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늑장에 신규원전 건설 2년이상 차질…AI 전력대란 불보듯
신규원전 축소 고육책 불구
첫발도 못뗀 원전용지 선정
고준위방폐장 논의도 표류
재생에너지 확대 나서지만
고비용에 산업경쟁력 저해
◆ 표류하는 원전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신규 원자력발전소 용지 선정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고준위 방폐장) 건설 등 대형원전 관련 정책들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원전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기류가 연이어 감지되면서 첨단산업과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한 국내 원전 현안들이 또다시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4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올해 안에 교통정리가 될 예정이었던 신규 원전 용지 선정은 아직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신규 원전 용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유치 공모와 평가·선정, 통보, 예정구역 지정 신청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아직 공모 절차도 개시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된 직후 신규 대형원전 2기(2.8GW)에 대한 용지 선정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 조직 개편 가능성까지 맞물리면서 반년째 일정이 뒤로 밀렸다. 고준위 방폐장 역시 올해 2월 입법 추진 9년 만에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용지 선정 등 행정 절차에는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원전 계획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겠다고 밝히면서 신규 원전 건설은 사실상 당초 계획 대비 2년 이상 지연될 전망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올해 106.0GW인 국내 에너지 수요는 2030년 118.1GW, 2038년 145.6GW로 커진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등의 조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AI 확대로 최근 전력 수요는 크게 늘어난 상태다. 한국전력 전력계통영향평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데이터센터 목적으로 한전에 전기 사용 신청서를 낸 건수는 총 290건으로 집계됐다.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원전 가동 공백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에너지 가격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에너지 구입단가에서 원자력은 79.23원으로 발전원 중 가장 낮은 가격을 보였다. 하지만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구입단가는 123.58원으로 원전 대비 1.5배가량 비쌌다.
여기에 더해 재생에너지는 송전망 구축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신설, 유연성 자원 사용에 따라 비용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력 생산 비용 전망을 추산한 결과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의 에너지균등화비용(LCOE·발전원별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총평균 단가)은 메가와트시(MWh)당 태양광 96.6달러, 육상풍력 113.3달러, 해상풍력 161달러였다. 원전(53.3달러), 석탄(75.6달러), 가스(86.8달러)보다 비싼 수준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원자력이나 천연가스, 석탄 등 펌파워(안정적으로 일정하게 공급 가능한 전력)를 배제하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것은 가장 값비싼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최근 5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이 80% 오른 상황에서 값비싼 에너지 비용은 산업 경쟁력을 뚝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맞는 전기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 교수는 "59.7~60.3헤르츠(㎐) 범위에서 전력이 공급돼야 하는데, 태양광이나 풍력은 날씨 상황이 바뀌면 이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생에너지는 유연성 측면에서 가장 나쁜 에너지원"이라고 평가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계통 부족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태양광과 풍력 등 에너지를 실어나르기 위한 전력 계통은 이미 포화 상태다. 11차 전기본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는 현재 30GW에서 2038년 121.9GW로 4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라 향후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계통라인이 11개"라며 "서해안에 에너지고속도로를 통해 4개 라인을 해저에 짓는다 하더라도 육상으로 수송하는 7개 라인을 어떻게 보강할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올해 하반기 공식 논의를 시작해 내년 말 확정될 계획이다.
올해 초 정부는 예정 시점인 2038년까지 신규 원전 건설 물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면 에너지 공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원전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주장을 수용하고 신규 원전을 3기에서 2기로 축소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12차 전기본에 담아내겠다고 하면서 이마저도 당초 계획보다 2년 이상 일정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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