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 갱생의 길 오직 교육 뿐” 한서 남궁억 선생 민족혼 양양 만세운동 꽃 피우다
사재 투입 불사 기금 조성 ‘학교 설립’
지도자 개방된 의식·애국정신 바탕
영어 등 신학문·민족사상 교육 매진
일제치하 졸업생 야학 통해 민족교육
1919년 4월 4~9일 양양 만세운동
현산학교 출신 계층 간 연결고리 역할
대다수 책임자 임무 조직적 진행 주역
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24 양양 신학문의 첫걸음 ‘현산학교’

양양은 3·1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이다.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6일 간의 만세운동으로 12명의 목숨이 스러졌고, 172명이 일경에 체포됐다. 양양의 작은 마을에서 이처럼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육을 통해 민족혼을 불어넣었던 한서 남궁억 선생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양문화원의 연구원들이 당시 신문을 통해 양양 3·1만세운동의 주역들과 현산학교 교육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현산학교 설립자인 남궁억 선생의 확고한 계몽사상과 학문을 지도하던 교사들의 애국정신 및 개방된 사상은 일제 치하 아래서도 지역민들의 애국 정신을 견고히 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양양문화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남궁억 선생이 창간했던 황성신문에서 현산학교의 구체적인 운영과정을 짚어냈고, 지도자들의 교육과 지역의 문화가 어떻게 3·1 운동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를 주목했다.

■ 현산학교 조명
양양문화원 연구원들은 최근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 당시 신문에서 현산학교의 운영을 세세히 기록한 기사를 찾았다. 신문을 통해 현산학교 설립 과정과 학생 수, 교사 배치, 담당 교육과목 등 운영 과정이 자세히 밝혀졌고, 의병의 침입과 학교의 재건, 당시 양양 지역의 분위기 등을 종합해 현산학교와 양양 3·1운동의 관계성을 엮었다.
연구를 주도한 김영미 양양문화원 연구원은 “양양학연구소에서 매년 주제를 정해 책을 발간하는데, 올해 주제가 폐교였다. 학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지역 근대학교의 첫 시작인 현산학교를 주목하게 됐다”며 “연구 초기 현산학교에 대한 자료는 그 출신들이 양양 3·1운동에서 활약했다는 내용뿐이었다. 그러다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남궁억 선생이 창간했던 황성신문을 비롯해 대한매일신보 등에 현산학교 운영에 대한 기사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 연구원은 “양양 3·1운동 주도자 중 현산학교 출신이 많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현산학교에서 이뤄진 교육과 교사들의 가치관 등이 어떻게 3·1운동으로 연결됐는가는 새로운 연결고리”라며 “양양 3·1 운동은 타지에 비해 조직적으로 전개됐는데, 현산학교와 양양보통학교 졸업생들이 종교, 연령 등 다양한 계층의 연결고리가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 신학문 통해 양양교육 거점 되다
현산학교는 신학문을 통해 나라 밖의 세상과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전파하며 양양의 변화를 이끌었다. 새 교육의 바람은 벽촌마을이었던 양양을 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마을로 뒤바꿨다. 양양문화원이 펴낸 ‘남궁억의 교육사상이 살아있는 현산학교가 양양 3·1운동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학교 설립은 1906년 남궁억 선생이 양양군수로 부임한 뒤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이다. 교육을 통해 국민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겠다는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에서다.
정부는 1895년부터 소학교령을 공포하고 춘천, 원주, 강릉에 공립 소학교를 설치했지만, 당시 양양에서는 유림들의 반대로 소학교 설립이 수차례 좌절됐다. 하지만 남궁억 선생은 유림을 비롯한 고을 유지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학교 설립을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털어 기금을 조성하고, 각 종계와 향교를 설득해 1만 량의 기금 출연을 끌어냈다.
결국 ‘국권 갱생의 길은 오직 교육밖에 없다’는 남궁 선생의 설립 정신 아래, 현산학교는 신학문 교육과 애국심, 민족사상을 가르쳤다.
현산학교는 당시 마을에 떠돌던 “양학을 배우면 혀가 꼬부라진다”, “눈알이 노래진다”는 등 신문학에 대한 유언비어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신학문 보급의 거점 역할을 했다. 선생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반대자와 모략자를 붙잡아 태형에 처하고 자녀가 있는 집마다 의무적으로 1명을 학교에 입학시키도록 했다. 또 마을마다 세워진 신학서당과 야학을 지원하고, 현산학교 졸업생을 교사로 채용해 신학문 교과서로 가르치도록 했다.
황성신문에 따르면 개교 당시 현산학교의 학생은 146명. 학생들의 나이는 적게는 11살, 많게는 23살까지 재학했다.

