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못 잊을 ‘잔인한 현장’ 평생 마주치는 고통 [트라우마 삼키는 소방관들·(上)]
누적되는 사고 현장 트라우마
“울음소리 환청, 지금도 약 먹어”
“눈 감지 못한 사망자 기억 선명”
한달간 PTSD 경험자 비율 40%
인력 모자라 치료 위한 휴식 부족
“병가땐 동료가 보강, 참고 일 해”

35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29일) 현장에 투입됐던 두 명의 소방관이 최근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죽음은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수습한 경험이 오랜 시간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소방관들에게 출동 다음 날이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 되는 이유다. 정부는 소방관 정신건강을 위해 다양한 심리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경기도 소방관들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 속에서 동료에게 짐이 될까 도움 요청을 망설이고 있다. 소방관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대안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경기 남부지역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소방교 A(30)씨는 근무 3년 차던 어느 날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40대 아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빌라 안은 흐린 날씨 탓인지 유난히 적막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70대 여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A씨는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잠시 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여성의 딸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어머니를 잃은 딸이 절규하는 모습과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머리에 각인됐다. 소방서로 복귀하는 내내 그 모습과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날씨가 습하고 흐린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A씨는 말했다. 특히 불이 꺼진 집에서 닫힌 방문을 열 때면 당시의 공포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결국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절박해하던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남았다”며 “자려고 누우면 그때 들었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때가 있어 지금까지도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상황을 수습하는 소방관들은 비슷한 사고를 접할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경기 북부지역의 소방장 B씨(30대) 역시 6년 전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험이 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잊으려 애썼지만, 지금도 ‘자살 현장’이라는 상황 설명을 들을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고 현장에 계속 나간다고 해서 고통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진다고 이들은 말한다. B씨는 “작업자가 기계에 끼이거나,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는 반복해서 발생하지만, 시각적 충격이 너무 커서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그런 날은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낮에 본 장면이 떠올라 멍하니 앉아 한참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도의회가 의뢰해 도내 소방공무원 6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한 소방관의 비율은 약 40%에 달했다. 세부 항목별로는 ‘사건에 대한 반복적 기억(39.7%)’이 가장 높았고, ‘수면장애(38.9%)’, ‘불쾌한 감정(35.3%)’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최근 1년간 응답자 10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소방관들의 정신적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심리치료를 위한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거나, 사명감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A씨는 “병가를 내면 출동 인원이 부족해져 동료들의 휴가에 차질이 생기거나 다른 팀에서 보강을 해야 한다”며 “상황이 복잡해질 걸 알기에 그냥 약을 먹으며 참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B씨 역시 “소방관이 된 이상, 잔인한 현장을 평생 봐야 한다. 심적으로 힘든 날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선임에게 털어놓으며 마음을 추스른다”고 전했다.

/마주영·목은수 기자 mango@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