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위와 장인의 배낭여행 [양희은의 어떤 날]

한겨레 2025. 9. 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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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살짝 바뀌더니 매미의 합창은 사그라지고 풀벌레 소리가 조금 커졌다. 여름휴가를 묵힌 이들은 10월의 긴 연휴를 즐길 궁리 중인가?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는 선배가 부럽진 않지만(며칠 배 위에서 머문 기억의 끝이 좋지 않아서…) 당사자는 많이 설레는 듯하다. 크루즈 후에는 친구 별장에서 열흘 더 쉬다 온단다. 바다 앞에선 답답했던 속도 뻥 뚫리고 시원하다지만(산보다 바다라는 사람도 많지…) 아무래도 난 땅사람인가? 걸으면서 보는 온갖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고 시장이든 어디든 색다른 느낌의 채소, 과일, 생선 판매대의 진열과 낯선 사람들의 눈빛, 얼굴 표정, 웃음을 보고 느껴야 여행의 맛이라고 느낀다. 반대로 남편은 리조트 좋은 데서 맛난 것 먹고 푹 쉬는 게 제일이란다. 쉬려면 내 집만 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무엇 때문에 비행기 타고 남의 나라에서 비싼 돈 치러 자야 할까? 그러니까 무언가 다른 색감을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게 여행이라고 난 생각한다. 낯선 소도시도 좋다. 한갓지고 고즈넉하게 느린 듯 흐르는 시간. 고층빌딩이래 봤자 2층짜리 구옥이 전부인 곳! 그러고 보니 옛 노랫말에 ‘하늘을 찌를듯한 신신화신백화점’이란 가사가 있었다. 옛날 화신백화점에 에스컬레이터가 처음 생겼을 때 개구쟁이들이 오르락내리락 수없이 타고 내린 얘기며, 광화문 어느 신문사 견학 갔다 화장실이 ‘수세식 화변기’인지라 쇠손잡이를 잡아당겨 물을 내리자 콸콸 거침없이 계속 쏟아지길래 겁 먹고 도망 나와 밤새 물난리를 걱정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게 불과 1960년대 중반 얘기인데 시내 적산가옥이 흔해서 어린 날 이웃집들은 모양새가 어슷비슷했다. 아는 후배는 지방 도시의 병원집 딸인데 방이 열댓개 되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쓸고 닦던 풍경의 기억이 있단다. 그 후 증축을 위해 옛집을 허물고 큰 병원이 들어섰지만, 칠십 넘은 지금도 그 방 많던 옛집의 꿈을 꾼다며, 자기 마음속 집은 바로 어린 날의 그 적산가옥 하나뿐이라 했다. 그런 그리움 탓에 딸, 손녀, 후배 3대가 시골 소도시여행을 하는 거란다. 일본 유학파라 옛것 지키는 그네들의 고집과 소박함을 부러워한다. 티브이 드라마도 새로운 얼굴보다 중후한 노익장들의 출연으로 낯선 느낌이 덜 하단다. 시간을 거슬러 그리운 분위기와 공기 속으로 타임슬립 하기! 그게 후배의 여행이었다.

최근 소개한 ‘여성시대’ 편지 중에 장인을 모시고 사위들이 함께한 이야기가 있었다. 10년 전 (장인도 함께하기로 했지만 회사 일로 빠지시고) 자유여행 경험이 많은 동서 따라 타이 곳곳을 누비며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라면 안 갔을 저렴한 숙소와 로컬식당을 즐겼단다. 10년 지난 올여름 장인을 모시고 대학생들이 할 법한 남자들끼리의 배낭여행을 감행했단다. 저렴한 숙소+로컬음식+최대한의 걷기와 장인을 배려한 아침밥 짓기(장모님이 만드신 반찬 곁들여), 그리고 곳곳을 걸으며 식당이 보이면 들어가고 비 오면 적당히 비 맞으며 지저분하지만 맛있다는 국숫집서 국수 먹고 말도 안 통하는 먼 곳까지 가서 풍미 좋은 갈비 먹고, 새우 낚시터에서 새우 낚시 후 잡은 새우로 요리해서 가져간 초장을 찍어 먹고, 밤에는 노상 술집서 술 마시고 재즈바에서 재즈 감상 후 숙소에 와서 나란히 누워 마스크팩을 하고 침대에 눕고…. 70대 남성과 40대 남성 둘이 다니는 걸 보고 어떤 사이인지 사람들이 묻길래 장인과 사위라 했더니 신기해하며 부러워하더란다. 장인은 사위들의 생각 이상으로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걸 좋아하며 그 시간을 소중히 즐기셨단다. 한 여인의 남편으로, 딸아이 셋의 아버지로 늘 배려하고 챙길 식구들이 있으신데, 난생 처음 맘 편히 당신만 생각하는 여행이셨을 것이다. 여행 마지막 날 무엇이 가장 좋으셨냐 여쭈니, 함께 받은 피부관리와 새우낚시가 신기하고 좋았다, 힘들지 않고 내내 좋았다셨단다. 여행 후 사진을 인화해 앨범으로 정리해 장인께 선물로 드렸단다. 함께한 모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며 늦게까지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도 정말 오래 가슴에 남을 것이라고 얘기했단다. 그래서 다시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끝맺음을 했는데 대단한 효도를 기획한 여행이 아니었고, 늘 아내와 딸 먼저 생각하는 가장이었는데 이번에 장인과 함께한 여행은 충분히 즐기며 쉰 여정이라 했다. 여자들끼리의, 또 남자들끼리의 여행은 책무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똑같다는 걸 새삼 느꼈다. 참 귀한 추억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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