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잃고 7년 버틴 엄마...내가 내 아이를 죽이려 했다

김동욱 2025. 9.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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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살해 후 자살 : 비극을 기록하다]
<1> 참회의 눈물
남편 잃고 7년 버틴 두 아이 엄마
마음의 병·생활고에 잘못된 선택
벼랑 끝에서 아들 신고로 비극 멈춰
기적과 도움으로 다시 찾은 가족
여전히 떠올리면 두렵고 아픈 날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 지켜주세요"
편집자주
부모에게 자녀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그래서 동반자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이다. 매달 3건가량 꾸준히 벌어지는 이 비극은 특정 가족의 불행이 결코 아니다. 경제·사회적 고립과 절망, 구조하지 못한 사회의 실패다. 5회에 걸쳐 외면해서는 안 될 이 비극의 현실을 추적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인공지능이 그린 권정희씨 가족. 김동욱 기자·미드저니

삶은 때로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땐 분명 달리 생각했을 것이다. 영영 멈출 줄 알았던 가족의 이야기는 다행히 끊어지지 않았다.

"영진, 영호야…고맙고, 사랑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감사해."

여름 햇살이 아침이면 집 안 깊숙이 스며든다. 가까스로 되찾은 일상은 매 순간이 선물처럼 소중하다.

권정희(36)씨는 요즘 몇 번이고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뇐다. 2년 전 그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웃음이 많았다

정희씨는 20대, 또래보다 조금 일찍 결혼했다. 아들 영진과 영호가 태어났다. 3살 터울, 두 아들은 정희씨 부부에게 축복이자 삶이었다.

남편의 사업은 순조로웠다. 풍족하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남부러울 것도 없었다. 밝고 웃음이 많았던 부부, 부모에게 사랑받는 두 아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정희씨에게 '화양연화'였다.

그런 정희씨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역시나 돈이었다. 남편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한번 무너진 형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희씨도 일을 시작했지만, 큰 도움이 안 됐다. "우리 가족은 단단하다." 믿음으로 버텼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남편이 흔들렸다. 말수가 줄었고, 방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지쳐 있었다. 무너져 가는 남편에게 부담을 줄 순 없었다. '남편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버텨보자'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남편은 끝내 무너졌고, 사그라들었다. 느닷없이 가장이 된 정희씨는 이제 뭐든 해야 했다.


웃음을 잃었다

중증 환자가 된 정희씨에겐 치료와 도움이 필요했지만 주변 누구도 그의 절박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삽화=신동준 기자

겹겹이 쌓이는 생활고, 이웃들의 보이지 않는 수군거림은 정희씨와 아이들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엄마, 아파 보여요. 괜찮으세요?"

아이들 눈빛에 불안이 서렸다. 엄마도 아빠처럼 무너지는 건 아닌지, 정희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생처음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란 병을 받아들여야 했다. 남편과 이별 후 벌써 7년, 악착같이 버텨왔지만 마음 한편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누구에게도 사정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게 더 힘들었다. "이미 기초수급자 지원을 받고 있는데…어떻게 더... 염치없게."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극심한 무기력증이 정희씨를 덮쳤다. 약을 삼키지 못한 날도 많았다. 방 안에 누워 눈을 감고 그냥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조차 등을 돌렸다. 점점 고립돼 갔다.

중증 환자가 된 정희씨에겐 치료와 도움이 필요했지만 의지는 사라졌고, 주변 누구도 그의 절박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지막 길을 가려 했다

어느 날 정희씨는 행복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과거의 웃음은 현재의 고통을 덧나게 할 뿐이었다. 길이 없어 보였다. 정희씨는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모든 게 벅차...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아이들을 재웠고, 그 곁에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마지막 길을 걸어갔다. 이제 끝이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희씨가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잠에서 깬 첫째 아들이 119에 곧장 신고를 했다고 했다. 아들이 비극을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아이들을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둘째 영호의 상태가 특히 심각하다고 했다.

"제가 죄인입니다. 제발 영호를 살려주세요. 제가 벌을 다 받겠습니다." 하늘에 있을 남편에게 빌고 또 빌었다. 뒤늦은 후회와 사죄. 아니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영호는 5일 만에 눈을 떴다. 엄마를 가장 먼저 찾았다고 누군가 전했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 엄마는 이미 살인미수 및 아동학대 피의자였다. 법원은 임시분리 조치를 내렸고, 면회조차 금지됐다.

