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보 디아크가 거대한 미술관으로… ‘2025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개막
일상과 사회 문제에 던지는 위트 있는 질문
10월12일까지 대구 달성군 디아크 광장 일원

조각, 설치미술 등을 실내 전시공간이 아닌 야외공간에서 보는 느낌은 어떨까. 널리 알려진 조각공원이 없는 대구지역에서 일시적이나마 매년 야외 조각 및 설치미술 전시가 열려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곳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달성군 강정보에 자리해 자연과 조형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특별한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
'2025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난장난장난장(Clash, Crash, Create)'이 오는 10월12일까지 대구 달성군 강정보 디아크 광장에서 펼쳐진다.
◆대구는 어떻게 현대미술의 중심이 됐나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구가 특히 주목받았던 행사가 있다. 1974년 강정 나루터에서 열린 '대구현대미술제'다. 이 행사는 국내 최초의 집단적 미술운동이자 실험적 미술행사로 평가받는다. 이를 통해 대구는 한국 현대미술의 성지처럼 인식됐다.
달성대구현대미술제는 2012년, 30여 년 전 시도된 대구현대미술제를 부활한 것이다. 기성 미술의 틀을 깨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을 통해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한국실험예술의 맥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행위예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건용을 비롯해 실험미술의 거장 이강소, 표현주의적 회화를 개척한 이명미, 극단적인 반복 행위를 통해 회화를 새롭게 정의한 작가로 평가받는 최병소 등이 참여했다.
◆ 실험적 작품이 수놓은 강정보 디아크 광장

지난 13일 개막한 이번 미술제는 달성군·달성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며 올해로 14회째를 맞는다. 이번 미술제는 전통적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동시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유머와 통찰력으로 풀어낸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뤄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행사명 중 '난장(亂場)'은 1차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와 반항 정신에서 비롯된 '다다이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강효연 예술감독은 "난장은 단순한 혼란을 넘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소통하는 예술적 실천의 장"이라며 "이번 전시는 △환경 문제 △경쟁사회의 불안 △세대 간 소통의 단절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작가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미술제 본 전시에는 구지은, 김성수, 김영섭, 류재하, 박기진, 서동신, 신민, 심승욱, 왕지원, 원선금, 임승천, 정득용, 정승, 정재범, 홍범, 홍준호, Studio 1750까지 총 17개 팀 18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넓은 야외 광장을 활용한 거대한 조형물들은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참여 작가들은 관습적 미의 기준을 파괴하고,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현실의 모순을 꼬집는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도 제공한다.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는 원선금 작가의 '재생된 권위'다. 무려 20m에 달하는 거대한 양탄자는 버려진 과자 봉지를 재활용해 제작됐다. 원 작가는 수많은 봉지를 수집하고 엮는 반복적 노동을 통해 무분별한 소비와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시각적으로 비판하며, 화려함 속에 숨겨진 현대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임승천 작가의 5.4m 높이 작품 '붉은 발'은 현대 사회의 수직적 관계와 폭력성을 형상화해 관람객에게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구지은 작가는 철새와 이주민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5m 높이의 거대한 '사인볼(이발소 표지등)' 형태의 작품 '뉴제비타운'을 통해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 야외 공간 특성 살린 작품들 눈길

야외 공간의 특성을 살린 작품들도 돋보인다. 김영섭 작가는 30여 개의 해바라기 모양 혼 스피커를 설치한 '꿈의 정원'을 통해 수백 명의 꿈에 대한 인터뷰를 들려주며 관람객과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정재범 작가의 '움물'은 목재를 활용한 움물 형태 조형물로, 그 위에 불교 경전의 글귀를 새겨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대부업체 전단지 이미지를 다이아몬드 조형물에 섬세하게 박아 넣은 홍준호 작가의 작품 '허락 없이 배포하여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Ⅲ'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역설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디아크 광장 언덕에서 관람객들을 내려다보는 김성수 작가의 금속 작품 '폴리스맨', 비무장 지대의 기억을 담은 박기진 작가의 '통로', 신민 작가의 '마감 5분 전인데 드시고 가세요 손님?'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낙동강의 가을 정취와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가족나들이로 미술제에 왔다는 원창원씨(41·대구 달서구 성당동)는 "초등학생인 아들이 작품들을 보니 너무 좋아한다"며 "딱딱한 이미지의 미술작품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비틀거나 색다르게 보여줘 보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