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에 화해정책 펼친 서독…‘정보의 끈’은 되레 당겼다
[제3전선, 정보전쟁] 대북 정보전 자제 허와 실
![2015년 9월 25일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적 목적의 사이버 정보전 중단을 합의했다. 단, 국가안보와 관련된 순수 정보활동은 제외했다. [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3/joongangsunday/20250913001247373lwfo.jpg)
두 철학자의 상반된 정보관이 한반도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대북 안보위협 탐지를 위해 우리 정보역량의 상당 부분을 북한에 투입하면서도, 신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보전을 자제하거나 축소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수·진보 모두 그래왔다. 남북평화라는 큰 목표를 위한 것인 만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소한 정책적으로는 그렇다.
![국방부는 지난달 4일 “군은 이날부터 대북확성기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군 관계자들이 대북확성기 철거 작업을 하는 모습. [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3/joongangsunday/20250913001248674ocbm.jpg)
이처럼 대북 정보전 자제는 신뢰와 평화 구축이라는 정책 목표 뒤에, 정보력 약화와 안보위기 초래라는 다른 얼굴도 숨어 있다. 국제사례를 몇 개 들춰보면 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보전 자제를 통한 신뢰 분위기 조성 노력은 냉전 때부터 줄곧 있어왔다. 1970년대 데탕트 시기에는 신뢰 구축과 긴장 완화 논의 과정에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이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과도한 정보전을 자제했다. 그래서 미국은 당시 정보전 축소 신호를 자주 보냈다. 1980년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규모 핵전쟁 방어훈련으로 소련이 심리적 불안을 느끼자, 서방은 또다시 공격적 정보전을 일시 자제했다. 1990년대에는 미·중도 사이버 정보전 자제를 논의했다. 당시 모락모락 피어나던 양국 신뢰 분위기 조성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또한 이번 이재명 정부의 대북방송 중단도 같은 맥락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돌파구’로 평가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실제로는 대부분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기대 효과보다 역효과가 더 커, 신뢰 구축은 고사하고 정보실패나 정보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미국의 사이버 정보전 자제가 이를 말해 준다.
미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이후 중국과 새로운 신뢰관계 구축 일환으로 사이버 정보전 자제를 추진했다. 그래서 2015년 시진핑 방미 때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적 목적의 사이버 정보전’을 상호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답게 인류역사상 최초의 정보전 자제 합의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후 중국은 민간 해커를 앞세워 미국 기업·대학·정부기관 해킹을 오히려 확대했다. 미국의 사이버 정보전 자제가 오히려 중국의 사이버 정보전 활동 공간을 확대해 주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정부가 화해·평화 정책에 집착할 경우 정보기관은 이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정보활동을 축소하는 문제점도 나타났다. 1993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피의 악순환을 끊고 영구 평화정착을 위해 역사적인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은 이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심지어 PLO와 정보공유까지 모색했다. 전례 없는 평화 훈풍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테러와 같은 도발 신호를 과소평가해 예방조치가 늦어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내부진단을 통해 정부의 강한 평화정착 의지가 정보 긴장감 이완을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정보의 자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미국은 전쟁을 통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한다는 정책 하에 이라크가 불법적으로 대량살상무기(WMD)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미 정보당국은 내부적으로 이라크의 WMD 보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도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 미 정부의 전쟁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쟁 후 조사 결과 이라크의 WMD 보유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정보과장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국제적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 의지가 강하게 강조되다 보면 정보가 스스로 위축되는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 이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 국가는 정보와 정책의 분업적 역할을 강조한다. 2009년 미 오바마 정부가 러시아 등 적대국과 새로운 화해정책(리셋외교)을 모색하면서 이를 구현했다. 적대국들이 미국의 화해정책에 진정성을 갖고 호응하는지, 아니면 화해 손짓을 악용하지는 않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오히려 정보전을 강화했다. 화해정책 중에도 미 연방수사국(FBI)이 2010년 대규모 러시아 스파이망을 적발해 추방한 것은 이 일환이다. 과거 서독도 동독과 화해정책(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보활동을 오히려 강화했다. 동독이 화해정책을 악용하거나 예상치 못한 방해 공작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정책과 정보의 분업적 역할은 이론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정책은 공개된 길을 가고, 정보는 그 길 위의 위험을 점검해 미리 리스크를 제거하거나, 우회로를 마련해 정책목표가 무난히 달성되도록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책·정보 연계이론(Policy·Intelligence Nexus) 또는 전략적 정보 활용 이론(Strategic Intelligence Theory)이라고 한다. 현대 정보이론의 요체다.
현대 정보이론은 칸트의 정보관도 비판적으로 본다. 정보가 신뢰 구축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신뢰구축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전 시미·소 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이 그 예다. 양국은 신뢰구축 일환으로 SALT 협정을 체결하면서 상대의 정보활동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해주었다. 협정이행이 보장되지 않으면 신뢰 구축이 물거품 되므로, 상대가 협정을 이행하는지 감시할 수 있도록 정보전을 법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정보가 신뢰 구축의 수단이 된 대표적 예다.
이처럼 오늘날 정보 운용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정보전 전략이 고도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대북 정보전 자제도 이 일환이다. 그러나 정보전이 정책의 하위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자칫 정보의 자율성을 해쳐 정보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국제 사례를 통해 잘 보았다. 대북 정보전 자제를 신중히 다루어야 하는 이유다.
대북 정보활동 위축되지 않게 해야
물론 심리전 방송 중단처럼 특정 분야 정보전 자제는 대북 정보전의 극히 일부분이므로 큰 문제될 것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보내는 암묵적 신호는 자칫 대북 정보전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상부로부터 정보활동 방향이 암묵적으로 정해지면 요원들은 인사 불이익 등을 우려해 정상적인 정보활동도 스스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조화되면 정보력 약화는 불문가지다. 정보조직론의 기본이다.
물론 안보위기 관리 상 대북 정보전을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대북 정보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와 우리 사회 분열 조장은 물론이고 최근 심상찮은 북·중·러 밀착, 북한의 한·미 관계 이간 가능성 등 세밀히 살펴야 할 정보현안이 한둘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정보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사소한 신호도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미국의 리셋정책이나 서독의 동방정책처럼 대북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정보활동을 강화한 사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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