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미뤄졌을 때 빨리 수용소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
"갑자기 체포돼… B-1 비자 말해도 안 통해"
"당황했지만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 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이 건물(수용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다가 풀려나 12일 한국 땅을 밟은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직원 이모(58)씨는 이틀 전 갑자기 귀국이 연기됐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올해 2월 단기상용 비자인 B-1을 발급받아 미국 조지아주로 출국했으며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설비 설치 관리 업무를 맡아왔다.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마스크를 쓴 이씨는 이날 오후 3시 24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버스에 올라 가족들이 기다리는 장기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같은 시간 이씨의 아내 박모(56)씨는 장기주차장 4층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한국인 근로자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언제 오노… 안 보인다"고 초조하게 혼잣말을 했다. 마침내 오후 4시 17분, 엘리베이터 쪽에서 남편 이씨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오자 박씨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아이고, 마음고생 많이 했데이"라며 우는 아내의 어깨를 한참 토닥였다. 이어 이씨는 함께 구금됐던 동료들과 악수를 나눈 뒤 아내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해당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잠시 탑승해 이씨로부터 8일간의 구금 생활에 대해 들었다.
이씨에 따르면 체포는 아무 예고도 없이 이뤄졌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허리에 총을 찬 채 공장에 들이닥쳐 "이민국에서 나왔으니 질서 있게 따라 달라"고 외쳤다. 즉시 작업을 중단한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버스로 연행됐다. 수갑은 버스에 타기 직전 채워졌다고 한다. "B-1 비자를 소지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공장 시설 내에 있었기 때문에 비자를 갖고 있어도 조사는 받아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체포 두 시간 만에 이씨 등 동료들은 포크스턴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등 모든 소지품을 하나하나 반납했다. 수용복으로 갈아입었고 한 명씩 번호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용자들에게 주어지는 '외국인 번호'였다. 방은 2인 1실이었고 따로 격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해진 취침 시간과 인원 점검 시간을 제외하면 마당을 거닐며 다른 근로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변호사나 교도관이 전해준 소식을 서로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얼떨떨했지만 이씨는 무섭지는 않았다. B-1 비자로 합법적으로 입국했기 때문에 결국 잘 해결될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는 "다음 날 정부가 신속 대응팀을 꾸려 대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딱히 강압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냥 황당한 기분이었어요. 그쪽에서도 빨리 끝내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본인들도 잘못 잡았다는 걸 인식했는지 B-1 비자는 일단 취소했지만 다음 비자를 신청할 때는 아무 제재 없이 내주겠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일 석방돼 당일 전세기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가 '미국 측 사정'을 이유로 갑자기 연기됐을 땐 심적 고통이 적잖았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그땐 진짜 정말 빨리 끝내고 이 건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감자 대부분이 같은 마음이었다"고 강조했다.
수용시설은 열악한 편이었지만 위생 상태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씨는 "침대 등이 열악하다면 열악했다"며 "욕실, 화장실이 답답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일부 보도처럼 벌레가 나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는 매 끼니 미국식으로 제공됐다고 한다.
"다시 미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아무 문제가 없는 E-1(상사 주재원 비자)이나 L-1(일반 주재원 비자) 비자로 나가는 게 제일 안전할 것 같다"고만 답할 뿐 말을 아끼려는 모습이었다. 이어 "일단 지금은 가족 곁에 있고 싶다"고 덧붙였다.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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