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쓰고 신발 벗고 탔다는데…전차, 58년만에 돌아온다 [세상&플러스]
70년간 서울 시민의 발로 활약
1968년 동대문서 마지막 운행
서울 위례트램 이달 예비주행시험
순환선 전선로 설치 연말 마무리
5.4㎞ 구간 2026년 하반기 개통
![위례선을 운행하는 트램 차량 [서울시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2/ned/20250912112552994nwsc.jpg)
최근 찾은 위례중앙광장 부근 107번 트램(전차) 정거장. 작업자들이 노선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었다. 전차 노선은 아파트와 상가 사이로 길게 뻗어 나갔다. 건물과 선로 사이의 거리는 3m 정도. 레일은 기존의 열차와 같은 돌출형이 아닌 도로에 홈을 파 설치됐다. 임산부, 유모차·휠체어 이용자 등 교통약자가 별도의 장비 없이 전차를 탈 수 있게 한 것이다. 트램 건설 공사 관리를 맡은 동명기술공단 관계자는 “상가를 지나는 위례선은 트렌지몰 구간으로 트램 노선의 ‘랜드마크’ 구간이 될 것”이라며 “토목 공사는 거의 완료하고 궤도와 신호 통신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58년 전 운행을 중단했던 전차가 서울을 다시 달린다. ‘위례선 트램’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다. 이달에는 ‘예비주행시험(5000㎞)’이 진행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오송시험선 구간에서다. 이후에는 위례선 본선에서 종합시험운행을 실시하고, 국토교통부 최종 승인을 받으면 승객을 태우고 운행할 수 있다.
자동차 도로인 위례순환선을 가로지르는 선로는 올해 말 목표로 추진 중인 종합시험운행 전 모두 설치된다. 교통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위례순환선 구간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과, 같은 도로를 건너는 전차, 이를 위해 자동차가 줄지어 기다리는 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주변 주민들의 기대감도 있다. 위례중앙광장 인근 한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모(22) 씨는 “위례중앙광장 인근 주민들의 교통 편익이 개선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 이곳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는 오모(60) 씨는 “일단 공사가 빨리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며 “위례선 트램으로 유동인구가 늘어 상권이 활성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위례선 트램은 마천역(5호선)에서 출발, 복정역(8호선·수인분당선)과 남위례역(8호선)을 연결한다. 총 12량을 운영하며 이 중 10량이 운행에 투입된다. 2량은 예비 차량이다. 마천역 인근 차량기지를 출발한 트램은 장지천·장곡천을 거쳐 복정역까지 총 5.4㎞ 12개의 정류소를 통과하며, 시속 15~20㎞로 달린다.
트램은 배터리를 차량 상부에 탑재하여 전력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전선은 필요없다. 매립형 레일 위를 주행해 소음도 최소화된다. 특히 레이더와 카메라 센서가 탑재된 ‘전방 충돌경보 장치’도 적용됐다. 장애물 감지 시 기관사에게 조기경보를 울린다. 반응이 없을 경우 긴급 제동장치가 작동한다.
트램 1대당 객차는 5칸이다. 길이는 총 33.9m으로 240명이 탈 수 있다. 버스 4대 분량의 수송용량이다. 총 10대의 열차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5분, 평시에는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특히 107번 정거장은 향후 위례신도시와 신사역을 연결하는 위례신사선의 환승정거장으로 이용된다.
![전차 도입 초창기 갓을 쓰고 전차를 타는 사람들 [한국전력 전기박물관 홈페이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2/ned/20250912112553232tjqj.png)
전차, 구한말 고종 황제 의지로 도입
전차는 대한제국 시대인 1899년 5월 4일 처음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전차는 ‘전기철도’ ‘전기거’라고 불렸다. 황실용 전차와 일반용 전차로 구분됐다. 일반용 전차는 8명의 일등석 승객과 25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1887년부터 국내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888년 미국에서도 전차가 시험운행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차 도입은 세계적으로 봐도 이른 편이었다. 전차는 1915년 부산, 1923년 평양에서도 달리기 시작됐다.
전차 도입 초기, 해프닝도 잇따랐다. 다음 사례들은 1899년 한성전기(현 한국전력)의 기술자로 한국을 찾았던 J. H. 모리스가 전차 도입 후 전한 풍경들이다.
