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의 피스메이커 띄우기가 찜찜한 이유 [외교안보 문·지·방]
'북미 만나면 뭐든 되겠지' 식 접근 위험
정작 '비핵화'는 빠져 있는 피스메이커론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한국인 300여 명의 미국 구금 사태에 외교가의 온갖 시선이 쏠린 사이 조용하게 이재명 대통령의 '한반도 피스 메이커·페이스 메이커'론 설파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입니다.
정 장관은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를 만났습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꺼내며 "우리 정부도 노력하겠지만 일본도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도록 지지를 아끼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달 22일에는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만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부심,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 재개에 대한 영국 측의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피스 메이커가 돼 달라"며 자신은 이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했습니다. 당장의 남북 대화 복원은 어렵다고 판단, 트럼프의 협상가 기질을 자극해 북미 대화를 열어젖히는 게 먼저라는 판단에 따른 작전이었습니다. 한국 측의 피스 메이커 권유에 트럼프의 입꼬리는 한껏 솟았습니다. 이에 북미 대화에 대한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페이스 메이커'의 길을 닦아 놓겠다는 게 정 장관이 결정한 자신의 소임인 것으로 보입니다.
6년 전 '하노이 노딜' 또 없다 판단할 근거는 무엇?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후보자 시절 정 장관은 2019년 북미 정상 간 협상이 결렬된 이른바 '하노이 노딜'을 언급하며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책임이 무겁다"고 말했다. 인사 청문회에서도 그는 "2019년 하노이에서 네오콘의 훼방이 없었다면 지금의 남북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덧없는 생각을 해본다"고 언급했습니다. 하노이 협상 때 북한이 내놓은 비핵화 조치 수준에 회의적 입장을 내놨던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협상 개입이 합의 불발로 이어졌다는 게 정 장관의 지론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대북 협상이 네오콘 탓에 어그러진 것이라면,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론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의회·국무부·국방부·주류 언론 할 것 없이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을 이제 핵보유국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비핵화 회의론이 커지지만, 수십 년 이어진 비핵화 의제를 내려놓을 조짐은 없습니다.
또한 당시 네오콘이 있었다면 지금은 트럼프 극렬 지지 세력인 마가(MAGA)가 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현실화할 것이라고 믿는 그들은 미국의 대외 개입을 극렬히 반대합니다. 네오콘도 미국이고 마가도 미국입니다. 6년 전 트럼프가 북미 협상에 대한 국내외 비판 여론에 밀려 합의 도출을 포기했듯 2기 행정부에서도 북한과의 협상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다면 노딜 사태가 반복될 공산은 여전하다는 얘깁니다. 네오콘 탓에 깨진 협상이 이제는 될 것이라는 정 장관의 기대에는 "근거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평화 추동하면서 정작 비핵화는 함구

우려는 또 있습니다. 대북 대화의 목적, 즉 비핵화 문제를 북미에만 내맡긴 듯한 태도입니다. 취임 뒤 그의 정책 메시지는 남북 대화 복원 필요성, 대북 제재 무용론, 북미 협상을 통한 대화 정국 마련 등으로 요약됩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그의 메시지에 정작 '비핵화'는 없습니다.
익명의 전직 고위 외교관은 "피스 메이커론에 피스가 무엇인지가 빠져 있다. 북미 정상이 만나기만 하면 그게 한반도 평화냐"는 물음입니다.
만약 트럼프가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는 김정은을 만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빠진 북미관계 개선 합의를 도출한다면? 또는 김정은이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 개발 동결을 약속한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여전히 노출돼 있는 우리가 "피스 메이커·페이스 메이커 전략이 먹혀들었다"며 축포를 쏠 수 있는 걸까요?
마냥 북미 협상을 추종할 게 아니라, 그 협상 속에 비핵화에 대한 우리 입장과 남북관계 개선 의제를 촘촘히 반영하는 게 먼저여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 정국을 불러냈다가 결국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한 인사는 "북미가 만나면 어떤 식으로든 결판은 날 것이라는 기대가 지금 와서 보니 참 위험한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정 장관의 북미 대화 지지 당부에 크룩스 영국대사는 "(그런 노력들이) 비핵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미즈시마 일본대사도 "일본은 (일본인) 납치, 핵, 미사일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하고,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한다는 입장"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주변국들의 손가락이 모두 비핵화를 가리키는데 정작 정 장관 입에선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평화 정국을 다시 불러내려는데, 무엇이 한반도 평화인지도 모른 채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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