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찰리 커크와 한 마지막 인터뷰

안준현 기자 2025. 9. 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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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 설립자 찰리 커크(32)의 피살 소식을 듣고 기함했다. 방한한 그를 인터뷰한 것이 숨지기 닷새 전 일이었다. 뜻하지 않게 커크의 ‘마지막 인터뷰어’가 된 셈이다. 키 195㎝인 그가 내 손을 잡고 “정치가 언젠가 삶을 바꿔주길 기다리지 말고, 지금 내 삶에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커크의 언변은 듣는 사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한국 화장품을 잔뜩 사서 다시 어려지겠다”는 농담을 했고, 유튜브에선 “새벽 5시 반 호텔 밖을 나와서 6마일(약 9.7㎞)을 걸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놀랍다”며 서울의 치안과 청결을 극찬했다. 그랬던 그가 미국 유타주 대학 캠퍼스에서 20대 청년들과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라(Prove me wrong)’는 즉문 즉답 토론을 하다 난데없이 날아든 총탄에 숨질 줄 누가 알았을까.

지면 사정으로 미처 싣지 못한 그의 말 중에 ‘인생에서의 네 가지 큰 축복’이 기억에 남는다. 기독교인이 된 것, 정치에 입문한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축복으로 꼽은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꼭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으라. 그게 인생의 행복”이라고 했다. 그 말에서 정치적 신념만큼이나 따뜻한 인간미를 느꼈다.

그날 인터뷰에서 커크는 “친구 다섯 명만 투표장에 데려가도 세상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한 이념을 넘어 일상 속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부 국내 언론은 ‘극우 인사’로 치부했지만, 커크의 말에는 진영과 이념의 벽을 허무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만들어 놓은 규칙을 비판만 하는 소극적 저항에 머물지 않았고, “진보가 만든 제도라도 거부하지 말고 더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진영도 경청하고 되새길 만한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이 청년 논객은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골랐다. 인천 자유공원을 찾아 한미 동맹의 상징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에서 추념했고, 북한이 보이는 비무장지대(DMZ)도 방문했다. 그는 보수 가치에 관심을 갖는 한국 청년이 늘어나는 현상을 계속 연구하고 싶다고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전해졌다.

커크의 죽음은 그래서 충격 그 자체였다. 트럼프가 사후(死後) 최고 등급 대통령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그가 살아 있다면 기로에 선 한미 동맹을 위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들과 열정적으로 소통하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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