“나는 전차 시간표 도입 당시 문제에 부딪혔다. 시계의 이용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종업원은 시계 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시계 보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야학을 열었고, 23명이 알아들었을 때부터 전차를 시간별로 운전했다.”
“다른 문제는 전차 탑승 시 승객의 신발 문제였다. 그들은 신발을 (열차 탈 때 벗은 뒤) 승강대에 걸쳐 놓았다. 급커브길을 돌때 신발이 떨어지는 상황이 생겼다.”
“더운 여름밤에 사람들은 선로 위에 눕는 습관이 생겼다. 회사는 그에 대한 경고서를 첨부해 보냈다. 또 운전사에게 야간 운전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선로를 건너는 것에 대한 감시도 강화했다. 밤에 용산 종점에서 정차하는 차는 선로위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치기도 했다.”
교통사고도 있었다. 1899년 5월 26일 6세의 어린아이가 전차에 치어 사망하자, 아이의 아버지와 시민들이 도끼로 전차를 부수고 불태웠다. 황성신문은 그해 5월 28일 보도에서 “6~7세 된 남자 어린이가 포전 골목 어귀에서 전차에 부딪혀 생명을 잃은 지라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단속치 않았던 것은 뉘우치지 않고 애꿎은 전차를 원망해 도끼를 들고 전차 지붕을 맹렬하게 찍으니 거리위의 우준한 무리들이 일시에 작당해 한차는 불사르고 한 차는 부수며 말하기를 하늘이 가문것은 전차의 탓이라 하고 일제히 전기창을 부수러 가거늘 경사가 순검을 파견해 그 야단하는 자를 해산케 하였다더라”고 전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콜리어스 위클리(Collier’s Weekly) 역시 같은 해 7월 22일 이 사건을 ‘코리안의 악마의 차, 폭동’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전차의 도입에는 고종 황제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1891년 당시 호러스 뉴턴 알렌 주한미국총영사는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한 보고서에서 “(고종) 황제는 그의 수도에 전차 궤도 설비가 공급된 것을 보기를 오랫동안 기대해왔고 특히 홍릉(청량리)에 행차할 때 편리한 교통수단을 가지기를 원했다. 전차에 대한 구상은 전적으로 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전차는 1899년 5월 17일 홍릉선(서대문-동대문-청량리-홍릉)이 가장 먼저 개통됐다. 그해 12월 20일에는 종로와 용산을 잇는 용산선이 운행을 시작했다. 1900년 7월 6일에는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정거장을 연결한 의주로선이 개통됐다.

‘시민의 발’ 된 전차, 버스 증가에 폐선
대한제국 시기에 4개였던 노선은 일제강점기 말에는 16개로 늘어났다. 당시의 전차 노선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남촌을 중심으로 먼저 형성됐다. 남촌은 현재의 용산, 충무로 등을 뜻한다. 신용산 일대를 도심과 연결하는 신용산선을 시작으로 1910년 전후 일본인 상업지구가 된 본정(충무로)를 잇는 본정선이 개통됐다. 1912년 12월 6일에는 황금정(을지로 입구)을 연결하는 황금정선이 뚫렸다.
이후에는 북촌 노선이 개통됐다. 1917년 5월 26일 광화문선, 1923년 8월 25일 안국동선, 1923년 10월 3일 통의동선이 차례로 운행을 시작했다. 경성(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청량리(1934년)·마포(1936년)·왕십리(1937년)·노량진(1936년)·돈암동(1941년)까지 전차가 운행됐고, 뚝섬(1935년)도 전차로 연결됐다.
1928년 당시 경성부(현 서울시) 인구 약 만 31만5000명이었지만, 일평균 전차 승차인원은 이미 약 10만7000명에 달했다. 1930~1940년대 들어서는 노선의 혼잡문제가 거론될 정도였다. 전차 이용객이 폭증하면서 ‘만원 전차’가 사회 문제가 된 것이다. 실제 전차 도입 초기인 1909년과 광복 전후인 1945과 비교해보면 전차노선은 약 1.8배 증가했으나 승차인원은 일평균 기준 약 68배, 수입 기준으로는 약 107배 늘어났다.
