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우방도 없는 약탈 외교

미 국토안부보 사상 최대규모의 불법이주자 단속이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
어졌다. 수개월에 걸친 사전 탐색과 정보 수집을 통해 치밀하게 기획한 작전이었다. 단속에는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마약단속국(DEA), 연방수사국(FBI) 등 주요 수사기관이 총동원 됐다. 헬리콥터와 드론이 상공에서 엄호하는 가운데 400여명의 중무장 요원들이 들이닥쳐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체포해 쇠사슬을 채웠다.
충격적인 것은 이 기록적인 불법이민 단속이 한국인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단속 현장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장이다. 이날 이 곳에서 체포된 475명 중 한국인이 317명에 달했다. 대부분 첨단 생산 설비와 장비를 구축하는,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전문 인력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취업 불가의 단기 체류만 허용되는 B1 비자나 여행자를 위한 이스타(ESTA)로 입국했다는 점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국 측에 적법한 비자를 받으라고 여러차례 조언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이번 단속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외국인 전문직 근로자에게 발급하는 취업용 'H-1B' 비자는 대기자만 수십만 명에 달할 정도로 절차가 까다롭다. 미국 인력을 교육·훈련시켜 투입하는 대안이 제기되지만, 그럴 경우 공장 준공은 3년이 지체된다고 한다. 해서 단기 비자로 전문인력을 데려와 공장 건설에 투입하는 편법은 일종의 관행처럼 통용됐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10조원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고 2030년까지 8500명의 현지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다. 대환영을 받으며 조지아주에 입성했지만 졸지에 불법 취업의 소굴이 됐다. 더욱이 조지아주는 한미 경제 동맹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두 기업 말고도 SK이노베이션, 한화솔루션, 두산밥캣, 한국타이어 등 국내 굴지 기업들이 조지아주에 이미 공장을 지어 운영하거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선 우방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았다는 비판론이 거세지만 현지 분위기는 다르다. 배터리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구 하원 의원은 정부의 이번 단속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미국 근로자를 불법 이민의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담대한 조치에 박수를 보낸다"는 성명까지 냈다. 제 지역구에 천문학적 투자를 해 일자리를 만들려는 기업을 재앙의 진원지로 매도한 것이다. 공화당 출신의 트럼프 추종자인 그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투자 유치에 앞장 섰던 민주당 출신 조지아주 상원의원 2명이 공장 건설에 막대한 차질을 초래할 이번 과도한 단속에 내내 침묵하는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지역 여론이 우리 기업들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미 6개월 전부터 현지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세제 혜택을 받아가며 돈을 벌면서 현지 인력은 쓰지않는다는 언론 보도가 수시로 터져 지역 민심을 흔들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 단속도 그 부정적 여론을 구실 삼아 강행됐다는 게 정설이다. 지역에 일자리를 베푸는 시혜자라는 인식에 기울어져 현지 주민과의 소통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라는 얘기다.
구금됐던 근로자들이 전세기를 타고 무사히 귀국하긴 했으나 미국은 우리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러트닉 장관은 근로자들이 비행기에 오르기도 전 서명을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한국은 3500억 달러(486조원) 펀드를 조성해 미국에 투자한다는 것이 지난 7월 맺은 양국 협약의 골자다. 문제는 투자펀드의 집행 방식이다. 미국은 어디에 투자할 지를 자신들이 결정하고, 원금 회수 후에는 수익의 90%를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돈 받아 멋대로 쓰고 그 과실도 챙기겠다는 얘기다. 말이 투자지 상환 기간도 없는 무이자 대출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미 정부는 이런 황당한 조건의 투자와 25% 고관세 중 택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의 예측불허 좌충우돌에 대통령이라고 묘방이 있을 리 없겠으나 호소하고 달래되 마지노선은 단호히 지키는 슬기로운 책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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