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희 대사의 시사칼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렇게 무너지는가

지난 9월 12일 대법원은 전국법원장 회의를 열고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므로 개선 논의에 있어 사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전국법원장 회의가 3년 6개월 만에 열린 것도 이례적이지만, 특정 정부 정책이나 입법 활동에 대응해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는 사법부 스스로 현 정국을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그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바탕으로 독주한 사례는 무수하다. 그중에서도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와 대법관 정원 증원 강행 시 이는 헌정 질서의 근간인 사법 독립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특히 민주당 의원 115명이 공동 발의한 내란특별법은 내란 사건의 1·2심을 특별재판부가 전담하도록 하고, 국회·법원·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9인 위원회가 재판부 후보를 정하는 구조를 담고 있다. 나아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9명은 직무에서 배제하겠다는 조항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사법권 독립(101조)과 법관 임명 절차(104조)를 위반한 것이어서 대법원과 학계에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가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사법이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것"이라며 "입법부를 통한 국민의 주권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사법부를 입법부의 하위 기관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삼권분립을 부인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안 또한 같은 맥락이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제약하고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를 넓히는 방식으로 결국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를 심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입법 폭주는 일상화되었다. 야당과 협의조차 없는 일방적 법률 통과가 일상화되었고, 심지어 방송통신위원장 한 명을 해임하기 위하여 조직의 이름만 바꾸는 법률을 일방 통과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당은 위에서 언급한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사법개혁 입법을 비롯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가짜뉴스 근절법', 수사·기소 분리를 담은 검찰개혁법, 3대 특검 개정안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전광석화처럼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절차적 합법성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직권을 남용한 과잉 조치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내란죄에 해당할지 여부는 조용히 사법부의 심판을 기다려 봐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내란죄 성립을 기정 사실화하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내란특별재판부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도 정식 재판 결과에 대한 우려때문이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담당 판사를 겁박하고, 하물며 대법원장 사퇴까지 강요하는 자들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는가.
이러한 정치행태를 보면 자연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합법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잡은 뒤 의회에서 '수권법'을 통과시켜 전권을 장악한 나치의 히틀러, 그리고 집권 후 대법관 자격 요건을 변경하여 대법원장을 축출하고, 헌법재판관 수를 늘리는가 하면 언론과 선관위를 장악해 독재 체제를 완성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다. '국민의 주권 의지'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자유민주주의를 잠식하는 과정은 언제나 합법의 탈을 쓴 채 진행되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무겁다. 미국 보스턴 칼리지의 헤더 콕스 리처드슨 교수는 '깨어나는 민주주의(Democracy Awakening)'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는 총부리보다 투표함에서 더 빈번히 죽는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정치적 자유는 절제된 정부에서만 존재하며, 사법권이 입법·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경우 자유는 있을 수 없다"고 갈파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는 없다. 정부·여당이 다수 의석을 등에 업고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린다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평범함 속에서 자란다"고 했다. 무관심과 침묵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길이다.
장동희 전 주핀란드 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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