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추운 사람들을 위하여 [신이인의 시(詩)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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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강성은 시인의 시집 '슬로우 슬로우'를 읽으며 시인은 겨울을 더 좋아하는 편일까, 잠시 생각했다.
시집에 엷은 눈처럼 잔잔히 깔린 슬픔은 아마도 시인이 겨울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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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오늘밤 이 도시에서/ 가출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늘밤 이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늘밤 이 도시에서/ 집이 없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네 집으로 가')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어렸을 때는 이것이 한국의 자랑거리인 줄로 알았다. 언제부턴가 여름은 지나치게 덥고 겨울은 필요 이상으로 춥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여름, 겨울을 꼽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채도 높은 날씨, 가벼운 옷차림, 야외 활동을 즐기는 모양이다. 반대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공기 냄새, 포근한 옷감의 감촉,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를 애호하는 듯하다. 만일 그들이 시를 쓴다면 이러한 취향은 더욱 숨길 수가 없다. 각 계절에 어울리는 심상들이 자연히 작품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강성은 시인의 시집 '슬로우 슬로우'를 읽으며 시인은 겨울을 더 좋아하는 편일까, 잠시 생각했다. 일부 전작들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도 화자의 시선은 유난히 겨울에 머물러 있다.

"따뜻한 음식을 먹다가/ 고장 난 기계처럼/ 뼈만 남은 채로/ 맞은편 거리를 본다// 약국 앞 줄지어 서 있는/ 파리한 사람들/ 모두 울음이 쏟아지기 직전의 뒷모습// 아직도 거기/ 있습니까"('낮잠')
8월 말 나온 '슬로우 슬로우'는 여름의 막바지인 출간일이 무색하도록 춥다. 눈 쌓인 밤을 연상케 하는 표지를 열자 '아궁이의 굶은 불', '얼음장 같은 이불' 등의 이미지가 눈에 띈다. 시인은 기민하게 감각한 겨울의 언어를 빌려와 자신이 본 세계를 설명한다. 그에게 세계는 고독한 유년에서부터 폭격이 일어나는 가자 지구로까지 이어져 있다. 그곳을 메우는 건 집이 없는 사람,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과 그를 목격하고도 아무 일 없다 말하는 사람, 자꾸 잃어버리는 사람, 1999년으로 가는 사람, 유령인지 진짜인지 모를 사람들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꺼내기 망설여진다.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잊는다. 이맘때 즈음 여름이 끝나가고 겨울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도 진부해서 시시하겠으나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세상 한편에서는 영원한 겨울이 벌어지고 있다. 시인은 그곳의 목격자로서 증언한다. 비현실적으로 현실을 전한다. 언뜻 염세적으로 표현하다가도 어떻게든 사랑을 말하려고 한다. 시집에 엷은 눈처럼 잔잔히 깔린 슬픔은 아마도 시인이 겨울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린 장갑과 잃어버린 사람이 재가 된 겨울을 지나/ 눈 쓸고 보일러 켜고 수면양말 신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이 패러다이스를 우울한 영화처럼/ 넷플릭스를 본다"('F/W')
신이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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