정희씨는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고, 아이들은 두 달간의 치료를 마친 뒤 외할머니댁으로 옮겨졌다. 엄마의 잘못이 가족을 무너뜨렸다.


주변의 헌신, 회복의 각오

시의 요청에 따라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김민철 팀장이 정희씨 가족을 지원하게 됐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극단적인 가족 비극이라, 미수라 해도 원가족 회복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트라우마 치료 역시 험난한 일이었다. 게다가 고립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가족처럼, 외부의 지원을 거부할지 모를 일이었다. 김 팀장은 장기전을 준비했다.

다행히 정희씨는 성벽을 쌓아두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김 팀장 앞에서 다짐했다. 자신의 정신질환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고 나선 점도 고무적이었다. "아이들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각오는 분명 진심이었다.

김 팀장은 외가에 맡겨진 아이들을 매일같이 찾았다. 아이들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 "엄마에게 계란후라이를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맞아. 그리고 너희 잘못은 하나도 없어. 이제, 어떻게 하면 엄마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얘기해 볼까?" 김 팀장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법정에 선 정희씨 모습. 김동욱 기자·미드저니

사건 발생 7개월 만에 1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법정에 선 정희씨를 매섭게 꾸짖었다.

"설령 부모라 해도 독립된 인격체인 자녀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은 홀로 남겨질 피해자들이 걱정됐다고 하지만, 어린 피해자들이 아무런 사정도 알지 못한 채 생명을 박탈당하는 비극을 겪을 뻔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존엄한 삶을 살아가야 할 주체입니다." 정희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를 판결했다.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이들을 성실히 키우겠다고 다짐한 점, 또 아이들이 엄마를 용서하고 함께 살기를 희망한 점 등을 감안,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정희씨 형량이 결정되자 시청, 경찰, 검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관계기관들이 모였다. 엄마와 아이들을 임시분리하는 조치를 연장할지, 해제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김 팀장이 의견을 보탰다.

"아이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있었지만, 이 가족은 어느 집보다 끈끈합니다. 아이들과 엄마의 바람대로 원가족 회복을 지원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난 가족...끝이 아니다

다시 만난 가족. 김동욱 기자·미드저니

정희씨와 아이들이 마침내 만났다. 사건 후 1년 만이었다. 정희씨가 아이들을 안았다.

"다시는 너희를 아프게 하지 않을게.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생계는 여전히 팍팍했고, 정희씨와 아이들은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다. 둘째 영호는 화상으로 붙어버린 손가락을 분리하는 수술을 받았다. 흉터가 남았고, 엄마와 화해한 것과 별개로 마음에 남은 상처와 후유증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영구 장애를 얻은 영진도 다를 게 없었다. 정희씨 역시 다리에 장애가 생겨 재활치료가 필요했지만, 형편상 자신의 치료는 뒤로 미뤘다. 그는 아이들의 치료에 모든 것을 쏟기로 했다.

김 팀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정희씨 가족이 임대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상처가 켜켜이 쌓인 집을 떠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봤다. 실제 그 작은 보금자리가 삶을 다시 추스를 힘이 됐다. 정희씨 가족의 사정을 전해 들은 익명의 이웃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가정 회복 프로그램'도 도움이 됐다. 그 덕에 근처 유원지로 가족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 지난달엔 아이들의 조촐한 생일파티도 열었다. 김 팀장이 고기와 케이크를 깜짝 준비했고, 가족은 다시 만난 뒤 처음으로 생일 케이크 촛불을 함께 불어 껐다. 아이들과 정희씨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다시 만난 가족. 저마다의 속도로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김동욱 기자·미드저니

겉보기엔 분명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정희씨는 그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숨이 막힌다.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이 지난 상처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 그는 무서웠다.

지금도 비슷한 뉴스를 접할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절박한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정신과 치료를 더 열심히 받았더라면..." 그때 왜 그러지 않았을까.

정희씨는 요즘 집 밖으로 자주 나간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아르바이트를 가고 일을 마치면 곧장 구직 학원으로 향한다. 안 좋은 생각에 빠질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들도 저마다의 속도로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영진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운다. 영호는 요리사가 꿈이다. 손에 남은 흉터가 여전히 선명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한다.

