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신드롬, CF모델 둘리…韓 만화 8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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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면 '보물섬'이라는 월간 만화잡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광고 모델은 한 시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탄압사'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한국 만화사의 일면 속에서도 대중의 압도적인 인기를 얻으며 브랜드의 얼굴이 된 이들이 있다. 주류 광고는 유명 인사의 증명서와도 같다. 주류 광고를 보면 당대의 스타가 누구인지를 가장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류 광고에 만화가가 등장하는 일이 1989년에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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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에 족쇄 걸었던 1980년대
- 육영재단 잡지 ‘보물섬’ 큰 인기
- 광고·판촉 1위 ‘아기공룡 둘리’
- 美·소련 점령 만평 많은 생각도
1980년대에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면 ‘보물섬’이라는 월간 만화잡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982년 9월 28일 발매된 ‘보물섬’ 창간호는 매진됐다. 이 잡지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한 달에 한 번 서점에 입고될 날짜를 알아낸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500여 쪽의 두꺼운 책을 닳도록 넘기며 한 달을 기다렸고, 아껴 모은 용돈을 기꺼이 ‘보물섬’에 바쳤다.

그런데 이 잡지의 창간연도가 1982년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9월, ‘만화 정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의 시각으로 그 방안의 16개 조항을 보면, 좀 답답한 마음이 든다. “어린이와 어른 간의 관계를 지나치게 희화적으로 표현하여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하지 말 것.” “등장인물의 묘사가 천박하거나 흉측하지 말아야 하며 그 차림새 등이 불량 또는 사치스럽지 않도록 할 것.” 겨우 두 조항만 봐도 그 엄혹한 상황이 짐작된다. 이런 시대에 ‘보물섬’이 나왔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어찌 된 일일까. ‘보물섬’은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육영재단이 발간한 잡지였다. 창간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썼다. 1985년 ‘만화광장’이 창간될 때까지는 오로지 ‘보물섬’뿐이었다.
‘한국 만화 트리비아’는 1945년 해방기부터 2025년 현재까지 대략 80년의 한국 만화 역사를 다룬다. ‘키워드 오덕학’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덕립선언서’ 등으로 한국의 만화와 서브컬처를 기록해 온 만화비평가 서찬휘가 전쟁을 겪고 독재를 지나 계엄의 늪을 건넌 한국 만화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한국 만화의 여러 시기와 사건을 통사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저널이 다루듯 미시적으로 토막 내고 각기 떨어져 있는 사건 같지만,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묶어냈다. “한국 만화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서 읽다 보면, 만화 역사의 흐름도 자연스레 읽혀진다.

만화 역사책이니 차례대로 읽으면 좋겠지만, 자꾸만 책 속의 만평 만화 사진 등 시각 자료를 따라 읽게 된다. 1947년 1월 1일, 동아일보에 실린 김용환 화백의 만평 ‘삼팔선 블루스’. 소련군은 한복 입은 한국 여인의 허리 위를, 미군은 여인의 허리 아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으되, 둘로 나뉘어 점령당했음을 묘사한 그림이다. 만평 한 컷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광고 스타가 된 만화가’ 편에서는 반가운 광고 사진을 만났다. 1989년 ‘OB수퍼드라이’ 맥주 광고에 등장한 이현세, 2006년에 ‘처음처럼’ 소주 광고에 등장한 허영만. 사진을 보니 광고 영상도 떠오른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광고 모델은 한 시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탄압사’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한국 만화사의 일면 속에서도 대중의 압도적인 인기를 얻으며 브랜드의 얼굴이 된 이들이 있다. 주류 광고는 유명 인사의 증명서와도 같다. 주류 광고를 보면 당대의 스타가 누구인지를 가장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류 광고에 만화가가 등장하는 일이 1989년에 벌어진다.”
만화 작품의 인기를 바탕으로 한 광고나 협업 판촉 분야의 1등은 김수정 화백의 ‘아기공룡 둘리’다. 둘리는 과자 연필 지우개 가방 음료 피자 등등 수많은 상품 모델로 등장했다. 만화 캐릭터 최초로 자동차 광고 모델이 된 것도 둘리였다.

재미있고, 신기하고, 마음 아프고,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나고, 공감이 되고…. 80년 한국 만화 역사를 읽는 동안 감상도 다양하게 몰아쳤다. 새 만화책을 펼치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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