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나토, 75년 묵은 ‘헌장 4조’ 발동... “2차 대전 이후 최대 군사 충돌 위기”

유진우 기자 2025. 9. 1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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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동맹국 긴급 협의 요청
나토-러시아 직접 대치 국면
“러시아, 나토 방어태세 시험하려 의도적 도발”

러시아가 발사한 무인기(드론)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폴란드 영공을 침범하고, 폴란드가 이를 격추하는 초유 사태가 발생했다. 폴란드는 즉각 나토 헌장 4조를 발동해 동맹국들에 공식 협의를 요청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우발적 충돌을 넘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토 방어 태세와 동맹 분열 가능성, 미국 측 대응을 종합적으로 시험하려는 의도적 도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5년 9월 10일 폴란드 비리키 시에서 러시아가 폴란드 영공을 드론으로 침공한 후, 주거용 건물에 충돌한 드론을 군인들이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폴란드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각) 새벽 러시아 드론 19대가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 과정에서 폴란드 영공으로 진입했다. 이 중 일부는 러시아 동맹국인 벨라루스 영토를 거쳐 넘어왔다. 폴란드와 나토 동맹군은 즉각 F-16, F-35 등 전투기를 출격시켜 이 중 최소 4기를 격추했다. 나토 회원국 영토 상공에서 러시아 군용 자산이 격추된 사례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3년 만이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을 포함한 주요 공항 4곳이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 상황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 충돌에 가장 근접한 순간”이라고 규정했다.

폴란드는 이날 사태 직후 나토 헌장 4조를 발동했다. 나토 헌장은 총 14조다. 그 중 4조는 동맹간 연대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조항이다. 4조는 “회원국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자국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할 경우, 모든 동맹국과 즉시 협의를 진행한다”고 규정한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운데)가 2025년 9월 10일 러시아 무인기가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후 바르샤바에서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조항은 즉각적인 군사적 행동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방위 조항인 5조와 성격이 다르다. 4조는 동맹국 전체가 특정 위협을 공동 안건으로 상정하고,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북대서양이사회(NAC)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하는 공식 절차를 개시하는 단계다. 군사 조치를 포함한 공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첫 단추다.

공식 논의를 시작하는 절차인 만큼, 회원국들은 이 카드를 매우 신중하게 사용한다. 나토 창설(1949년) 이후 4조가 발동된 사례는 이번을 포함해 75년 동안 총 8차례뿐이다. 가장 자주 4조를 발동한 국가는 튀르키예다. 튀르키예는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시리아와 이라크 사태 관련해 5차례 4조를 발동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 4조 발동을 요청했다. 나머지 한 차례는 폴란드를 포함한 동유럽 8개국이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동시에 요청했다.

2025년 9월 10일, 러시아 드론이 폴란드 영공을 침범해 공항이 폐쇄된 후, 승객들이 바르샤바 국제공항의 모니터에서 지연된 항공편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폴란드가 4조를 발동하자 나토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 행동을 “절대적으로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나토 동맹국들이 보여준 매우 성공적인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매튜 휘태커 주 나토 미국 대사는 “우리는 모든 나토 영토를 방어할 것”이라며 폴란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영국은 폴란드 상공 나토 방공망 강화를 위해 타이푼 전투기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자국군 경보 수준을 즉시 격상했다. 또 폴란드 동부에 배치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공 시스템을 사용해 드론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이탈리아는 감시기를 지원했고, 네덜란드는 자국 소속 F-35 전투기를 출격시켜 러시아 드론 요격에 직접 참여했다.

10일 러시아 드론이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총리 도날드 투스크가 주최한 긴급 회의에 참석한 폴란드군 참모총장 비에슬라프 쿠쿨라 장군(가운데).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드론 영공 침범이 우발적 사건이 아닌 러시아가 치밀하게 계산한 ‘의도적 도발’이라고 분석했다. 나토 방공망 취약점과 동맹 내부 결속력을 파악하기 위한 얄팍한 노림수라는 평가다. BBC 등에 따르면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드론 다수는 저렴한 이란제 드론 모델을 기반으로 러시아가 자체 제작한 ‘게르베라’ 기종이다. 살상용 탄두를 달지 않고, 오로지 나토 방공망을 교란하고 소모시키기 위한 미끼용으로 만들었다. 귀도 크로세토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동맹을 도발하고, 시험하려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진 의도적 공격”이라고 했다. 벤 호지스 전 유럽 주둔 미 육군 사령관은 이번 사건을 “나토 조기경보 시스템과 반응 시간을 떠보려는 예행연습”으로 평가했다.

미국 주요 매체들은 특히 이번 도발이 푸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던진 도발이라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설에서 “푸틴이 트럼프와 나토를 조롱하고 있다”며 “푸틴은 그간 트럼프 행적에 근거해 본인이 도발을 감행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마크 뤼터 NATO 사무총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알렉산더 스텁 핀란드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과 백악관에서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러시아가 드론으로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게 무슨 대수인가? 자, 간다!(Here we go!)”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나토 사무총장이나 다른 유럽 정상들이 러시아를 향해 “절대적으로 무모하다”고 즉각 비판한 모습과 상당한 온도 차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나토가 푸틴 대통령 추가 도발을 억지하면서도,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고 내다봤다. CNN은 분쟁·안보 전문가를 인용해 “푸틴이 이번 공격에서 ‘나토 동맹의 자신감과 단결’을 표적으로 삼았다”며 “푸틴의 전쟁 의지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 집요함에 맞설 의지와 역량을 갖췄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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