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민생 쿠폰’ 잔치는 끝나고 증세가 닥친다
국민에 살포한 13조원이면
기초수급액 2배 올리거나
26만 일자리도 가능했다

이재명 정부의 ‘민생 회복 소비 쿠폰’ 사업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2차 쿠폰 지급 기준이 12일 발표된다. 전 국민에게 15만~45만원을 준 1차 쿠폰과 달리, 2차 10만원은 소득 상위 10%는 빼고 주기로 했다. 판별 기준은 건강보험료 납부 실적이다. 가구당 소득이 높아 건보료를 많이 내고 있거나, 재산과 금융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3주 전 이 소식을 미리 전한 본지 기사에는 ‘상위 10%라면 세금도 많이 낼 텐데, 굳이 따지지 말고 다 줘라’란 댓글이 여럿 달렸다. 하지만 단순히 지급 대상을 확대한다고 해서 소비 쿠폰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우선 소비 쿠폰에 들어가는 13조2000억원은 얼마나 큰가. 이 돈이면 한국 사회 169만명이 받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연간 2배 이상으로 일시에 높여줄 수 있다. 생계급여는 예컨대 1인 가구의 소득이 76만5444원(올해 기준)에 못 미치면 세금으로 부족분을 채워주는 것이다. 취약 계층에 필요한 복지는 과일·야채·육류 섭취, 헌 옷 교체, 교재 구입, 주거 환경 개선 등이다. 나라가 돈이 없어 생계급여조차 찔끔찔끔 올려주고 있는데 기초수급자에게 최대 55만원씩 줬다고 국민 대다수가 25만원씩 쿠폰을 나눠 갖는 것이 정당화되나. 상위 10%를 포함해 전 국민에게 다 지급하자는 주장도 허망하다.
이 돈이면 초봉 5000만원 일자리를 연간 26만개 만들 수도 있다. 청년 실업에는 여러 문제가 얽혀 있지만 돈만 놓고 보면 거의 해결할 수준이다. 보통 추경 예산은 복지와 일자리에 세심하게 배분했지만 이번엔 헬리콥터에서 던지듯 살포해버렸다.
소비 쿠폰 비용은 사실상 소득 상위 20%가 부담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소득 상위 10%가 우리나라 소득세의 77%를, 상위 10~20%가 11.6%를 각각 내고 있기 때문이다. 쿠폰 재원을 소득세로만 감당한다고 가정할 경우, 상위 10% 입장에서는 1차 쿠폰으로 15만원을 받았더라도 낸 돈의 13배인 196만원을 세금으로 부담하는 격이다. 법인세 세수는 경기 악화로 크게 줄었고, 부가세 정도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소득세는 세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매년 임금 상승에 따라 자동적으로 국민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런 대규모 사업이 두세 차례 반복되면 정부는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서라도 증세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감당이 안 되면 국채 발행밖에 없다. 실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소고기 사 먹고, 안경 맞춘 비용을 손자·손녀 세대에 씌우는 셈이다. 이런 일이 이 정부에는 많다.
소비 쿠폰이 일자리에 도움 되면 좋을 텐데, 지난달 쿠폰의 주요 소비처 중 하나인 숙박·음식점업에서는 고용이 정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시적으로 돈이 돌면서 경기에 활력을 주는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민 소득과 소비 여력이 늘지 않았는데 자영업자가 직원을 늘려 인건비를 더 부담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걸론 역부족이니 세금을 더 들여 3차, 4차, 5차 쿠폰을 지급해야 할까.
‘민생 회복’이란 작명은 나에게 만족을 주는 소비 행위가 타인을 돕는 선한 기부라도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놀이처럼 ‘소비 쿠폰’을 쓰고 정부가 벌인 인증샷 이벤트에 참여하면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이웃을 위한 세상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표(票)를 얻기 위해 미래는 아랑곳없이 국민을 속이고 벌이는 씁쓸한 잔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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