남궁 선생은 교육을 확산하기 위해 사범과를 설립하고 일본에서 8년간 유학한 정우용을 교사로 초빙했다. 현산학교는 4명의 교사가 8개 과목을 가르쳤다. 그가 직접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정우용이 산수와 역사, 이홍영이 국문과 한문, 조선육군 참령 출신인 김홍식이 일어와 체조를 가르쳤다. 김홍식은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다 군대 해산으로 비분을 품고 고향에 돌아와 교사로 재직했다. 지도자들의 개방된 사상과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산학교는 1910년 일제 치하에 놓이면서 양양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됐다. 일제 주도의 일본어 교육과 천황 숭배사상 교육이 진행됐지만, 현산학교를 통해 배웠던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개조할 수는 없었다. 현산학교 졸업생 등은 서당 등 사립교육기관 및 야학을 활성화해 학생들이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했다.

■ 양양 3·1 만세운동 주도
양양 만세운동은 타 지방에 비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현산학교와 양양공립보통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종교, 연령, 성별,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나가 된 덕분이다.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이어진 양양 3·1 운동은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군민들로 거리가 가득했다.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6일간 양양군 내 7개 면 132개 리 중 6개 면 82개 리에서 6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때 군민들을 주도한 각 면 단위의 만세운동 책임자들은 양양면 최인식, 손양면 함홍기, 강현면 장세환, 서면 노용수, 현북면 김종대, 도천면 이능렬이었다. 서울에서 독립선언문을 숨겨와 양양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이석범의 아들 이능렬을 제외하고 전원이 현산학교 출신이다.
6일 간의 만세운동으로 12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부상, 172명이 체포됐다. 사망자 중 대부분이 현산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을 20~30대 청년들이다.
1919년 4월 4일 양양 3·1 운동의 첫 희생자인 함홍기 열사도 현산학교 출신이다. 함 열사는 전날 태극기를 만들다 체포된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장실에서 격렬히 항의했고, 결국 양팔이 잘리는 등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순국했다. 3·1 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고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지휘한 김종태도 현산학교 졸업생이다.
1908년 현산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이종하는 위천서당, 한동서당 등의 교사로 재직했다. 이종하의 제자들은 1919년 기미 3·1만세운동에서 만세운동의 선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양보통학교 1회 졸업생 최인식은 도목수로 활동하며 쌓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만세운동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유림이 접근하기 힘든 청장년과 농민, 양양보통학교 학생들의 참가를 이끌며 운동세력을 확장했다.

■ 교육으로 나라를 부강하게…설립자 남궁억 선생
남궁억 선생은 1883년 미국인이 경영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내무부 주사, 고종의 어전 통역관 등 다양한 관직에서 활동했다. 내무부 토목국장 재임 당시엔 홍화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개화사상과 애국사상을 전파했다. 또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간했으며, 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약 4년간 일본의 야욕을 폭로해 일제로부터 심한 고문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06년 양양군수로 임명받아 현산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당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근원은 국민의 지식에 있다”며 “교육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기관”이라 강조했다.
개교 이후 남궁 선생은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교과서와 종이, 벼루, 먹 등을 집에서 실어 날랐으며, 무상으로 공책과 연필을 공급해 학업을 지원했다.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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