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Why] 가난해도 행복한 나라? 부패·양극화로 곪아터진 네팔

정부의 소셜미디어 차단 조치에 반발하며 시작된 네팔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실탄까지 동원한 무력 진압으로 지난 8일부터 20여 명이 숨지고 500명 넘게 다쳤다.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정부 청사, 정치인 자택에 불을 지르고 교도소까지 습격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알려졌던 네팔에서 만성적 부패와 양극화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발화점에 달한 가운데, 소셜미디어 차단이 불을 댕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이번 시위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시위’로 불린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네팔 현대사에서 가장 광범위한 시위”라며 “젊은이들이 기득권층의 부패에 격렬히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네포 키즈(nepo kids)’로 불리는 상류층 자녀들이 소셜미디어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과시하는 데 대한 반감이 또래 세대에게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네포는 권력자가 친족에게 지위·관직 등을 물려주는 일을 뜻하는 네포티즘(nepotism)을 줄인 말이다. 시위대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물에는 고위층 자녀들이 외국의 최고급 호텔에서 명품을 과시하는 사진과 함께 “이 돈은 다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세금 내고 너희는 플렉스(과시)하지” 같은 메시지가 등장한다.

네팔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458달러(약 202만원·올해 4월 기준)로 세계 158위다. 북한·아프가니스탄 등과 함께 아시아 최빈국으로 분류된다. 인구 3000만명 가운데 20% 이상이 빈곤층이고, 15~24세 실업률은 20%를 넘는다. 네팔인 220만명 이상이 해외로 나가 보내오는 돈이 GDP의 3분의 1로 사실상 국가 경제를 지탱한다. 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로 가족과 소통하고, 상당수 청년이 소셜미디어를 수익 창출 수단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네팔 정부는 지난 5일 소셜미디어를 ‘거짓 정보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플랫폼 26개를 차단했다. 그러자 젊은이들의 분노가 단번에 폭발했다. 전직 총리의 아내가 방화로 사망하고 고위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도 불탔다. 시위대가 중부 지역의 카스키 교도소를 습격해 수감자 900여 명이 탈출했다.
행정부 수반인 샤르마 올리 총리와 내무부 장관이 사임하고 정부가 소셜미디어 차단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했지만 분노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시위에 참여하는 프리야 시그델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침묵하면 정치인들과 그 자녀들은 부패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우리가 죽어야 정부가 우리 목소리를 듣는다면 우리는 계속 죽을 것”이라고 했다.
네팔은 239년 지속된 왕정을 폐지하고 2008년 연방 공화국이 됐다. 이후 최근까지 총리가 14차례 바뀌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공산주의 성향 정당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며 장기 집권하는 과정에서 극소수 특권층은 호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들의 부패에 청년들은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3월에는 수천 명이 수도 카트만두에서 공화제 도입 이후 정치가 더 부패했다며 왕정 복고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득권층의 부패가 고질병인 남아시아 전반으로 시위가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선 국회의원들이 매달 400만원 이상의 주택 수당을 받아 온 사실이 알려져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선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로 정부가 전복됐고, 2022년엔 스리랑카에서도 빈곤에 항의하는 시위로 대통령이 망명했다. WSJ는 “경제적 어려움에 좌절한 젊은이들의 불만에도 기득권층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추격 맞서 ‘특허 장벽’ 세우는 한국 디스플레이
- 서정진 회장, 11년만에 주총 의장으로 복귀…“생산 능력 더 확대하겠다”
- [단독] 법원 “나무위키 문서에 일부 왜곡·과장 있어도 위법 아냐" 첫 판단
- 한 건물에 ‘발달지연’, ‘도수치료’, ‘내성발톱’, ‘비만’ 클리닉 마구잡이로...응급의학
- HMM, 창립 50주년… “해운 넘어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
- 정부 지원 받은 비닐하우스서 대마 재배한 청년농업인
- 이서진 여행 따라간 출연자?… 나영석 PD “반성하고 있다”
- [AX 지금, 현장에선] JP모건의 200억달러 투자가 한국 금융에 던지는 질문
- 여성에 퇴짜 맞자 ‘입모양 욕설’...제주청년센터 홍보영상 결국 사과
- 이준석 “오세훈과 연대 검토 안 해… 장동혁 공천, 아주 안 좋은 결과 나올 것”