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야기] 목단 꽃 요강

윤혜주 수필가 2025. 9. 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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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주 수필가

아득한 슬픔이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요양원을 향해 돌아서던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그 저릿한 영혼의 눈빛 언어에 우리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모두가 현실에서 비현실의 세계로 떠밀려간 느낌으로 이지러져 말이 없었다. 엉거주춤 앉은 둘째 오빠는 메이는 목을 헛기침으로, 여동생은 흐르는 눈물을 가두려 나무 위를 쳐다보며 안타깝고 애달픈 마음들을 담담히 다독였다.

"어무이 집에 있는 요강은 내가 가져간다." 여름꽃이 자욱하게 핀 나무 밑의 침울한 분위기를 깬 것은 둘째 오빠였다. 생뚱맞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어머니 집의 요강을 자기가 가져가겠노라 선언한 것이었다.

팔순을 훌쩍 넘기고도 당신 스스로 병원 문 열고 들어가 본 적 없는 어머니였다. 평생 충직한 하인처럼 부려 먹은 육신을 병원 침대에 뉘었을 땐 가랑잎처럼 바스러져 있었다. 산다는 건 시간과 함께 마모되는 일이라, 강을 건넌 뒤 두고 가야 할 빈 나룻배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노환이려니 흘려들었던 어머니의 말들이 참이었음을 알았을 땐 너무 늦은 뒤였다.

상황은 여의찮았다. 거듭되는 가족회의에서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그때 누구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요양원 얘기를 꺼낸 건 둘째 오빠였다. 몸도 마음도 소진해 버린 어머니는 버려진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들의 그 한마디에 눈물을 삼키며 요양원 입소에 응했다.

또래들보다 왜소했지만 다부졌던 둘째 오빠였다. 병치레로 골골대는 형을 대신해 동생들을 줄줄이 업어 키웠다. 어느 날, 따개비처럼 등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동생이 지겨웠을까. 아니면 쉴 새 없이 어린 동생들을 등에 붙이는 어머니가 미웠을까. 업고 있던 젖먹이를 나무 밑에 팽개쳐놓고 놀다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퉁퉁 불은 젖으로 벌판에서 김을 매며 오빠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황급히 마을로 뛰어 들어왔을 땐 오빠는 사라진 뒤였다.

어머니는 우리 다섯 형제 중 유독 둘째 오빠한테만은 가혹하리만치 엄했다. 해가 지고 어둑해서도 오빠를 찾지 않았다. 때마침 대문을 기웃거리던 오빠 눈에 우물가에서 지린내 우려내고 있는 할아버지 방의 붉은 목단 꽃 사기요강이 띄었으리라.

'와장창' 사금파리 흩어지는 소리에 놀란 어머니가 뛰어나왔다. 오빠가 걷어찬 목단 꽃 요강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곧 깨끗이 씻어 할아버지 방으로 들이려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할아버지 방으로 건너가 버린 우리 방 요강을 원망하며 너도나도 요에 지도를 그려댔다.

저녁 밥상을 물리면 어머니는 꼬박꼬박 조는 우리들을 차례로 요강에 앉힌 뒤,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방 한쪽 구석에 요강을 앉혔다. 그 시절, 가정의 필수품이었던 요강은 깨지기 쉬운 무거운 사기(沙器)였다. 밤새 오줌을 담고 찰랑거리는 그 요강을 비울 때마다 오빠는 힘에 겨워 쩔쩔맸다. 그 물색없는 요강에 그만 화풀이하고 만 것이었다.

그때,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요강의 필요성도 퇴색되어 갈 무렵. 스텐 요강을 갖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간절한 속내를 알고 있었을까. 오빠는 첫 월급으로 어머니께 잘 깨지지도 않고 가벼워 옮겨 다니기도 좋은 스텐 요강을 사드렸다. 바로 그 요강을 오빠가 가져가려는 것이었다. 오빠에게 아름답게 쓰다 두고 간 어머니의 그 요강은 어떤 의미였을까.

철이 들면서 그 오빠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대견한 듯 그윽한 눈빛을 자주 보았다. 우리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온화하고 빛나는 눈길이었다. 요강을 비우는 궂은일도 등짐처럼 동생들을 업게 했던 오빠를 향한 어머니의 부채감과 미안함. 그것은 채움과 비움이라는 가족애의 산교육은 아니었을까. 그런 뒤, 그 아들에게 신뢰와 믿음이라는 모성애로 채워주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