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대회서 의식불명으로 온 아들... “어른들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요?”
열흘 가까이 지났으나 의식 찾지 못해
대회 운영·응급조치·지도자 문제 제기
경찰, 내사 착수
[제주=이데일리 스타in 허윤수 기자] “사망 확률이 50%가 넘으니 당장 병원으로 오세요.”


한 씨는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고등학교 3학년인 큰딸은 입시를 코앞에 둔 상황이고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딸은 이틀 뒤가 생일”이라며 “막내딸은 어린 나이에 우리와 시간을 보내고 싶을 텐데 눈치를 보는지 아무 말도 못 한다”고 씁쓸해했다.
평온했던 이들 가족에 시련이 닥친 건 체육고등학교 진학을 원했던 아들 조연호 군이 복싱 대회를 출전했다 사고를 겪으면서다. 중학교 3학년인 조 군은 3일 제주도 서귀포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제55회 대통령배 전국시도복싱대회에서 경기 도중 상대의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채 근처 병원으로 이송돼 뇌수술을 받았고, 이후 열흘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조 씨는 “경기 중 쓰러졌다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내 아들 깡 있네’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더 들으니, 다리가 풀렸다”며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실감 났다”고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부모 측은 대한복싱협회의 부적절한 대응과 응급조치, 그리고 소속 체육관 지도자의 무책임한 태도를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대한복싱협회 보여주기식 대응

그는 “협회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니 복싱인들의 돈을 뜯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먼저 3개월간 체류비로 1000만 원을 준다면서 기타 소득세로 처리하려고 하더라”라며 “아들이 의식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돈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이에 협회 관계자는 오해가 있었던 거 같다며 “제주에 머물며 선수 돌보시라고 드린 거고, 회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답했다.
아버지 조 씨는 협회의 일 처리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구급차 이송 과정이 담긴 블랙박스와 경기 영상 등을 협회에 요구했으나, ‘알겠다’는 답 이후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용역 계약을 제주도복싱협회가 했다’, ‘경찰 조사가 들어가야 받을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며 “협회가 용역 기관에 하지 못하는 요구를, 아들을 돌봐야 하는 부모가 대신 하는 게 맞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복싱협회 관계자는 “당연히 선수의 쾌유를 바라며 협회와 회장 모두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하는 상태”라면서도 “연호 군 아버지, 어머니께서 협회를 불신하고 계시니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 결과에 따라 행정상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벌을 받을 것”이라며 “우선 선수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것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송 과정과 심판·지도자의 책임

하지만 이송 당시 영상을 보면 뇌출혈이 의심되는 연호 군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경추 손상 가능성이 있음에도 어깨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신체를 이끄는 부적절한 모습이 확인된다. 병원 이송까지도 무려 30여 분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가 같은 거리를 규정 속도와 신호를 모두 지키며 운행한 결과는 17분에 불과했다. 차량에 동승했던 연호 군의 체육관 지도자 B 씨는 “병원에 도착했다고 해 뒷문을 열고 내렸더니 응급실 입구가 아니어서 다시 차에 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의 다른 사설 구급업체 관계자는 “응급 상황이면 10분 만에도 갈 수 있는 코스와 거리”라며 “이미 뇌출혈 전조 증상이 있는데 물을 마시게 하고 그런 방법으로 환자를 옮긴 건 위험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 탑승했던 복싱협회 관계자는 사설 구급차 운전자에게 빠른 이송을 요청했으나 “규정이 바뀌어 벌금 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다른 사설 구급업체 관계자는 “응급 환자 이송 때는 신호를 어겨도 면제해 준다”며 “규정이 바뀐 건 비응급 환자에 해당한다. (해당 업체가) 규정을 잘못 이해했거나, (사고가 난) 학생을 비응급 환자로 구분했다는 말”이라고 했다.

경기 당일 연호 군의 코너에는 체육관 지도자 B 씨가 아닌 같은 브랜드의 다른 체육관 지도자 C 씨가 세컨드(코치)로 나섰다. 한 씨는 “소속 체육관 코치는 심판이어서 세컨드로 나설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당일 세컨드를 본 코치는 아들과 훈련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지도자”라고 선수 보호가 이뤄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B 씨는 “선수가 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할 수 있다고 시키는 게 ‘강행’”이라며 “심판이 숫자를 셀 때 선수가 할 수 있다고 손을 올리고 말하는데 어떻게 강행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로서 억울한 부분도 있다며 “연호 군이 먼저 이번 대회를 알아본 뒤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 ‘이건 엘리트 선수들이 나가는 대회라서 안된다’고 만류했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며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악성 댓글을 보면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조 씨는 B 씨와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는 D 씨와 대회 출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 건 맞다면서도 “처음엔 대회에 나갈 준비가 안 됐다길래 우리도 반대했는데, 이후 오히려 체육관에서 대회 출전 모집을 했다”며 “만류했다면 체육관에서 다시 모집했겠느냐”고 말했다.

한 씨는 대회 출전을 위해 연호 군을 바래다주던 날을 떠올리며 “‘잘하고 와’라고 말하며 아이를 안아줬다”면서 “이기적일 수 있지만 아빠, 엄마도 지치지 않을 테니 다시 그날처럼 아이를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한편, 서귀포경찰서는 연호 군의 부모가 진정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철저한 조사와 함께 지원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허윤수 (yunspor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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