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다, 빛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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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흐르는 청자에 검은 학이 날갯짓하고 있다.
이러한 소망이 담긴 12∼13세기 고려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이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특별전 '검은빛의 서사'에서 2일부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유지원 학예연구사는 "비교적 일률적으로 색을 낼 수 있었던 백자와 달리, 흑자는 색깔을 통일하기가 어려웠기에 더 다채로운 빛깔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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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흑자-불화 아미타설법도 등
전통문화 속 ‘검정’의 의미 조명
죽음-어둠 넘어 생명-권위 상징

이러한 소망이 담긴 12∼13세기 고려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이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특별전 ‘검은빛의 서사’에서 2일부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 매병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으로, 간송미술관 소장작(국보)과는 다른 작품이다.
이번 특별전은 그간 고미술에서 흰색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검은색’의 다양한 의미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죽음과 두려움의 색을 넘어 현묘(玄妙)함과 권위, 생명의 근원을 상징했던 검은색과 관련된 회화와 의복, 도자 등 120여 점을 전시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옛 문헌을 토대로 검은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天地玄黃)는 구절로 시작하는 17세기 ‘천자문’, 18세기 조선 문신인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의 시와 산문을 엮은 ‘연암집’ 등이 각 도입부에 전시됐다. 연암은 까마귀를 가리켜 “홀연 유금(乳金) 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석록(石綠) 빛을 반짝이기도 한다”면서 검정이 수많은 색을 품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 문무백관이 입던 예복 ‘흑단령(黑團領)’은 당대 검은색이 권력을 상징했음을 보여 준다. 검은 옷, 흑칠한 가구 등은 왕실과 사대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오혜연 학예연구사는 “당시 직물, 나무 등을 까맣게 염색하는 데엔 품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서민들은 흰색에 비해 값비싼 검은 옷을 구하기 힘들었을뿐더러 절제와 검소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이 이를 억제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후반부 오묘한 빛을 내는 흑자(黑磁·검은 도자류) 20여 개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공간도 눈길을 끈다. 흑자는 유약에 담긴 산화철, 산화티타늄 함유량에 따라 은은한 노란빛이나 푸른빛 등을 띠게 된다. 고려시대부터 일상에서 저장을 위해 쓰는 용기였다. 유지원 학예연구사는 “비교적 일률적으로 색을 낼 수 있었던 백자와 달리, 흑자는 색깔을 통일하기가 어려웠기에 더 다채로운 빛깔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전시장 곳곳에선 근현대 작가들이 검은색을 테마로 창작한 회화와 조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한자에 담긴 이미지를 3차원으로 형상화한 최만린(1935∼2020)의 ‘천지현황’ 시리즈, 김기린(1936∼2021)의 그림 ‘안과 밖’ 등이다. 11월 29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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