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진 11월…겨울철새 ‘지각’ 속출하고 생태교란종 득세

정지윤 기자 2025. 9. 1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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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 0.9℃의 경고 <3> ‘늦은 추위’ 텅 빈 모래톱

- 2022년 월평균기온 2.4도 올라
- 단골손님 청둥오리·큰기러기 등
- 개체수 27% 줄어 2만9941마리
- 다행히 12월부터 평년수치 회복

- 그새 ‘유해 조류’ 민물가마우지
- 대마등 주위로 폭증…피해 확산
- 경쟁 밀린 논병아리 자취 감춰

매년 11월이면 부산 낙동강 하구는 먼 나라에서 온 겨울 철새로 활기를 띤다. 그러나 그해 11월은 거짓말처럼 곳곳이 공허했다. 2003년 모니터링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발생한 겨울 철새 ‘무더기 지각’ 사태다. 기후 위기는 낙동강 하구의 겨울을 늦췄다. 뜨거워진 낙동강 하구, 죽음 같은 적막. 이는 예고편일 뿐이다.

지난해 1월 낙동강 하구 신자도 인근에서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된 민물가마우지가 떼를 지어 날고 있다. 야생동물연합 홍순복 박사·낙동강하구에코센터 제공


▮철 잊은 모래톱엔 ‘적막’

부산연구원은 2022년 11월 당시 낙동강 하구 겨울 철새 개체수는 2만9941마리로 집계됐다고 14일 밝혔다. 앞선 19년(2003~2021년) 치 11월 평균 개체수 4만1312마리와 비교하면 27.5%(1만1371마리)가 줄었다. 겨울 철새는 매년 11월부터 하구를 찾아 이듬해 2월까지 머문다. 하지만 그해 11월, 하구엔 ‘철새의 계절’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겨울 철새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다음 달인 12월과 이듬해 1, 2월에 개체수는 10만8114마리까지 늘었다. 지난 19년 치 겨울철 평균 개체수인 10만1140마리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지각 조(鳥)’는 청둥오리 큰기러기 등 주로 수면성 오리류다. 하천 모래톱 근처나 물이 얕은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한다. 머리와 목을 이용해 물 위 또는 물속에서 사냥한다. 위급 상황 땐 수면에서 바로 날아간다. ‘정상적 겨울’의 낙동강 하구는 수면성 오리류가 월동하기에 최고의 장소다. 하구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 강 수면을 박차고 무리 지어 날아오르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부산연구원은 겨울철 기온 상승이 낙동강 하구의 환경을 바꿔 철새 도래 시기를 늦췄다고 분석한다. 2022년 11월 낙동강 하구 평균기온은 13.1도로, 지난 26년(1997~2022년)간 평균(10.7도)보다 무려 2.4도 높았다. 반면 이듬해 11월 평균기온은 10.7도로 낮아졌다. 그러자 2022년 11월 2만9941마리로 뚝 떨어졌던 겨울 철새 개체수도 1년 뒤 같은 달 5만4522마리로 늘었다. 지난 19년 치 평균을 1만 마리 이상 넘어섰다.

겨울 철새 무더기 지각 사태는 2022년에만 적용되는 ‘이례적 현상’으로 남을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기후 위기로 기상 이변이 잦아지면서 겨울 철새 도래 시기도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한다. 부산연구원 여운상 선임연구위원은 “11월 높은 평균기온이 철새의 도래를 즉각적으로 늦췄다”며 “아직은 2003년 이후 딱 한 번 관찰됐지만, 앞으로 겨울 철새 도래 시기는 매우 혼란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안방 빼앗은 유해 야생동물

겨울철 낙동강 하구의 ‘터줏대감’이지만 점점 민물가마우지 등에 자리를 빼앗기는 청둥오리.


청둥오리와 큰기러기가 지각하는 사이 잠수성 대형 조류인 민물가마우지가 낙동강 하구를 ‘빼앗았다’. 생태계 교란종 민물가마우지는 점점 세력을 확장한다. 2003~2024년(1~21차) 민물가마우지 평균 개체수는 4499마리다. 그러나 2019~2024년(16~21차)엔 8846마리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1년 6783마리에서 2022년 1만4324 마리, 2023년 1만5273 마리로 폭증했다.

민물가마우지는 원래 매년 11월께 우리나라를 찾아 이듬해 3월 연해주와 사할린 등지로 떠나 번식한다. 야생동물연합 홍순복 박사는 “과거 낙동강 하구에서도 겨울철 일부 개체가 먹이 활동을 한 뒤 오륙도 일원으로 날아가 쉬는 모습이 관찰된 적 있다. 하지만 2022년부터 하구 대마등 등지에서 거대한 무리 군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민물가마우지 피해는 갈수록 커진다. 27년째 매달 소형 어선을 타고 낙동강 하구 철새 모니터링을 해온 홍 박사는 여름에도 일부 개체를 대마등에서 발견했다. ‘텃새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그는 “민물가마우지는 주로 대마등 내 아까시나무에서 휴식한다. 제한된 공간에 개체수가 워낙 많다 보니, 배설물 때문에 나무가 허옇게 변하고 집단으로 고사한다. 일대 토양도 산성이 강한 배설물 탓에 오염됐다”고 말했다.

민물가마우지는 먹성도 좋아 다른 새들이 배를 곯는다. 하루에 물고기를 600~700g 잡아먹어 식성이 비슷한 뿔논병아리 등 논병아리류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제 하구에서 논병아리류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물가마우지가 한반도 텃새로 자리 잡은 원인은 역시 기후 위기다. 겨울나기가 점점 쉬워지고, 천적인 매·수리·올빼미 개체수는 줄어 번식 성공률이 높아졌다. 민물가마우지는 낙동강 하구뿐만 아니라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를 비롯한 전국에서 골칫거리다. 환경부는 2023년부터 민물가마우지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포획을 허용한다.

▮낯선 새들의 ‘주인 행세’

낙동강 하구 기온이 오르면서 낯선 새들이 눌러앉는 사례가 늘었다. 대표적인 새가 기후 위기 지표종인 검은이마직박구리다. 원래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는데, 서서히 북상한다. 낙동강 하구에선 2015년 6월 중사도 인근에서 한 마리가 처음 발견됐다. 이후 꾸준히 늘어 지금은 한 해 150~200마리 보인다. 1년 내내 관찰되는 낙동강 하구 텃새가 돼버렸다.

머리 깃이 인디언 추장을 닮은 후투티도 하구에서 볼 수 있다. 과거 일부 남부지방에서만 여름 철새로 관찰됐지만, 이젠 경기 강원에서도 흔하다. 낙동강 하구에선 한겨울에도 볼 수 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이원호 박사는 “낙동강 하구 여름 기온이 20년 전보다 0.9도 올랐다 해도 사람은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새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후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움직인다”며 “이런 흐름이 일상에서 쉽게 관찰되는 수준까지 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고 우려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 ‘낙동강 하구 0.9℃의 경고’(little-tern.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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