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프의 파이터 기질, 홍명보號에 새 에너지 불어넣어”
미국·멕시코전에서 적극적 기동력으로 중원 장악 활약
(시사저널=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9월10일. 미국 내슈빌의 지오다스파크에서 열린 한국과 멕시코의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 친선전. 경기 시작 전에 양국 국가가 차례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한국의 스타팅 멤버 11명 중 이국적인 외모의 한 선수가 열심히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이번 9월 A매치 친선전부터 홍명보호에 합류한 옌스 카스트로프였다. 카스트로프는 첫 대표팀 발탁임에도 애국가를 끝까지 따라 불렀다. 나흘 전 열린 미국전 때도 벤치에서 같은 모습을 보였다.
카스트로프는 남자축구 A대표팀 최초로 해외에서 출생한 혼혈 선수다. 2003년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달 소속 축구협회를 독일축구협회에서 대한축구협회로 변경하는 행정 절차를 밟았다. 홍명보 감독은 화답하듯 즉각 그를 A대표팀에 선발했다. 과거 장대일과 강수일이 혼혈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그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외모만 다른 한국인이었다. 해외 출생 선수로는 아버지 차범근 감독이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독일에서 태어난 차두리가 있지만 그는 순수 한국인이다.

독일협회 "대표팀 후보였는데 한국행 아쉽다"
고향인 뒤셀도르프에서 축구를 시작한 카스트로프는 FC쾰른 유스팀에서 맹활약했고, 독일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쳤다. 이번 여름 이적료 2150억원을 기록하며 레버쿠젠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동갑내기 미드필더 플로리안 비르츠의 중원 파트너로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당초 유럽 21세 이하 선수권 참가도 예정됐지만 지난 4월 입은 부상으로 좌절된 상황이었다.
독일 2부 리그 뉘른베르크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뛴 그는 이번 여름 1부 리그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했다. 성인 레벨에서도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끝났고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는 시점에 대표팀 커리어를 한국으로 옮겨간 것이다. 독일축구협회는 소속 협회 변경 행정 절차 과정에서 "카스트로프는 우리가 잠재적인 대표팀 발탁 후보로 관찰하고 있던 선수였다. 이번 결정은 아쉽지만 앞날을 응원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카스트로프는 독일 출신인 위르겐 클린스만 전 A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관심을 받아왔다. 당시 골키퍼 코치였던 안드레아스 쾨프케 코치가 뉘른베르크에서 선수로 맹활약했고, 자신의 아들도 카스트로프의 팀 동료로 뉘른베르크에서 활동 중이었다. 긍정적인 교감을 나누던 찰나에 클린스만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며 프로젝트는 추진력을 잃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유럽 출장에 나선 홍명보 감독이 카스트로프 관찰에 나섰고, 코치진을 보내 선수 자신의 의사를 재확인했다.
카스트로프는 아버지의 나라인 독일 대신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이중국적자에게 부과되는 병역 문제에 대해 병무청이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본인이 모두 감내하기로 결정하며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았다. 서울대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왔다가 독일인과 결혼한 어머니 안수연씨는 3월 대사관을 통해 늦은 출생신고를 하며 국적을 취득했다. 카스트로프는 지난 5월에 한국 여권을 발급받았다. 소속 축구협회 변경 신청은 가장 마지막 절차였던 것이다.
안수연씨는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한국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었다. 어려서부터 세 아들에게 너희는 한국인임을 강조했다. 나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내 한국 성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프는 "내 마음이 한국을 택하라고 얘기했다. 그 결정에 아버지는 잠깐 충격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친척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 내 축구 스타일도 한국의 정신력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에 있음을 강조했다.
홍명보 감독은 카스트로프를 대표팀에 발탁하며 그의 경쟁력으로 파이터 기질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현재 우리 대표팀의 미드필더들에게 없는 스타일을 지녔다. 굉장히 적극적인 파이터다"라며 그의 투쟁심, 기동력, 적극성을 중원의 새 에너지로 불어넣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후 스리백에 기반한 적극적인 볼 쟁탈전 축구를 예고한 상황에서 카스트로프의 가세는 큰 힘이 됐다.
순혈주의 깨며 새 발전 동력 되어주는 혼혈 선수들
미국에서 열린 미국, 멕시코와의 9월 A매치 친선전을 위해 날아온 카스트로프는 동료들과 빠르게 적응했다. 냉정하게 한국어 실력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안수연씨는 "첫째와 셋째는 내가 육아를 해서 한국어를 꽤 한다. 둘째인 옌스는 내가 일을 하느라 남편이 주로 육아를 하다 보니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지만 사실 소통은 영어와 독일어로 충분하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이재성, 백승호가 독일어 능력이 수준급이고 영어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 대다수가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최근 우리 대표팀의 분위기다. 주장 손흥민은 "다들 옌스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자"라고 말했다.
자신을 환영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카스트로프는 빠르게 녹아들었다. 미국전에서는 후반 18분 교체 투입됐고, 멕시코전에는 선발 출전해 전반전을 모두 소화했다. 멕시코전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기대한 적극적인 기동력을 앞세워 멕시코 미드필더들과 치열한 싸움을 펼쳤다. 전반 10분 적극적인 압박으로 공을 뺏은 뒤 순식간에 전진했고, 그가 시발점이 된 공격이 배준호의 날카로운 슈팅으로까지 연결됐다. 전반에만 차단 3회, 공격 지역 패스 8회 등 여러 지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
첫 선발 출전 후 인터뷰에서 카스트로프는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A매치에 뛰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는 "애국가는 집에서 배웠다. 형제들에게 전해 들으니 어머니가 그걸 보고 우셨다고 한다. 대표팀에 다시 오는 것이 다음 목표다. 10월에 브라질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한국에서 뛰게 된다면 상당히 기쁠 것이다"고 말했다. 대표팀 내부에서도 경기 내외적으로 카스트로프가 보여준 노력과 퍼포먼스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국 스포츠는 순혈주의가 깨지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중심으로 한 혼혈 선수들이 종목을 막론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독일 라인-루트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국 육상 계주 첫 금메달을 이끈 나마디 조엘진, 연령별 농구 대표팀 주장을 맡은 에디 다니엘, 여자농구 국가대표 발탁을 고려 중인 미국 태생의 키아나 스미스 등이 대표적이다. 축구의 경우 과거 귀화 선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을 정도로 순혈주의가 강경했지만, 이미 여자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케이시 유진 페어에 이어 옌스 카스트로프까지의 그 벽을 넘어선 인재들이 등장 중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다르빗슈 유(야구), 오사카 나오미(테니스), 하치무라 루이(농구)를 앞세워 각 종목에서 세계 정상에 도전 중이다. 축구도 골키퍼 스즈키 자이온, 측면 수비수 모치즈키 헨리 히로키, 미드필더 후지타 조엘 치마 등을 앞세워 취약 포지션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초중고 재학생의 3.8%가 다문화가정 자녀인 현실에서 이미 10년 이상 앞서 혼혈 선수를 주류로 받아들인 일본처럼 한국 역시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카스트로프의 경우처럼 병역 등 자신이 한국 국적을 선택하며 감내해야 할 불이익까지 짊어질 정도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진정성 있게 답하는지도 중요한 요소다. 단지 종목의 경쟁력 강화와 성적만을 위해 정체성을 뒤로한 마구잡이식 귀화 선수 활용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스포츠를 넘어 한국 사회의 인식의 주요한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선택이니만큼 고민과 검증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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