률 기관, 법 집행기관, 언론매체 등 외부 세속기관의 감독이나 통제를 받는 개념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 교회는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다(팀 앨버타 저 〈나라, 권력, 영광〉).”
이 시각에서 보면, 정부가 교회를 수색하는 것은 이유 불문 ‘종교 박해’다. 트럼프는 개신교 극우와 이 극단적 신념을 공유해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제스처든 실제 믿음이든 한국에 이 문제를 제기하는 건 트럼프에게 이롭다. 한국에게 이런 상황은 향후 내란 수사에 부담이 될뿐더러, 내란 옹호 세력으로 떠오른 개신교 극우에 대응하는 데에도 골머리를 앓을 만한 변수다.
트럼프 정부에서 정상회담 직전 발언과 같은 종교 관련 문제를 제기할 이유는 충분하다. 교계 출신 측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왔다. 한편으로 이들은 미국 대중이 받아들이기 쉽고 트럼프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벼려 꾸준히 보급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개신교 목회자와 평신도 상당수는 정부의 종교 개입 자체에 큰 거부 반응을 보인다. 트럼프가 계산적이고 속된 인물이라는 이유로 국내 개신교 극우 세력이 그에게 거는 기대를 조롱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들이 함께 ‘믿는’ 종교 역시 그들만큼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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