일제강점기에도 ‘송곳 꽂을 데 없을 만큼 대만원’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걸어서 등교하기 운동’ ‘시차출퇴근제’가 시도 됐지만 효과는 없었다. 지금처럼 ‘정차 없이 통과하는’ 급행 전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1940년 급행 전차는 119개 정류장 중 43개소를 그대로 통과했다.
전차 에티켓도 나왔다. 1936년 경성전기(현 한전)에서 펴낸 경전휘보 ‘제 10권 4호 서비스 특집호’를 보면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승무원이 말해도 앞뒤로만 서 있는 것’ ‘물건을 놓고 두 자리를 차지하는 것’ ‘통로에 서서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 ‘창밖을 보기 위해 두 자리를 차지하는 것’ 등이 주의해야 될 전차 내 행동으로 다뤄졌다.
교통사고도 늘어났다. 특히 늘어난 자동차와 전차의 충돌 사고가 많았다. 1920년대 초반만 해도 추돌사고가 많이 없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는 신문에 보도된 것만 매월 평균 15건 정도였다. 교통사고가 10건을 밑도는 달은 없을 정도였다.
전차는 해방 이후에도 달렸다. 만원 전차 문제는 이때에도 해결되지 못했다. 전차는 ‘매달려 가는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왔다. 전차량을 늘리기 위해 1949~1956년 약 100대 이상의 전차가 미국에서 수입됐다.
하지만 서울이 점점 커질수록 전차는 적절한 교통수단이 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전차를 늘리거나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하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결국 서울의 교통시스템은 전차가 아닌 버스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버스 승객 증가는 전차 승객 감소로 이어졌고 운영 주체였던 경성전기의 적자는 늘어났다.
결국 서울시는 1966년 교통난 완화책을 발표하고 신문로-화신앞 구간과 남대문-효자동 구간의 전차 운행을 중지했다. 결국 2년 뒤인 1968년 11월 29일 오후 8시 12분께 동대문 차고에 들어온 303호 전차를 끝으로 모든 전차가 운행을 멈췄다. “동대문 종점입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 전차 차장은 차량에 남은 승객 46명에게 안내했다. 마지막 운행을 마친 전차 차장은 승객들을 껴안고 울었다. 시민의 발이 됐던 전차의 운행은 그날 모두 종료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차 부활 추세 뚜렷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구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유럽의 전차는 쇠퇴했다. 자동차가 늘고 버스와 지하철 노선이 크게 증가하면서다. 일본은 노면전차를 비효율적인 운송수단으로 보고 도시 내 전차를 지하철-전철로 대체했다. 이탈리아도 지하철 건설이 어려운 곳에만 전차를 남겼다. 영국 역시 전차를 없앴다.
하지만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은 후 1980년대부터 전차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비용과 편의 측면이 컸다. 전차 시스템의 경우 노면 위주로 건설돼 기존의 전철과 경전철에 비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건설 비용은 지하철의 6분의 1, 경전철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객 편의 측면에서도 교통약자와 대중교통 이용자의 접근성이 기존 대중교통수단 보다는 낫다고 평가됐다. 지하와 지상의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내리는 지하철보다 이용객의 이동이 많지 않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영국은 런던 남부와 에딘버러에 노면전차를 재도입했으며, 이탈리아 역시 8개 도시권에 노면전차를 새로 만들었다. 프랑스 리옹에서는 1957년 폐지된 노면전차를 2001년 부활시켰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호주 멜버른, 프랑스 보르드, 독일의 프라이 부르그, 드레스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바로셀로나, 마드리드 등 전 세계 380여개 도시에서 2300개 이상의 전차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0년 노면전차를 부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북 전주에서 시작됐다. 이후 울산, 경기 성남, 경남 창원 등에서 전차 도입 시도가 있었다. 위례선 트램은 2008년 위례신도시 광역교통개선대책으로 도입이 확정됐다. 현재 위례선을 비롯, 대전에서도 노면전차가 착공됐다. 울산과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도 노면전차가 계획돼 있다.
박병국 기자
<참고문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2019)
▶한국교통연구원 ‘신노면 대중교통시스템 도입에 관한 연구 보고서’(2012)
▶한국개발연구원 ‘신교통수단(노면전차) 타당성 평가를 위한 수요 및 편익추정 방법론 개선방안 연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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