"벼랑으로 몰린 당신의 처지가 어땠을지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아이와 저는 별개예요. 아이들은 자기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데, 왜 그땐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는 지켜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평생의 가슴 아픔이 되고 말 거예요."

정희씨는 이렇게 전했다. 어딘가 있을 또 다른 정희씨에게.

◆엑설런스랩 기획유닛팀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범죄 수법의 묘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심리와 회복 과정에 초점을 뒀다. 사건에 관련된 가족들의 신원 보호, 피해 아동들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 등을 감안해 등장 인물들 이름을 가명 처리했다. 물론 등장 전문가는 모두 실명이다.

팀장= 김동욱 기자
취재= 김지현·한소범 기자, 백혜진 인턴기자

<글 싣는 순서>
① 참회의 눈물
② 두 번의 버림
③ 벼랑 끝, 비극
④ 처벌과 용서 사이
⑤ 상처를 넘어선 삶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참회의 눈물
    1. • 3건 중 1건은 아이만 죽었다...자녀 살해 후 자살 260건, 분석 결과 모두 공개합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110300003636)
    2. • 자녀 살해, 사망 아동이 7명?...국가도 모르는 '숨은 죽음' 2배 더 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116550005046)
    3. • 시청의 통보…자녀 살해 후 자살 가정에 "치료비 4천만 원 갚아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713520005534)
    4. • 남편 잃고 7년 버틴 엄마...내가 내 아이를 죽이려 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113370004609)
    5. • 자녀 살해 후 자살, 대체 왜? 막을 순 없었나?...기록 너머 현실을 들여다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817010003426)
  2. ② 두 번의 버림
    1. • 부모에게서 살아남은 132명...그중 78명, 국가는 행방조차 모른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17140005515)
    2. • 자녀 살해, 아동학대 범죄로 못 박아야 아이들 지킬 수 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211310000623)
    3. • '위험한 양육자'의 아동 학대...학교 병원 복지센터 누구도 나서 주지 않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115520004174)
    4. • 아동학대 의심스러운데 신고 머뭇거리는 이유...“보복 두려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116020003114)
  3. ③ 벼랑 끝, 비극
    1. •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심리적 자해...사회적 좌절이 정신건강 위기와 만날 때 '폭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822450000084)
    2. • 자녀 살해 후 자살 사전에 막으려면...부모의 정신 건강 관리부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116070001166)
    3. • 우리가 외면했을 뿐...엄마는 발달장애 아들과 늘 벼랑 끝에서 울고 있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14410002081)
    4. • 위기가구 발굴로 부족한 자녀 살해 후 자살 대책...복지 문턱부터 낮춰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214370001403)
  4. ④ 처벌과 용서 사이
    1. • "오죽했으면? 아동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는 엄하게 처벌해야"[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302060004562)
    2. • 자녀 살해 후 자살 10건 중 4건은 집행유예...진지한 반성, 유족의 탄원 등에 감형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119050004186)
    3. • 아이를 죽이려 했던 부모가 법정에 섰다...피해 아이는, 가족은 용서를 바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116170003260)
  5. ⑤ 상처를 넘어선 삶
    1. • 뇌과학자 장동선 "어머니를 가해자로 인정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713550002925)
    2. •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매년 20명 넘는 아이 잃는다…"아동사망검토제 이제 도입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515100000795)
    3. • 살기 서린 아빠의 눈, 그날의 상처 딛고...새순처럼 피어난 세 모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311130005954)
    4. • "자녀 살해 후 자살 피해 아동, 집중 관리 사례로 지원해야"[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114580002734)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이번 취재를 통해 추적한 260건의 전수 기록을 모두 공개한다. 해당 링크https://drive.google.com/file/d/1hT8iJtOfw_9r7r9tmofmwz0eIvmhol0O/view또는 아래 큐알코드로 접속하면 고해상도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기사와 판결문을 통해 파악된 피해 아동의 성별과 연령, 가해 부모의 성별과 연령, 사건별 특징을 포함했다. 단 구체적인 범행 방법과 발생 지역 등의 정보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표시하지 않았다. 사망한 아동과 부모는 붉은색 글자로 표시하고, 하루에 두 건 이상 벌어진 경우는 노란색 박스로 표시했다.

한국일보는 자살예방 보도준칙을 준수합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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