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박지성... 상암벌에 뜬 전설들, 아이콘매치 ‘방패’ 승리

전설적인 은퇴 선수들이 모여 치르는 축구 이벤트 ‘아이콘매치’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막을 올렸다. 국내 게임사 넥슨이 주최하는 아이콘매치는 2000~2010년대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스타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대회다. 티에리 앙리(48·프랑스)와 디디에 드로그바(47·코트디부아르), 리오 퍼디낸드(47·잉글랜드), 카를레스 푸욜(47·스페인), 호나우지뉴(45·브라질), 스티븐 제라드(45·잉글랜드) 등 이름만 들어도 세계 축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선수들이 서울에 집결했다.

‘축구에서 공격이 중요한가, 수비가 중요한가’라는 전통적인 논쟁거리에서 착안한 이 대회는 현역 시절 공격력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 11명과 수비력으로 유명했던 선수 11명을 한 그라운드에 세웠다. 각각 ‘FC 스피어(창)’과 ‘실드(방패) 유나이티드’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아이콘매치 대결은 실드의 2대1 승리로 마쳤다.

스피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의 2003-04 시즌 ‘무패 우승’ 신화를 이끌었던 아르센 벵거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듬 시즌 리버풀이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AC밀란(이탈리아)을 상대로 3점 차를 따라잡고 우승한 이른바 ‘이스탄불의 기적’을 이룬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실드의 사령탑으로 나섰다.

그라운드에 나선 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합을 다지고 때로 전력 질주를 하는 등 현역 때 못지않은 열정을 보였지만, 지나간 세월을 속일 순 없었다. 패스 미스 등 잔실수가 많았고 헛발질도 수차례 나왔다. 드로그바는 전반 헛발질로 득점 기회를 날린 뒤 동료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후반 들어 몸이 풀린 선수들이 이따금 강력한 슈팅으로 골문을 두드렸다. 후반 27분 스피어 공격수 웨인 루니가 상대 태클로 흘러나온 공을 논스톱 중거리슛으로 연결해 선취점을 올렸다. 11분 뒤 실드의 수비수 마이콘이 이영표가 올린 크로스를 헤더로 맞춰 동점골을 넣었다.

마이콘의 대인 마크를 맡고 있던 선수는 가레스 베일(웨일스·36)이었다. 마이콘은 이탈리아 인테르 밀란에서 뛰던 2010-11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베일의 토트넘(잉글랜드)을 만나 연달아 드리블 경쟁에서 뒤지고 해트트릭(3골)을 헌납한 바 있다. 그로부터 15년 지나 두 선수가 레전드 간 맞대결로 다시 만났고, 마이콘이 ‘설욕’에 성공한 것이다.
실드는 마이콘의 동점골이 나오고 6분 지나 한국 국가대표 출신 박주호가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어 승부를 뒤집었다. 지난해에도 스피어에 4대1 완승을 거둔 실드는 2연패(連覇)를 이루게 됐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은 6만4885명의 만원 관중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4만9000원부터 45만원에 이르는 입장권은 지난달 예매 개시 2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관중들은 ‘레전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환영했다. 경기 도중 선수들이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개인기를 펼치거나, 반대로 속도가 부족해 패스를 이어받지 못했을 때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관중 상당수는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게임 캐릭터로만 접한 ‘축구 전설’들을 직접 볼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예매 전쟁’을 뚫고 달려온 것이다. 넥슨의 간판 게임 ‘FC 온라인’과 ‘FC 모바일’(스마트폰 버전)은 이용자 절반 가까이가 10대일 정도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원하는 축구 클럽을 골라 팀을 이끄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현역 선수뿐만 아니라 과거 활약했던 은퇴 선수까지 영입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버지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중학생 박재현(13)군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앙리”라며 “요즘 축구는 조직적인 팀 플레이 위주인데 앙리는 드리블을 앞세운 화려한 개인기로 골을 넣어 정말 멋있다”고 했다. 앙리가 마지막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른 것이 2006년인데 그로부터 6년 뒤 태어난 박군이 앙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온라인 축구 게임 때문이다. 박군의 아버지 박제성(44)씨는 “아들이 나랑 동년배인 선수들에게 열광하는 게 신기하다”며 “축구 스타 선수들을 매개로 아들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웃었다.
스타디움 앞은 킥오프까지 5시간여 남은 오후 2시 무렵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선수 유니폼과 키링 등을 판매하는 스토어 앞엔 앳된 얼굴의 중·고등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대구에서 온 초등학교 6학년 김민성군은 웨인 루니(잉글랜드·40)의 유니폼을 고른 뒤 “게임에서 처음 접한 선수였는데 아빠가 알려준 유튜브 옛날 영상을 보고 완전히 팬이 됐다”며 “어제부터 루니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어 잠을 못 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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