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의 깜짝 이적, 애틀랜타행 막전막후
유격수 절대 취약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김하성에 정성
(시사저널=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지난겨울, 탬파베이가 김하성에게 준 2년 2900만 달러 계약은 파격 그 자체였다. 탬파베이는 어깨 수술을 받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김하성을 팀 내 최고 연봉 선수로 만들었다. 구단 살림이 넉넉하지도 않은 탬파베이는 도대체 왜 그런 베팅을 했을까.
아마 이랬을 것이다. 수술을 집도한 닐 엘라트라체의 낙관적인 입장을 믿는다면, 김하성의 결장은 길지 않을 것이고, 돌아와서도 잘할 것이라 믿은 듯하다. 김하성의 활약은 팀 성적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고, 만약 포스트시즌 진출이 힘들어지면 김하성을 다른 팀으로 넘기고 유망주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하지만 청사진은 청사진에 그쳤다. 집도의 말과 다르게, 김하성은 올해 4월말이 아닌 7월초에야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오른쪽 어깨를 다친 유격수였기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팀 성적은 나빠졌고, 김하성은 트레이드 매물이 됐다.
김하성이 돌아온 날짜는 7월5일(이하 한국시간)로, 트레이드 마감일인 8월1일까지 한 달이 남아있었다. 그나마 탬파베이로선 김하성이 이 한 달 동안 그야말로 대활약을 펼쳐 인기 상품이 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김하성은 복귀 후에도 작은 부상이 세 번이나 있었고, 24경기에서 타율 0.214, 2홈런 5타점에 그쳤다. 관심이 있다고 했던 뉴욕 양키스도 김하성 대신 다른 선수를 데려갔다. 트레이드 마감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팀 옮기자마자 '펄펄'…부동의 유격수 굳건
하지만 한 달 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김하성을 데려가겠다는 팀이 나타난 것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탬파베이에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대신, 잔여 연봉 1800만 달러를 모두 떠안았다.
김하성이 애틀랜타로 이동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A팀이 B선수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시하면(웨이버), C팀은 신청서를 내고 데려갈 수 있다(클레임). A팀은 반대급부를 받지 못하지만 B선수의 남은 연봉을 털어낼 수 있다. 신청 팀이 복수일 경우 성적이 나쁜 팀이 우선권을 가진다. 신청 팀이 없으면 A팀은 공시를 철회하고, B선수를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애틀랜타는 탬파베이에 연락해 김하성을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탬파베이는 김하성을 공시했고, 애틀랜타보다 성적이 나쁜 5팀은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김하성이 기록한 2홈런 5타점에 팀 전체 연봉의 11%를 쓴 탬파베이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지만, 1800만 달러를 아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준비된 유망주가 있었기 때문에 내년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손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탬파베이의 베팅은 대실패로 끝났다. 궁금한 건 김하성을 데려간 애틀랜타였다.
애틀랜타는 2022년 시즌을 마치고 부동의 유격수인 댄스비 스완슨을 잃었다. 몸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스완슨은 1억77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스완슨은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골드글러브 수상자이자, 홈런을 20개 이상 칠 수 있는 유격수였다.
스완슨의 공백은 올랜도 아르시아가 메웠다. 스완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연봉이 200만 달러에 불과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아르시아는 지난해부터 부진하더니 올해 바닥을 찍었고, 결국 5월이 지나기 전에 방출됐다. 새로운 유격수 닉 앨런이 최고의 수비를 했지만, 부족한 타격 능력은 아르시아보다도 심각했다.
애틀랜타로 이적한 김하성은 두 번째 경기에서 결승 홈런을 때려냈는데, 이는 애틀랜타 유격수가 시즌 시작 후 140경기 만에 기록한 첫 홈런이었다. 그 전까지 유격수가 홈런을 치지 못한 팀은 30구단 중 애틀랜타가 유일했다. 애틀랜타는 제대로 된 유격수가 간절했다.
애틀랜타는 같은 내셔널리그 팀이기 때문에 김하성의 플레이를 볼 기회가 더 많았다. 애틀랜타의 브라이언 스니커 감독은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에서 뛰었을 때, 나는 그를 많이 좋아했다(I very much so liked him). 그는 좋은 선수고, 정말 좋은 영입이다. 좋은 유격수를 찾는 건 쉽지 않는데, 김하성을 얻어서 기쁘다"고 했다. 애틀랜타는 지난겨울에도 김하성 영입을 시도했지만, 아르시아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있었고, 탬파베이보다 좋은 제안을 하지 못했다.
몸 아끼지 않는 플레이, 감독들이 선호
애틀랜타는 김하성의 홈 개막전에 NFL(미국 미식축구리그) 애틀랜타 팰컨스의 한국인 키커인 구영회를 초청했다. 애틀랜타 광역권에 거주하는 한인은 약 10만 명으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 이어 워싱턴DC 광역권과 함께 세 번째로 많다. 애틀랜타는 한국인 마케팅이 가능한 구단이다.
애틀랜타는 시작부터 정성을 들였다. 보통 이적이 발표되면 선수는 알아서 비행기를 타고 새 구단에 합류한다. LA 다저스 김혜성은 재활 경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환승 비행기를 놓쳐 공항 바닥에서 15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전용기를 탬파로 보내, 팀이 경기를 하고 있는 장소인 시카고로 모셔왔다.
애틀랜타는 김하성에게 탬파베이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다. 탬파베이는 낡은 인조잔디 구장을 쓰는 반면, 애틀랜타는 2017년에 지어진 최신식 구장을 자랑한다. 탬파베이가 비인기 팀인 반면 그레그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사이영상 트리오가 1990년대를 이끌었던 애틀랜타는 인기 있는 구단이다(관중 동원 8위).
김하성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탬파베이는 김하성을 유망주기용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했다. 유망주의 준비가 끝나면 다른 팀으로 넘길 생각이었다. 또한 팀에 수비를 아주 잘하는 또 다른 유격수가 있어, 그가 유격수로 출전하는 날엔 김하성을 2루수로 쓰는 등 포지션을 계속 바꿨다. 반면 애틀랜타는 준비되고 있는 유망주도 없고, 김하성 말고는 유격수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을 요구할 일이 없다.
탬파베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도전과 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애틀랜타는 2021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계속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애틀랜타는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에게 장기 계약을 잘 주기로 유명하다. 빨리 잡으면 더 싸게 계약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하성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김하성은 여전히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시즌 마무리를 잘하고 FA 전망이 낙관적이면, 올겨울에 당장 재도전할 수 있다. 무리라고 판단되면 내년을 마치고 도전해도 된다. 애틀랜타가 제시한 연장 계약이 마음에 들면 애틀랜타에 남을 수도 있다.
탬파베이가 김하성을 무리해서 데려간 것, 복귀 후 특별한 활약을 못 했음에도 애틀랜타가 데려간 것은, 지금까지 김하성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김하성은 홈런을 펑펑 날리는 선수는 아니지만, 감독이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팀을 결속시킨다.
이제는 어깨 수술 이후에도 뛰어난 수비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좋은 계약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며, 명문 구단인 애틀랜타에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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