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하지 않은 에로틱한 작품 "오! 사랑이여" [김용우의 미술思]

김용우 평론가 2025. 9. 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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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27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특유의 에로티시즘 화풍
프랑스 젊은 화가에게 영향
“인류 사랑, 남녀 사랑으로 완성”
작품 베토벤 프리즈에 담겨
클림트, 키스, 1907~1908년, 캔버스에 유화, 180×180㎝, 벨베데레 궁, 빈, 오스트리아. [그림 | 위키피디아]

두 연인의 키스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 사랑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년) 작품 '키스'의 내용은 사랑이다. 표현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인류 공통의 주제인 사랑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클림트의 그림 중엔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림들은 가능한 한 에로틱한 표현으로 그려냈다. 대표적인 작품 '유디트'와 '다나에'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의 바탕에 '에로틱한 표현'이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키스'는 한때 나치가 퇴폐적 그림으로 낙인찍은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독과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작품 '키스'는 한번도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를 관광하는 목적 중 하나가 벨베데레 궁전의 '키스'를 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품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클림트는 작품에 금金을 많이 사용했다. 그의 부친이 금 세공업자였기에 어려서부터 금의 질감과 색상에 친숙했을 수 있지만, 그 시절 금은 그림의 주된 재료였다. 특히 고귀하고 화려함을 주기 위해 사용했는데, '키스'의 배경과 의상에도 금을 이용했다.

여성의 발목을 감고 흐르듯 내려오는 금색 넝쿨식물의 줄기와 잎사귀는 뮤즈들의 음악, 예술,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한 신화 속 델포이의 파르나소스 산(Mount Parnassus)의 환희를 이야기한다.

사각형 무늬로 된 남성의 의상은 금과 함께 검정 무채색으로 중후하고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여성 의상의 동심원 금박은 다양한 색상과 함께 어울려 세심한 여성의 심리를 잘 말해준다. 환희의 꽃밭에서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을 클림트는 인간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인물의 섬세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 클림트의 표현은 여성의 손가락에서 절정을 보여준다. 강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절제되고 황홀한 순간을 포착했다. 클림트가 에로틱한 작품을 많이 그렸지만 추하지 않고, 귀하게 보이는 것은 금을 써서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사랑, 그리고 환희를 그렸기 때문이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다. 19세기 산업혁명의 변화가 미술계에도 불었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한 아르누보(Art nouveau) 형식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생명의 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모든 작품에 고루 나타나는 장식적 표현은 그가 상업적 그림, 이를테면 디자인적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르누보 형식을 그리고 그림 재료로 금을 사용한 것도 이같은 장식적 바탕에 시각디자인적 조형이 배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부분 [그림 | 위키피디아]

프랑스에서 인상주의가 미술사의 지평을 열어갈 무렵, 오스트리아에선 늦었지만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디자인의 새로운 조형 실험과 교육의 장을 만들고 있었다. 당시 건축과 공예 디자인이 명확하게 분리되진 않았지만,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같은 훌륭한 바우하우스 교사들의 노력이 새로운 조형의 씨를 뿌리고 있었다.

클림트의 에로티시즘 화풍은 에곤 실레(1890~1918년)를 비롯한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클림트는 새로운 조형을 위한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를 결성하고 전시장 벽면에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라는 작품을 남겼다.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고통 속 인류의 행복에 대한 열망, 둘째, 인간의 고통과 광기狂氣 등 내면의 아픔을 시각화한 적과의 투쟁, 그리고 마지막은 예술을 통한 구원으로 구성돼 있다. '인류의 사랑은 남녀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클림트의 생각이 담긴 이 작품은 사랑과 화합이 인류의 미래임을 이야기하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주제로 삼았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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