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조지아 사태, 인재 이동의 ‘경험 설계’부터 바로잡아라
당혹감·불편·모욕감…
전세기로는 해결 안 돼
미리 보이게 통과 쉽게
문제엔 빨리 대처하게
기본 설계부터 고쳐라

9월 4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불법 고용 증거’ 수사 명목으로 노동자 수백 명을 체포·구금했다. 475명(한국인 300여 명)이 포승에 묶여 호송되는 영상은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이 동맹국에 과했다”는 분개, “한국 당국과 기업이 안이했다”는 개탄, “미국 내 정치 갈등의 희생양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틀리는 말은 아니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친 듯하다. ‘사람이 지나가는 길을 우리는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구금 해제를 막막하게 기다리고 있는 노동자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한국 정부와 기업의 약속과 지시대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일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난 며칠 경험했을 당혹감·불편·모욕감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는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충격이다. 이런 공포는 그들을 국내로 모셔 오려고 띄운 전세기만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만약 정부 인증 마크가 붙은 어떤 금융 앱을 설치했다고 하자. 화면이 너무 복잡해 사용하기도 불편한데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불법 서비스라는 통보를 받고 계좌 동결 조치와 경찰서 출두 명령까지 받았다고 해보자. 당연히 이 금융 서비스는 앱 생태계에서 퇴출될 것이고 정부도 인증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사용자에게 최악의 경험을 줬기 때문이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렇게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겪는 여러 경험을 ‘사용자 경험’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사람의 이동도 사용자 경험이다. 이번 사태처럼 관계 기관들(각국 정부와 기업 등)이 국경을 넘어 일하는 인력을 위한 ‘경험 설계’를 엉성하게 하면 당사자는 최악의 경험을 한다.
경험은 말 그대로 설계된다. 과거 은행 창구 풍경을 떠올려 보자. 먼저 도착한 사람이 흐트러진 줄 어딘가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대기 시간의 불확실성과 불편이 커서 민원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번호표 발급’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객은 앉아서 편안하고 품위 있게 순서를 기다리게 됐고, 화면으로 대기 인원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그 경험은 훨씬 덜 피로해진 것이다.
좋은 경험 설계는 행정 혁신을 만든다. 예컨대 공항의 자동 출입국과 전자 세관 절차는 줄을 서서 감으로 기다리던 시간을 예고된 통과 시간으로 바꿨다. 이제는 웬만한 금융 거래는 창구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 올 필요도 없다. 스타트업에서 시작된 간편 금융 거래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있다. 좋은 경험 설계의 공통 원리는 세 가지다. 미리 보이게, 한 번에 통과하게,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 도움을 받을지 분명하게. 이번에 미국 조지아 현장에서 무너진 것은 바로 이 기본 설계였다.
인재 이동의 경험 설계를 제대로 해보자. 우선 시간에 대한 약속. 비자 심사, 교육·보험·신원 확인, 현장 출입 승인 같은 필수 절차의 평균 처리 기간을 공개하고, 일정 기한을 넘기면 자동으로 보완 조치를 발동하는 식이다. 다음은 안내서 한 장. 비자 유형, 고용 계약, 안전·노무 교육, 가족 동반 지원을 사람 기준의 한 장짜리 안내서로 묶어 현장 투입 전부터 “누가, 어떤 자격으로,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는지”를 한눈에 보이게 하자. 셋째, 보이는 기록. 원청과 1·2차 협력사를 전자 명부 하나로 묶어 누가 어떤 근거로 어디를 드나드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자. 그래야 문제가 발생할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별 통행증이 필요하다. “이 사람은 이 공정, 이 기간에 한해 일할 것이다”를 투명하게 인증하는 장치 말이다. 공사 막바지에 투입하는 시운전·안전 인력은 단기 특성이 강하다.
국민은 사고가 터지고 나서 반복적으로 띄우는 전세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인재들이 이동하는 길의 품질이 격상되기를 원한다. 유입되는 인재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이 진짜 동맹이라면 인재 이동의 문턱을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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