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특집] AI가 바꾸는 세상, 길을 묻다(10)“화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층적 생태계로 진화한다

이영란 기자 2025. 9. 14. 13: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GI 시대 돈의 본질이 흔들리는 시대
달러 패권,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로 더욱 견고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전문가가 "달러의 종말"을 예측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 곧 디지털 달러 제국의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21세기는 인공지능(AI), 특히 범용인공지능(AGI)의 등장과 함께 경제와 금융 체계에도 전례 없는 변화를 맞고 있다. 그 핵심은 바로 화폐다. 종이와 금속으로 구현되던 교환 수단은 이제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재구성되고 있으며, 현금의 종말과 디지털 화폐의 확산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나리오 1, 국가 주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확산

미래예측분야의 가장 많은 전문가들은 AGI 시대 화폐의 미래를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분류한다. 이 시나리오는 각각 장단점을 지니며, 글로벌 금융 질서와 패권 경쟁의 주요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된다.

가장 전통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은 각국 정부가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전면적인 도입이다. 이미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한국의 디지털 원화, 유럽연합의 디지털 유로 등이 시범 운영을 넘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국민 대부분의 금융 거래가 디지털 지갑을 통해 처리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 체제의 강점은 통화 정책의 정밀 집행, 금융 안정성 확보, 그리고 세금 징수와 불법 자금 흐름 차단 등의 투명성 증대에 있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으로 현금 관리·유통 비용도 크게 절감된다.

반면, 모든 거래가 중앙 서버에 기록되면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높고, 중앙 시스템 장애 시 금융 마비 위험이 존재한다. 정부나 권력 기관이 금융 감시와 통제를 강화할 여지도 크다.

CBDC의 확산은 금융 다극화를 불가피하게 만들며, 국제 무대에서 각국 화폐 간의 상호운용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일대일로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은 각각 디지털 달러와 디지털 유로로 대응 중이다.

◆시나리오 2, AGI 주도 글로벌 디지털 토큰=국가 경계를 넘는 혁신

두 번째 시나리오는 AGI가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글로벌 디지털 토큰의 급성장이다. AI가 가치를 평가하고 자동으로 거래를 중계하며, 환전 없고 수수료 거의 없는 초고속 결제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이 해외 고객과의 거래 시 달러나 원화가 아닌 AGI 토큰으로 결제를 수행하고, AI가 즉석에서 가치를 환산해 송금까지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국제 무역과 온라인 플랫폼 경제를 획기적으로 효율화할 잠재력을 지닌다.

하지만 '누가 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하는가'라는 신뢰 문제와 규제 공백, 국가 주권 침해, 대규모 해킹 시 글로벌 금융 혼란 가능성 등의 위험이 내재한다.

이러한 탈중앙화 AI 화폐 시스템은 전통 정부 주도의 금융 질서와 충돌할 수 있어 향후 규제의 향방 및 국제 협력이 핵심 변수가 된다.

◆시나리오3, 다층 화폐 생태계=국가·AI·기업 화폐 공존의 시대

세 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현실적인 혼합형이다. 국가가 발행하는 CBDC, AGI 기반 글로벌 디지털 토큰,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 기업 플랫폼 화폐가 공존하는 다층적 생태계다.

예를 들어 국민은 세금과 공공요금을 CBDC로 지불하지만, 해외 송금과 무역은 수수료 적은 AGI 토큰이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다. 일상 쇼핑은 각 온라인 플랫폼에서 발행하는 토큰이나 포인트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이 체계는 선택의 유연성과 기술 혁신 촉진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화폐 간 교환 규칙 미비 △보안 위험 △복잡한 규제 및 사기 가능성 등 과제도 안고 있다.

특히 미국은 민간 주도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21세기 디지털 금융 패권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달러, 위기 예측과 재탄생 글로벌 금융 패권 강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대 팬데믹 경제 충격 이후, "달러는 결국 기축통화의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위기론이 힘을 얻었다. 중국의 급부상, 유럽 단일통화 유로화, 러시아·브릭스 국가들의 대체 결제망 구상은 모두 달러 탈피를 향한 길로 읽혔다. 국제무역 비중에서도 위안화와 유로화의 사용량이 늘면서 "탈(脫)달러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언론과 학계에 무수히 제기됐다.

그러나 실제 시장 데이터는 오히려 역설을 드러냈다. '구글 제미나이 2.5 프로'에 따르면, 국제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여전히 60% 이상을 유지했으며, 글로벌 민간 투자자들의 달러 자산 선호도도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많은 논자들이 "달러의 종말"을 예측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난 것. 이것은 미국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디지털 달러 제국'을 구축하는 전략을 편 것이 변곡점이 되었다는 진단이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그리고 블록체인 기반 프로그래머블 머니를 적극 활용해 글로벌 화폐 체제를 다시 짜면서 21세기의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 곧 디지털 달러 제국의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테더(USDT), USD코인(USDC) 등은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니라 미국 금융 인프라를 전 세계로 스며들게 하는 플랫폼이 되었고, 금융 제재 대상국조차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면서 "위기의 달러"는 오히려 "진화된 달러"로 재탄생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 등은 디지털 위안, 디지털 루블, 디지털 유로 기능 강화를 노리고 있으나, 국제적 영향력과 확산력은 아직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이다. BRICS 국가들도 공동 디지털 화폐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지만 내부 이견과 기술 한계로 진척은 더딘 실정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한 관계자는 "AGI가 촉발한 고속 자동화 경제는 초소액·초고빈도 거래를 일상화시키며 기존 은행 시스템을 뛰어넘는 새로운 결제 네트워크를 요구한다"며 "이로인해 달러의 영향력은 오히려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더 공고해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 제재 권한과 세계 경제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적 파장=현금의 종말과 프라이버시 딜레마

클로드(claude opus 4)에 따르면 스웨덴·덴마크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이미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했다. 한국과 중국도 현금 사용 비중이 10% 이하다. 디지털 전환은 편리성을 극대화하지만, 동시에 모든 거래가 흔적을 남기며 개인 데이터가 분석되는 시대를 연다. AI는 개인의 소비 패턴에서 신용도, 정치 성향, 심지어 건강 상태까지 예측할 수 있다.

'화폐가 데이터화된다'는 말은 곧 화폐가 개인 자유와 프라이버시의 경계선을 위협하는 도구로 변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래 금융의 핵심은 AI가 자동화한 금융 활동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국제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국가 간 금융 주권과 민간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협력과 갈등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할 전망이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회장은 "결국, 21세기 금융 패권 경쟁과 화폐 미래는 '누가 AI·데이터를 활용해 신뢰받는 화폐 생태계를 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국가·기업·국제기구·시민사회가 긴밀히 협력하며 새로운 규범을 정립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영란 기자 yrlee31@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