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일식의 극의(極意)…카이세키 신화, 시노하라 타케마사[미담:味談]
카이세키 레스토랑 ‘긴자 시노하라’
미슐랭 2스타, 일본요리 부문 일본 3위 선정
“꾸준함이야 말로 성공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꾸준함(継続),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힘이다.’
카이세키(会席)는 일본의 맛과 미(美)를 집약한 일식(日式)의 극의(極意)다. 일본의 자연과 계절을 담은 이 장르는 절제미와 화려함, 양극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다. 최상의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두면서,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미각의 지평를 넓힌다.
‘혼을 바쳐야, 완벽에 가까워 진다’는 일본의 장인정신, 쇼쿠닌다마시(職人魂)에 이르러야 카이세키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서방의 미식가들이 카이세키를 두고 ‘인류 최고의 미식’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마냥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시노하라 타케마사(篠原武将)는 카이세이의 최정점에 이른 명장 중 한 명이다. 그가 운영하는 ‘긴자 시노하라(銀座しのはら)’는 단순히 유명한 레스토랑이 아니다. “진짜 카이세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대답하는 공간이다.
미쉐린 2스타, 타베로그 일본요리 부문 3위. 숫자는 그의 실력을 설명해주지만,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는 따로 있다. 외부의 흔들림에도 고요히 내색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는 목표를 갈망하며 강하게 나아가는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다.
“꾸준함은 힘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빛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국보입니다.“
일본 천태종 창시자 사이쵸(最澄)의 명언을 인용한 시노하라 셰프의 인생 철학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가늠하게 만든다.

시노하라 셰프가 태어난 시가현 고난시는 남북으로는 아보시산(阿星山)과 이와네산(岩根山)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중심에는 야스천(野洲川)이 흐르는 전원의 풍경이 펼쳐진 곳이다. 산과 논을 놀이터 삼아 그는 자연스레 푸른 숲의 감성을 느끼고 농작물이 주는 생명의 가치를 깨달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운동에 소질이 있던 시노하라 셰프는 중학교 때부터 가라테를 수련해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때에는 가라테 도장에 다니며, 여러 대회에 우승을 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특기생 제안까지 받았지만, 요리사의 길을 택했다. 식당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고등학교 당시 가라테 도장의 사범님의 직계 선배가 교토산업대 코치님이셨는데, 저를 영입하러 직접 도장까지 오셨어요. 특기생은 당시에도 굉장히 드문 케이스였어요. 그 분에게 ‘대학에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어요. 가라테가 너무 아프고 힘들었거든요. ‘그럼 뭐를 할 거냐’는 질문에 ‘요리’라고 답해버렸어요.”

그 대답에는 특별한 계획도, 각오도 없었지만,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 일식당에 취업한 그는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자신감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망감을 이겨낸 유일한 방법은 노력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니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졌어요. 노력을 하면 할 수록 절망감은 사라지고 요리가 점점 더 재밌어졌어요. 그 때부터 요리를 진지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이후 교토의 유명 카이세키 레스토랑 ‘산게차(山玄茶)’에 들어간 시노하라 셰프는 본격적으로 카이세키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요리뿐 아니라 손님 응대, 청소를 하는 방법까지 카이세키와 관련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연말에는 하루 2시간을 자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로 체력적으로는 힘든 시기였다.

26살, 아버지의 설득에 시가현으로 돌아와 일식당을 오픈했다. 카이세키 스타일의 코스요리를 선보였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일본 사람이라 하더라도 카이세키를 접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코스요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음식이 나오면 먹지 않고, 다음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카이세키를 손님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카이세키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지금의 긴자 시노하라를 만든 시작점이었어요. ‘절대로 편한 길을 택해선 안 된다’는 게 답이었어요. 앞으로 요리와 관련한 어떤 선택을 해도 편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힘든 쪽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결론을 냈어요. 그래서 시가현에서 나와 가장 힘든 긴자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곳에서 저를 시험하고 싶어서요.”

긴자 시노하라의 요리에는 시가현의 산과 강이 녹아 있다. 그의 고향처럼, 그 요리는 지나친 장식을 거부한다. 자연의 생명과 계절의 흐름을 투박하지만 고요하게 담아낸다. 맑은 국물 속에, 봄의 산나물이 살아 숨쉬고, 하나의 초밥 위에 가을의 안개가 내려앉는다.
“모든 요리에 계절감을 담으려 해요. 계절 풀과 꽃을 사용해 계절감을 표현하고 있어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하고 있고, 다른 곳보다 강과 산에서 나오는 재료를 많이 이용하려 하고 잇어요.”

한국인에게는 카이세키는 생소한 장르일 수 있다. 오마카세를 카이세키로 혼동하는 이도 적지 않다. 본래는 차를 마시기 위한 식사로 카이세키(懐石)가 있었지만, 에도시대를 거쳐 사무라이들의 화려한 연회를 장식하는 동음의 카이세키(会席)가 주류로 자리잡아 현재는 카이세키라 하면 일반적으로 연회용 코스 요리를 의미한다.
술이 필수인 카이세키는 한 잔의 술을 마신 후 ▷전체 ▷삶은 요리·맑은 국 ▷사시미 ▷구이 ▷삶은 요리 ▷무침 ▷반상 ▷과일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런 카이세키의 코스는 프랑스 코스요리 누벨퀴진(Nouvelle cuisine)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기본 순서는 이렇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요리의 가짓수나 종류도 훨씬 다양해져, 튀김이나 양식의 기법을 활용한 요리들도 등장한다.

“카이세키에 담긴 일본 문화라는 것은 단지 먹는 행위만으로 성립되는 게 아니에요. 음식에는 의미가 있어요. 그 의미를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카이세키에요. 단순히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이 아닌, 그 이면에 담긴 정신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것이야말로 일본의 음식, 일본의 역사, 일본의 문화니깐요.”

시노하라 셰프는 일본 요리, 그 문화가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 또, 세계에 일본 미식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한다.
“일본의 문화가. 그 아름다움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요. 다음 세대에서도 그리고 또 그 다음 세대에서도 일본의 문화와 요리와 철학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것을 이어주는 교각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나아가, 저는 일본의 문화를 전 세계가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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